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
“인간적인 고뇌를 하죠.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올 4월 법무법인 ‘세종’의 경영 전담 대표로 취임한 강신섭 변호사와 마주앉은 1시간여, 그는 ‘휴먼’, ‘사람’ 등의 단어를 유난히 즐겨 사용했다. 아무리 법이 지배하는 무미건조한 세상이라지만, ‘법 위에 사람 있다’는 진리는 만고불변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추측하건대, 올 초부터 기록하기 시작했을 그의 경영 수첩 1조 1항 역시 ‘사람을 향합니다’가 아닐까. 서울시 남산 자락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만난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경영 전담 대표 변호사는 환한 얼굴로 취재진을 반겼다. 옆집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인상과 소탈한 말투에서 다소 날카로워 보일 것이라는 법조인에 대한 선입견은 사라졌다.강 대표는 사법연수원 13기 출신으로 서울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으로 11년간 재직한 뒤 1998년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그 무렵 ‘JP모건-SK증권’ 소송은 그를 스타변호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통’이 된 강 대표는 2001년 법무법인 세종에 합류하면서 기업 간 인수·합병(M&A), 수익증권환매대금 소송 등 금융 분야를 주무대로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그리고 판사와 변호사에 이어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올 4월 취임한 뒤 조직 쇄신을 위해 가장 역점은 둔 건 무엇인가요.
“로펌은 서비스업입니다. 경영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죠. 즉, 인력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좋은 직원을 뽑고 훌륭한 변호사로 성장시켜 성과를 내는 동시에 이들에게 명예와 돈 같은 보상을 충분히 해주는 시스템이 정립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숫자가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변호사의 영향력이 낮아진 게 사실이에요. 우리 회사 구성원들이 법조인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하고 이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맡을 CSR팀을 둬 저렴한 비용으로 지방자치단체나 국가의 중요한 소송을 맡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 변론 등을 하고 있습니다. 세종의 오랜 전통인 ‘사회 가치 창출’에 방점을 찍으려 합니다.”
법률구조재단 이사직도 맡고 계시죠. 공익 활동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로펌은 사회적인 책임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판사 시절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에서 유학했는데, 당시 법률구조제도를 보며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프랑스는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문화죠. 법원과 변호사협회가 주도하는 프랑스의 법률구조제도는 구제의 폭도 넓고 내용도 충실합니다. 이 점이 상당히 부러웠습니다. 로펌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오랫동안 판사, 변호사로 지냈습니다. CEO가 되니 어떤가요.
“특정 소송을 맡으면 거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경영인은 수많은 변호사들의 ‘플러스 원’의 역할을 해야 하더군요. 그들의 뒤에서 도와주고 크게는 구성원의 발전상을 구상하고 비전을 설정합니다. 변호사와 경영인의 고민은 질적으로 달라요. 어렵지만 재밌고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법복 벗고 얼마 안 돼 맡은 ‘JP모건’ 사건으로 스타덤 올라
1998년 ‘JP모건-SK증권’ 사건을 통해 강 대표는 스타덤에 올랐다. JP모건의 파생금융상품(태국 바트화-미국 달러화 연동)에 투자했던 국내 금융기관들이 1997년 바트화 폭락으로 거액의 손실을 입자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을 벌인 것. SK증권 등 국내 금융기관들은 “JP모건이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으니 손실액을 물어줄 수 없다”고 주장했고, JP모건은 “금융 상품의 특징을 금융기관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맞섰다. 당시 약 6억 달러가 걸린 금융 분쟁에서 강 변호사 팀은 적절한 중재로 양측의 의견 조율을 이뤄냈다. 그 시절, ‘JP모건 변호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던데요. 원래 경제·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요.
“그 사건을 계기로 금융 관련 소송을 많이 맡게 됐으니 운명적이긴 하죠. 미국 로펌의 유명 변호사들과 일하며 배운 점도 많고요. ‘JP모건’ 일을 하며 만난 로펌 사람들과 요즘도 연락을 하는데 그때 일을 책으로 써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해요. 그만큼 극적이고, 외국계 금융기관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의미있는 판례를 남긴 소송이었죠.”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당시만 해도 우리 정부나 국민은 국제 금융기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죠.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파생상품 거래에서 수익을 거두면 ‘사기’라고 여길 정도였죠. 투자라는 게 당연히 수익도 손실도 날 수 있습니다만 정서상 해외 금융기관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입니다. 논점이 한국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게 상품의 구조나 경제성을 명확히 설명했는지 여부였으므로 손실에 대해서만 지적하는 것은 균형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국제 금융 상품 거래에 있어서는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세종 역시 금융 및 자본시장 영역에 강한 로펌이지요.
“금융에 뿌리를 두고 적대적 M&A나 경영권 분쟁, 공정거래 관련 규제 등 기업 자문이나 소송도 많이 담당하고 있어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한때 금융거래가 줄어든 시기가 있었지만 인력을 유연하게 활용해 다양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또 베이징과 상하이에 대표처를 두고 중국 비즈니스와 관련해 포괄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해외 지역별 특화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요.”
요즘 자산가들은 어떤 법률문제로 고민합니까.
“최근 일본에 해외금융계좌신고법(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FATCA)이 도입돼 재일교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일본 정부가 재일교포들에게 한국 금융기관에 투자한 내역을 모두 신고하도록 하고 있거든요. 그동안 세금 안 내고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신고해야 돼 법률 자문을 많이 받습니다. 또 파양이나 입양, 친권 행사 관련 소송도 많아요. 젊은 시절 입양했는데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부모의 입장에서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경우 갈등이 발생해요. 이혼으로 인한 친권과 양육권 싸움도 늘었고요. 아이를 서로 데려가려 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어요. 씁쓸하죠.”
주말에 양재천변 걸으며 힐링…IT는 세종의 미래 먹을거리
“법원을 왜 떠나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빵을 찾기 위해서였다”라고 대답했다. 내막을 묻는 질문에는 ‘노코멘트’했다. 그는 30년 넘게 법조인으로 살면서 보람 있었던 적은 의뢰인을 사건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켰을 때, 힘들었던 적은 피고인와 마주했던 모든 순간이라고 털어놨다.
법조계에 몸담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법원에서 고등형사부 배석판사로 1년을 지낸 적이 있어요. 1심에서 사형 선고가 8건이나 있었는데 그중에 한 건은 원심이 확정됐습니다. 고민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죠. 법률가라는 게 법대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도 인간인지라 마음고생을 적잖게 합니다. 특히나 형사법정은 선고를 하러 들어가 피고인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변호사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냉혈한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요. 실제로 그런가요.
“일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해야 하지만 진정성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덕목이에요. 법률가로서 자문을 할 때도 변호사의 인격을 신뢰하지 못하면 어드바이스가 받아들여지지 않죠. 또 아무리 찬란한 수사를 써서 변호해도 그 내용에 진정성이 없으면 판사들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십니까.
“시간이 나면 음악을 듣고 골프를 치거나 책을 읽지요. 주말엔 양재천변을 한두 시간 걷는 게 유일한 낙이에요. 우리 나이가 되면 산보가 최고입니다.(웃음) 성당에서 봉사하는 시간도 꽤 의미 있고요.”
앞으로 세종의 수익 창출을 위한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그리셨나요.
“세종의 정통 분야인 금융과 경영 분야에 주력하되 M&A, 노동 관련 분쟁, 정보기술(IT), 자산가들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 등의 영역에서 경쟁력을 기르려 합니다. 특히 국내 게임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어 지적재산권 분야도 미래 먹을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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