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감성은 꿈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니 같은 삶의 내용이라도 더 환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긍정적 시간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게 재구성돼 축적될 때 내 삶과 인생은 가치 있게 느껴진다. 지금,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 필요하다면 재구성을 해서라도.
[HEALING MESSAGE] 과거의 재구성, 과거 긍정적 시간관이 행복의 열쇠다
요즘 군 생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가 인기다. 군대 생활이란 것이 남자에게는 다 괴로운 과거일 텐데 왜 이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느냐고 한 기자가 물었다. 왜 그럴까. 과거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에 감성의 색깔이 덧입혀져, 실제와 다르게 변형돼 우리 뇌에 저장된다. 우리가 믿는 리얼리티엔 리얼리티가 아닌 환상의 요소가 상당히 섞여 있는 것이다.

리얼리티 관점에서 보면 남자에게 있어 군대 생활은 자유가 제한되고 개인적 성취를 위한 중요한 시간도 희생한 시기다. 훈련과 업무로 신체도 고달프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적인 감성의 기억은 싹 지워지고 동료와 느꼈던 전우애나 의미 있는 희생 후에 따라오는 뿌듯함의 카타르시스가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자극돼 과거가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사나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닌 환상을 만들어 주는 콘텐츠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꿈을 현실화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감성은 꿈과 현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같은 삶의 내용이라도 더 환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더 행복을 느낀다.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내 삶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부정적으로 되는 것이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이 없고, 능력도 없고, 삶의 목적을 잘못 설정했고, 돌아가자니 너무 늦었고 등 부정적 사고가 끝이 없다.

그러나 우울증이 호전되면 삶의 내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해석이 변하게 된다. “선생님, 제가 기운을 조금 회복했어요. 주변에 그래도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두 명 있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도 의미가 있다 조금은 생각되고요”라는 식으로.

주변 상황이 변했다고 인식하지만 사실 변한 것이 없다. 본인의 삶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괴로웠던 우울 증상도 별 게 아닌 것으로 기억의 재구성이 일어나다 보니 치료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제가 뭐 아프긴 했나요”라는 식으로.


삶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행복과 불행 가른다
요즘 괴로웠던 과거 기억을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채널에서 ‘과거사 토크’를 하고 있다. 서로 얼마나 괴로웠는지를 경쟁적으로 이야기한다.

과거의 괴로웠던 기억을 꺼내는 것, 즉 기억 회복을 통한 힐링 효과가 있다는 것인데, ‘부정적인 기억은 뇌 깊은 곳에 억압돼 저장돼 있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내 생각과 행동에 미치게 된다. 그래서 그 억눌린 기억을 꺼내놓고 이야기할 때 자유로워질 수 있고 마음에 힐링이 온다’는 내용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부정적인 일에 집착하는 기억 회복 프로그램에 부작용이 있다. 과거에 대한 해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마저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으로 재구성시키기까지 한다.

해외에서 실제 있었던 일인데, 남녀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여성이 기억 회복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남녀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렸을 때 아빠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란 추론하에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HEALING MESSAGE] 과거의 재구성, 과거 긍정적 시간관이 행복의 열쇠다
따뜻하게 자기를 대해 주었던 아빠의 기억이 머리에 저장돼 있었던 그녀가 부정적인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식탁에서 동생에겐 따뜻하게 대했는데 자신에겐 야단을 쳤던 아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자신을 학대하는 아빠의 모습까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기억을 증거로 딸이 아빠를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 나중에 주변 사람을 통해 그 기억의 진실 여부를 가려 보니 실제가 아니었다. 부정적으로 과거 기억이 재구성됐던 것이다.

특별한 치료 상황에선 부정적인 기억을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일반화하는 것에는 반대다. 과거를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긍정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를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시간에 대한 태도를 시간관, time perspective라 한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비해 과거 긍정적 시간관을 가지는 사람이 현재와 미래를 행복하게 산다.

사실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 같지만 우리가 느끼고 인지하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다. 내 입을 떠난 말이 상대방의 청각신경을 통해 뇌에서 해석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가 사물을 시각신경을 통해 지각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느끼는 바로 지금도 조금 전의 과거 사건이고 내용들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게 재구성돼 축적될 때 내 삶과 인생이 가치 있게 느껴진다. 남 보기에 훌륭한 과거의 내용을 가졌지만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인생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행복과학 측면에서 가치 있는 삶이 행복이고 진실이다. 그렇기에 삶의 진실은 리얼리티 자체가 아닌 과거에 대한 태도에 의존한다.

긍정적 과거 만들기를 촉진하는 방법은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 장소, 그리고 물건과 만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내가 자랐던 곳을 찾아 좋은 추억을 되새기며 걸어 보는 것,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와 만나 과거 철없이 놀았던 재미있었던 추억의 과거를 함께 회상해 보는 것이 긍정적으로 과거를 재구성해준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에 잠겨보자. 행복은 주관적인 감성이다. 과거에 긍정적인 사람이 오늘을 행복하게 느낄 수 있고 미래 또한 행복할 것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