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지사장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지사장의 취미는 ‘샹송’ 부르기다. 공식 회의석상에서도 곧잘 실력을 발휘한다. 지난 연말에는 전 직원에게 하나하나 글귀를 달리 새긴 연하장을 보냈다. 지사에 근무하는 말단 사원의 이름까지 줄줄 꿰고 있음은 물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사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섬세한 스킨십 경영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거친 물류 업계를 휘어잡은 채 지사장의 행보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우먼파워’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콜센터 직원, ‘물류 업계 왕언니’로 우뚝신어사전(新語辭典)은 여풍(女風)을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활약상을 일컫는 말로 특히 전통적인 남성들의 분야에 진출한 여성들의 영향력을 이를 때 사용한다’고 정의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거칠기로 소문난 남성 위주의 물류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 수장의 자리에 오른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지사장은 여풍의 진원지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말단 콜센터 직원에서 시작해 내부 승진으로 대표직에 올라 7년째 글로벌 1위 항공 특송회사 페덱스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2000년 9월 직영으로 전환한 페덱스코리아는 채 지사장이 수장을 맡은 2006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 9개였던 지역사무소는 14개로 늘었으며, 189대였던 운송 차량은 279대로 증가했다. 그와 인터뷰하며 알아챈 ‘비결’은 바로 한결같음이다. 급변하는 세상을 살며 늘 같은 마음을 먹기란 쉽지 않은 법이지만, 그의 초심과 열정은 페덱스에 입사한 후 25년간 변하지 않는 듯했다.
2년 만에 뵙습니다. 여전히 활력 넘치시네요. 헤어스타일도 그대로고요.
“2년이 아니라 25년째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어요. 바쁜 아침 시간에 관리하기 편하거든요. 긴 머리는 말아야 하고 짧은 머리는 뻗쳐서 손이 많이 가요. 부끄럽지만 스타일만 본다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랑 지금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네요.”
원래 그렇게 ‘한 우물’ 스타일이세요.
“한 번 먹은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잘 싫증내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그러니 한 직장을 25년씩이나 다니지 않겠어요.(웃음) 1985년 항공 특송회사 ‘플라잉타이거’가 ‘페덱스’에 인수되면서 초창기 멤버로 회사에 들어왔으니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한 시간이었지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영자신문, 일간지, 전문지를 읽고 1시간가량 외국어 공부를 한 뒤 사무실에 오면 8시 정도 되는데 이 일상이 습관이 됐어요.”
전형적인 ‘남성 텃밭’에서 여성 리더로 자리를 굳혀온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듯합니다.
“고객관리부서장에 올랐을 때가 스물여덟 살이었으니, 페덱스에서 걸어온 길은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자’ 하는 시선을 견딘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오퍼레이션 지상운영부이사 시절 현장 부장들이 모두 남성이었는데 어린 여자 상사를 얼마나 견제했겠어요. 나이가 적고 많음을 떠나 열심히 경청해주고 개개인의 발언을 존중해주었습니다. ‘우리는 한 팀’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솔선했더니 그제야 서서히 신뢰가 생겼습니다. 또 항공 특송 분야라 워낙 소비자 불만 건도 많았는데, 1990년엔 고객들의 항의 전화가 걸려오면 수화기 저편에서 무조건 ‘왜 여자가 받느냐. 당장 남자 바꾸라’고 했을 정도죠. ‘제가 부서장이니 반드시 책임지고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확신과 안심을 드리느라 진땀도 많이 뺐어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나요.
“퇴사 충동이요?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는데요.(웃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시도 느긋했던 적이 없었어요. 고객관리부서에서 서일본 지역 고객서비스부서장으로 역할이 확대됐고 또 북태평양 인사관리 총괄 상무로 발령받았죠. 직위가 올라갈수록 일은 많아지고 그만큼 기대치도 높아졌기에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뛰고 또 뛰었어요. 포기하고 싶을 땐 첫 마음을 생각했죠. 페덱스에 입사했을 때 설렘과 열정을 기억하며 힘을 얻었거든요. 물류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컸고요.”
최연소 승진을 거듭했던 데는 회사의 특수성도 있지 않았나요. 남녀 차별 없는 기업으로 유명하잖아요.
