김형두 (주)화승 대표

급변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경영자들은 미래 10년을 좌우할 먹을거리를 찾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한 가지 아이템으로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존해온 기업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국내 신발 산업의 대표 주자 (주)화승은 튀지 않되 묵묵히, 느린 걸음일지언정 한 발 한 발 내디뎌 여기까지 왔다. 취임 1주년을 맞은 김형두 대표와 화승의 ‘생명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형두 대표는… 1968년생. 1990년 인하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주)화승에 입사해 이사, 상무이사를 거쳐 2013년 10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형두 대표는… 1968년생. 1990년 인하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주)화승에 입사해 이사, 상무이사를 거쳐 2013년 10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53년 부산에서 태동한 (주)화승은 우리나라 신발 생산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동양고무공업의 기차표 고무신으로 출발해 1970년대 후반부터 나이키, 허시파피, 리복 등 당대 최고 인기 브랜드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했다. 1986년에는 자체 기술력으로 토종 스포츠 브랜드 르까프를 론칭했으며, 현재 미국 스포츠 브랜드 케이스위스(K-SWISS),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Merrell)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연 6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2009년 들여온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은 최근 5년간 매출액이 약 5배 가까이 늘어나며 화승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형두(46) 화승 대표는 1989년 입사한 이래 재무, 관리 부서를 거쳐 지난해 10월 수장에 오른 ‘화승맨’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기업과 사람은 꼭 닮아 있었다. 취임 직후부터 1년 동안 주말마다 전국 매장을 돌고 있다는 그의 우직함과 성실함은 화승의 그것과 같았다. 김 대표는 화승이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로 ‘제품력’을 꼽았다. “신발은 스마트폰과 다릅니다.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은 신발을 신었고, 20년 후에도 신을 거예요. 최고의 제품력을 갖고 있으면 신발을 안 신는 시대가 오지 않는 이상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취임한 지 1주년이 되셨지요. 그간 어떤 현안이 있었습니까.
“화승은 스포츠 토종 기업에서 벗어나고자 지난 몇 년간 사업 다각화를 적극 추진해 왔습니다. 저는 신성장 동력인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이 시장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박차를 가했습니다. 4년 전만 해도 르까프, 케이스위스 등 스포츠 브랜드가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했으나, 올해 머렐의 매출이 전체의 40%를 넘었습니다. 머렐은 최근 5년간 매출액이 5배 가까이 늘었으며, 전국 매장 수 역시 82개에서 2014년 현재 180개로 급증할 만큼 국내에서도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이로써 화승은 스포츠와 아웃도어 ‘투 톱’ 체제를 갖추게 됐습니다.”


얼마 전 머렐이 글로벌 아웃도어 신발 부문에서 9년 연속으로 세계 판매 1위에 선정됐다는 뉴스를 봤는데요, 눈독들이던 회사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화승은 머렐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
“신발 하나만 생각하는 두 회사의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중반 화승은 국내에 아웃도어 붐이 일기 전부터 합리적인 가격에 높은 품질의 글로벌 브랜드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을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머렐사가 추구하는 ‘착용자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브랜드 철학’은 화승이 창립 이래 지난 수십 년간 강조해온 제품력 우선주의와 일치한다고 판단해 들여오게 됐습니다. 처음 머렐을 전개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당시 ‘우들스’라는 편집매장에서 머렐 제품 일부를 판매했는데요, 1998년 법정관리 여파로 회사 재무 상태가 좋지 않던 터라 홍보나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조금 더 투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늦은 만큼 제품력으로 정면 승부하고 있습니다.”
[MORE THAN BRAND] “신발 안 신는 시대 올 때까지 생존 자신 있습니다”
7조 원에 달하는 아웃도어 시장은 이제 포화상태에 달했다고들 합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머렐만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최근 5년간 지나치게 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났고, 현재 120여 개 브랜드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실제로 문을 닫은 곳도 많고요. 그 덕분에 제품을 보는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는데요, 이러한 부분이 제품력으로 무장한 머렐엔 오히려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신발이 경쟁력을 지니려면 착화감이 필수입니다. 발에 착 감겨 편안하게 어디에서든 신을 수 있어야 하죠. 앞서 말씀하셨듯, 머렐은 9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신어온 신발입니다. 착화감과 가격에 만족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머렐 본사는 최근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한국 시장의 저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만 독점으로 생산되는 주문자특별생산(SMU) 제품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인만을 위한 제품을 따로 생산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악 지역이 많은데 미끄러운 화강암이 주를 이루죠.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소재를 더 많이 사용한다든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컬러를 적용한 상품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부산에 있는 디자인개발센터에서 디자인과 컬러, 소재 등 한국인에게 맞는 아웃도어 제품의 특성을 연구한 뒤 머렐 본사와 협업해 생산에 들어갑니다.”


취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국 매장을 돌며 점주들을 만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현장 경영, 소통 경영입니다.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주 전국 대리점 투어를 하고 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얼 하겠습니까. 소비자와의 최접점인 대리점 점주들을 만나봐야 시장을 알고 고객을 알죠.”


케이스위스, 르까프, 머렐 등 매장이 전국적으로 800개에 달합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으세요.
“지방은 주로 금, 토요일 일정으로 떠나는데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 익숙해집니다. 어떨 땐 하루 꼬박 점주 분들의 애로 사항을 들을 때도 있어요. 제품이나 매장 관리와 관련해 그분들이 성토하시는 부분을 모두 메모합니다. 서울에 올라오면 직원들과 토론하고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지 대안을 모색하죠. 앞으로도 이러한 시스템을 정례화해 나가려고 합니다.”


1989년 입사할 당시 화승은 어떤 회사였습니까.
“저는 화승에서 OEM으로 만드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자란 세대입니다. 제가 입사할 땐 나이키 시대가 저물고 르까프가 한창 성장하고 있었어요. 화승은 브랜드 사관학교죠. 리복, 나이키, 허시파피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이곳을 거치며 제품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그 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옷도 신발도 평생 타사 제품을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단한 애사심입니다. 4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인가요.
“주인의식을 갖고 일했던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사원 시절부터 회사의 모든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어요. 지금도 직원들에게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철학을 갖고 경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인화’를 모토로 따뜻한 회사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화승은 오래된 기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사장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항상 사장실 문을 열어 놓습니다. 사장실 문이 열려 있으면 제가 있다는 말이고, 닫혀 있으면 퇴근했다는 뜻이죠. 사장실 문을 닫는 것은 단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모두 애사심을 갖고 자신의 일에 매진한다면 화승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목표는요.
“화승이 브랜드 유통 전문 회사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술 개발을 꾸준히 해 ‘한국의 신발’ 하면 화승이 대명사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난 50년간 신발을 만들어온 저력을 발판 삼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그 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입니다. 우선, 머렐은 현재 180개 정도인 대리점을 알차게 운용해 올해 1500억 원으로 예상되는 매출을 2016년에는 3000억 원 정도로 끌어올릴 겁니다. 케이스위스와 르까프 역시 내년부터 브랜드를 리뉴얼해 젊은 층을 적극 공략할 계획입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