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한미글로벌은 국내 1호 건설 감리·컨설팅(CM) 기업이다. 김종훈 회장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서울 타워팰리스,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등 국내 굵직한 고층건물 공사에서 CM을 도맡았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이력도 나눔과 봉사로 점철된 삶의 궤적에 가려질 지경이다. 이런 걸 ‘본말전도(本末顚倒)’라고 한다면, 김 회장은 기꺼이 최고경영자(CEO)이기 이전에 행복한 자선사업가이고자 한다. 사회공헌에 관한 한 잠시도 쉬지 못하는 그가 최근 사회적 기업 ‘따뜻한 동행 시니어 건축사무소’를 오픈했다. 또 엉덩이가 들썩인 것이다.
[NOBLESSE OBLIGE] “착한 기업이 더 나은 세상 만들 수 있습니다”
쪽방촌 봉사 활동이 바꿔 놓은 인생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알다

시작은 사소했다. 그저 도덕책에 나오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구절을 작게나마 실천하고자 했을 뿐. 1980년 교회 사회복지위원회에서 중증 장애인 시설을 단체로 방문해 봉사 활동을 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들의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했다. 멀쩡한 몸으로 잘 먹고 잘살아 온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잔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삼성물산 근무 당시 서울대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부하직원들과 봉천동 일대 쪽방촌을 찾아 노인들을 보살폈다. 명절 무렵, 쓸쓸한 노인들과 음식도 나누고 말벗도 돼주었다. 말레이시아 법인장으로 발령받기 전 1987년부터 1993년까지 6년 동안 꼬박 쪽방촌 봉사 활동을 했다. 노인회에서는 감사의 의미로 그에게 작은 표창장을 전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더불어 사는 삶’의 즐거움을 맛본 후 그는 선행에 마약처럼 중독됐다.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봉사 활동을 했고, 1996년 CM 기업 한미글로벌(옛 한미파슨스)을 설립하면서는 아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모토로 내걸었다. 그렇게 18년, 봉사와 나눔을 ‘생활화’해 온 김 회장은 2010년 3월 국내 최초로 구성원들의 자발적 기부로 자본금을 조성,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을 설립해 화제를 모았다.

그간 사회적 공유가치창출(CSV)에 앞장서 온 ‘따뜻한 동행’은 최근 60세 이상 인력으로 구성된 시니어 건축사무소를 설립했다. 시니어 건축사무소 따뜻한 동행은 한미글로벌의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이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의 신축과 개축, 리모델링 등 건설 관련 업무를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은퇴 후 아직 팔팔해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또 건설 기술자들의 참여로 조금 더 체계적인 사회공헌을 이뤄내겠다는 게 김 회장의 포부다.

“일본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고령 인력을 활용한 기업이 많고 정책도 활성화돼 있어요. 일본에 건축설비 엔지니어링회사 ‘마이스타 60’이란 곳은 은퇴자 800여 명이 일하는 실버기업이죠. 시니어 건축사무소는 사회공헌 활동과 고용 창출에 초점을 맞춰 근로 의욕이 있는 60세 이상 우수 인력에게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면서 사회공헌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설립 목적입니다.”

사회공헌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는 한껏 고무됐다. 평소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은 그는 올 안에 중증 장애인이 참여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시각장애인 실내악 관현악단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다.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는 2007년 3월에 창단한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예요. 총 21명의 단원 중 13명이 시각장애인이죠. 우리가 후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수입이 불확실해 풀타임으로 연주 활동만 하진 못해요. 정말 실력만큼은 대단한 친구들인데. 세계적인 악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매달 봉사 활동·4자녀 낳기 서명
‘그래도 출근하고 싶은 회사’