“맞아요. 페덱스는 아시아에서 지사장급 여성만 전체 43%에 달합니다. 성별은 물론 나이, 학벌에 상관없이 능력 여하에 따라 승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죠. 장애인과 외국인에게도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고요. 미국 격주간지 포춘 선정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에 2011, 2012년 연속으로 올랐어요. 국내 기업에도 최근 여성 임원들이 많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층층시하’가 존재하잖아요. 최근 뉴스에서 본 한국의 ‘성 평등 지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135개국 중 111위이더군요. 우리 사회가 많은 측면에서 선진화됐다고 하지만 기업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다는 생각에 안타까웠죠. 정부나 기업들이 외국계 기업의 양성 평등 혹은 여성 정책 등은 참조할 만하다고 봅니다.”
많은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일과 가정의 균형입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여성이 기업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과 가정을 어떻게 꾸리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저는 무조건 즐겁게 해나가자는 주의였어요. 회사에 나와 있는 동안은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여성들이 꼼꼼하고 섬세한 장점이 있지만 직장에서도 집 걱정 하느라 책임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일터에선 프로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7시에 퇴근해 집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아이와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낼 수는 없어도 단 15분, 20분이라도 하루 일과를 공유하며 최선을 다해 교감하려 했지요.”
800여 직원에 손편지, 방문 열고 직원 환영
채 지사장과의 인터뷰 자리에는 몇몇 페덱스 직원이 동석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 ‘사장님’의 리더십과 성품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이는 페덱스의 인간 중심 철학인 ‘PSP (People-Service-Profit)’의 영향도 적지 않다. 모든 경영에 있어 사람을 최우선으로 놓고 그다음에 서비스와 수익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내부 고객인 직원이 만족하면 서비스의 질도 향상되고, 서비스 질 향상은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 회사 수익 창출로 이어진다고 여긴다. 이러한 회사 정책과 채 지사장의 ‘엄마 리더십’이 더해졌으니, 세계적 인사조직 컨설팅회사인 에이온 휴잇이 조사한 ‘한국 10대 최고의 직장’에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회 연속 선정된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불황에도 사무소를 확장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항공 특송이 속도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헬스케어, 바이오 제품 등 주의를 요하는 품목이 많아졌어요. 지난해 8월에는 온도를 영상 2~8도로 96시간 유지하는 새로운 저온배송 포장 서비스를 선보였고, 상자의 버튼만 누르면 5분 내로 4도까지 온도를 떨어뜨리는 특수 냉각 포장도 개발했지요. 고객들이 지역별로 잘 정비된 특송사를 알고 있어 관련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해 12월엔 대전 사무소를 오송단지로 6배 확장해 이전했어요. 헬스케어나 바이오, 정보기술(IT) 등 첨단 산업벨트가 있는 오송의 한복판에서 직접 물류 편의를 실현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직원들의 기세가 대단해요.”
지난 연말 직원들에게 일일이 카드를 써서 보내셨다고요.
“한 해 동안 각 분야에서 수고한 직원들을 찾아가서 상을 줬어요. 그냥 시상만 하는 것보다는 어떤 친구들인지 면면을 알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면 좋잖아요. 가기 전에 해당 사무소에 누가 있는지 찾아봤죠.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두 배 즐겁죠. 연하장도 보냈어요. 말이 힘차게 달려가는 카드에 일일이 손으로 써서 841명 직원의 집으로 발송했어요.”
일종의‘엄마 리더십’인가요.
“제 성격이 사람을 좋아하고 잘 챙기는 편이기도 하지만 ‘페덱스’가 추구하는 가치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덱스는 직원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줌으로써 주인의식을 갖도록 해요. 가령 회사에 새로 도입하는 비행기에 직원 자녀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어요. 전 세계 지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추첨하는 방식인데 전체 697대 비행기에 직원 자녀의 이름이 붙어있죠. 그중 한 대가 제 아들 이름을 딴 ‘양재호’예요. 당첨됐을 때 무척 감동받았고, 저희 아들도 뛸 듯이 기뻐했죠. 회사에서 받은 감동을 나 역시 직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조금 애쓰는 것뿐입니다.”
채 지사장의 집무실 앞에는 오늘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오픈도어(open door)’ 정책을 운영, 대표 방의 문턱을 낮춰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소통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퇴직한 직원까지 놀러와 “밥을 사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장님을 만나려면 번호표부터 받으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전·현직 직원들 모두 ‘페덱스’를 좋아하니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앰배서더(대사)”라는 채 지사장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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