김 회장과 인터뷰할수록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한미글로벌은 애초에 CM 전문 기업이 아니라 사회공헌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가 아닐까도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아이파크, 여의도 국제금융센터 등 굵직한 건물의 감리를 맡으며 국토교통부 선정 CM 능력 5년 연속 1위에 오르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이 같은 내용보다는 ‘사회공유가치창출 기업’ 혹은‘착한 기업’으로 더욱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말이다.
김종훈 회장은…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서강대 경영대학원 졸업. 1979년 한샘건축연구소. 1979년 한라건설. 1979년 한양. 1984년 삼성물산. 1996년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사장. 2009년~현재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회장.
김종훈 회장은…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서강대 경영대학원 졸업. 1979년 한샘건축연구소. 1979년 한라건설. 1979년 한양. 1984년 삼성물산. 1996년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사장. 2009년~현재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회장.
요약하면 이렇다.
전 직원은 월 1회 토요 봉사 활동을 해야 한다. 또 월급의 1%를 걷고, 회사가 이 금액의 곱절을 직원 이름으로 기부한다.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을 설립할 때도 오너가 사재를 출연하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직원 모금을 통해 이뤄졌다. 이 뿐 아니다. 한미글로벌에 입사하려면 ‘네 자녀 낳기 운동’ 서약서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본인과 배우자, 부모에게 모두 약속을 받아낸다.

이쯤 되면 직원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을 법했다. 하지만 한미글로벌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오죽하면 김 회장의 저서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의 제목을 직원이 지었을까.

“고용계약서에 기부를 약속하고 봉사 활동에 무조건 동의해야 하니 처음에는 불평불만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나눔과 봉사를 한두 번 해본 뒤론 그런 말이 싹 사라졌어요. 우리는 중증 장애인을 주로 돌보는데, 한 달에 한 번 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습니다. 가족들도 동반하니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베풂을 가르칠 수 있지요. 봉사를 한 그 주 월요일은 회사 분위기가 굉장히 밝아요. 직원들의 자부심도 더 커졌습니다.”

김 회장이 나눔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바로 직원이다. 설립 당시부터 ‘구성원이 주인인 회사’를 생각했고, 지금껏 ‘직원이 출근하고 싶어 하는 회사’로 키웠다.

실제,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사업이 어려워져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단 한 명의 해고도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이 없어 순환재택근무를 할지언정 구조조정은 하지 않았다. 못 견딘 사람은 제 발로 그만두기도 했지만 결국 한 명도 손대지 않고 위기를 넘겼다. 그 대신 가족 중에 불행을 당하는 경우나 본인이 중병에 걸리면 회사가 끝까지 돌보고 복귀를 기다려준다. ‘비올 때 우산을 빼앗으면 안 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약속을 지키는 CEO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우문에 김 회장은 “직원 만족이 곧 회사 발전”이라는 현답을 내놨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입니다. 결국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이지요. 직원들이 만족하는 회사는 사장이 굳이 감시, 감독하지 않아도 저절로 성과가 나게 돼 있습니다. 신바람 난 직원들은 고객을 만족시킬 것이고 그러면 주문량은 더 늘어나요. 선순환 경영이 되는 겁니다. 노사가 대립해 극단으로 치닫는 기업과 비교해 우리는 얼마나 ‘남는 장사’입니까.(웃음)”


진정성 있는 기업의 사회공헌, 사회 문제 해결할 수 있어
김 회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책임이다.
그는 “기업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은 경영자가 역량을 발휘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희생이나 국가의 지원이 상당 부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너는 기업은 자기 것이자 일부 사회의 것이라 여겨야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한미글로벌이 대한민국 100대 기업에 오른 게 규모로만 평가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이제 우리 회사만 놓고 볼 게 아니라 사회,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을 위해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출산 문제를 기업이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물꼬를 틀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우리 회사는 자녀 수와 관계없이 대학까지 학자금을 주는 제도를 두고 있어요. 입양자에게도요. 그런데 생각보다 큰돈이 안 들어갑니다. 통일 문제나 청년 실업, 저출산·고령화 문제 모두 기업과 연관이 있는 이슈들이죠. 큰 기업들부터 진정성을 가지고 특색 있는 사회공헌을 펼친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거라 확신해요.”

올해 그는 ‘하트체임버오케스트라’, ‘시니어 건축사무소’를 포함해 경영 멘토링 모임인‘CEO 지식나눔’, ‘자녀 4명 낳기 운동본부’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을 펼칠 예정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할 일을 만들어 놓으려는 것이다. 가족과 주변에도 죽을 때까지 사회공헌을 하겠노라 이미 공언해 놓은 터다. 김 회장은 “이제 나이가 있어서 조금 천천히 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가랑이가 찢어질지도 모르겠다”며 겸연쩍어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행복하게 웃을 것이란 걸 기자는 그와 마주한 두 시간여 만에 확신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