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 골웨이

영국 런던에서 더블린(Dublin)으로 가는 라이언 에어 안에서 머릿속에 맴돌던 이미지는 앨런 파커가 1991년 감독한 영화 ‘커미트먼트’였다. 영화 내내 등장하던 검은 벽돌이 깔린 후락한 골목들, 코트 깊숙이 얼굴을 파묻고 음습한 골목을 걸어가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깔리던 흑인음악들이었다. 그리고 아이리시 펍. 영화 속에서 아일랜드인들은 담배연기 자욱한 어두컴컴한 펍에서 기네스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종로와 신촌, 홍대, 압구정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이리시 펍. 더블린에서, 진짜 아이리시 펍에서, 초콜릿 색깔의 기네스를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TRAVEL BUCKET LIST] 아일랜드, 도시의 낭만과 자연의 경이를 만나다
템플 바에서 느낀 더블린의 정취
더블린에서 게스트하우스 몇 곳과 호텔을 돌아다닌 끝에 해질 무렵에야 겨우 구한 숙소는 ‘블룸스 호텔’이라는, 템플 바(Temple Bar) 거리 한 귀퉁이에 있는 낡은 호텔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딴 호텔. 하지만 말이 좋아 호텔이지 시설은 우리나라 장급 여관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 있는 호텔방에 짐을 대충 풀어놓고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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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작은 나라다. 인구가 450만 명 남짓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섬나라에는 펍(Pub)이 약 1만 개나 된다. 인구 약 400명당 한 개꼴이다. 인구 100만의 도시 더블린에도 무려 1000개가 넘는 펍이 있다. 조이스는 그의 소설 ‘율리시스’에서 “펍을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다. 더블린의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템플 바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더블린에 대한 여행 자료를 검색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템플 바였다. ‘더블린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은 템플 바다’, ‘템플 바에서 기네스를 마시지 않으면 더블린을 여행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템플 바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된다’ 등등. 숙소를 굳이 템플 바 주변에 구한 것도 이런 까닭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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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바는 더블린을 관통하는 리피 강 남쪽에 있는 세 개의 블록을 일컫는데 모두 22개의 펍이 몰려 있다. 우리나라의 명동과 비슷한 분위기다. 템플 바를 찾았을 때는 오후 6시 무렵. 서쪽 하늘에는 석양이 드리워져 있었다. 템플 바가 술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부터다. 하루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과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합류한다. 이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펍의 문을 열고 들어가 기네스를 마신다.

템플 바 거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펍이 ‘템플 바’다. 더블린에 오는 모든 여행객들은 템플 바 거리로 오고 템플 바 거리에 오는 모든 여행객들은 ‘템플 바’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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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니 쌉싸름한 맥주 향이 풍겨 왔다. 실내는 어두웠고 복잡했고 시끄러웠다. 모두들 서거나 앉아서 기네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 혹은 직장 동료, 가족과 함께 온 이들도 있었다. 물론 혼자서 기네스를 홀짝거리며 마시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여행객들이 터뜨리는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번쩍였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가 함께 나뒹굴었다. 펍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밴드가 기타 반주에 맞춰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한 곡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치어스(cheers)”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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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 온 이상, 기네스 양조장을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쌉싸름하면서도 입술과 혀끝에 휘감기는 부드럽고 풍부한 거품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흑맥주, 기네스. 아일랜드의 상징이 된 이 맥주는 현재 51개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 세계 150개 국가에서 매일 1000만 잔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더블린 북쪽에 위치한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는 기네스의 역사 및 제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방문객들은 입장료 14유로를 내고 기네스 맥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와 거대한 기네스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입구에는 기네스의 250년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맥주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견학 코스는 건물의 1층에서 7층까지 올라가면서 진행되는데, 기네스 맥주의 역사와 기본적인 제조 공정 등 기네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코스의 마지막은 맨 위층의 전망 좋은 바에서 기네스를 시음하는 것으로 끝난다. 참가자들은 더블린 시내를 흐르는 리피 강과 시가지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전망대에서 맥주를 즐기며 더블린 시내를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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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흔적을 찾아서
더블린을 여행하면서 조이스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곳곳에 그의 소설 ‘율리시스’의 흔적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더블린 시내에서 남쪽 해안으로 12.9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제임스조이스센터에는 조이스의 서한과 사진, 작품 초판본과 희귀본, 개인 집기, 그리고 소설 ‘율리시스’와 연관된 전시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제임스조이스센터 가까운 곳에 더블린 작가 박물관도 있다. 조이스 이외에도 버너드 쇼, 오스카 와일드, 조너선 스위프트, 사무엘 베케트 등을 만날 수 있는 이곳에서는 더블린이 왜 ‘유럽 문화의 수도, 세계 문학의 심장’으로 군림하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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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에 관심이 많다면, ‘데비 번스(Davy Byrnes)’라는 펍으로 가보자. ‘율리시스’의 주인공 블룸이 소설 속에서 점심을 들었던, 그리고 실제로 조이스가 즐겨 찾았던 펍이다. 그래프턴 거리에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펍이 ‘율리시스’에 등장한 이후 매출이 크게 올랐다는 것. 식당 주인은 ‘데비 번스 아일랜드 창작상’을 제정해 젊은 작가들을 발굴,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템플 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이스의 또 다른 단골 펍이었던 ‘스태그스 헤드(Stag’s Head)’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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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시내를 다니다가 마주치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트리니티 칼리지의 이름을 숱하게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장 없는 여러 개의 건물 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를 걷다 보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트리니티 칼리지를 둘러볼 수밖에 없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아일랜드의 자랑이기도 하다. 1592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때 설립됐다. 16만1874.2㎡의 부지에 펼쳐져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잔디, 17세기에서 18세기에 지어진 멋들어진 건축물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도서관 관람은 필수.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목조 아치형 천장의 ‘롱 룸’이다. 9세기에 만들어진 두 권의 ‘Books of Kells(라틴어 복음서)’를 필두로 20만 권의 장서가 소장돼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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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웨이에서 아일랜드 대자연과 조우하다
더블린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에 자리한 골웨이(Galway)는 인구 7만의 작은 도시. 하지만 가장 아일랜드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더블린이 낭만적인 도시의 풍경을 보여준다면 골웨이는 장엄한 대자연의 경이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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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골웨이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공기부터 달랐다. 힘껏 숨을 들이마시니 상쾌한 바다 내음이 폐 속으로 가득 밀려 들어왔다. 이게 골웨이의 향기일까. 그리고 눈에 보이는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파스텔 톤의 건물들. 마치 예쁜 장난감 세트를 부풀려 놓은 것 같았다.

골웨이는 조그만 도시다. 첫날은 산책하는 기분으로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관광 명소’를 훑었다. 1584년 세워진 스페인 식 문, 코리브 강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돔으로 유명한 골웨이 대사원, 콜럼버스가 1492년 항해를 떠나기 전 기도를 드렸다는 성 니콜라스 교회 등 이 모든 것을 보는데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다. 골목을 거닐면서 아일랜드 민족 문화가 골웨이에는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리 표지판은 영어와 함께 갤릭(Gaelic)어로도 병기돼 있었는데 해독은 불가능했다. 때로는 영어 없이 갤릭어로만 표기돼 있기도 했다. 해질 무렵이면 펍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더블린과 비슷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더블린에서와 마찬가지로 악사들이 공연을 펼쳤고 사람들은 기네스 잔을 들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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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행객들이 골웨이 자체보다는 아란 군도(Aran Islands)로 가기 위해 골웨이를 찾는다. 골웨이는 환상적인 아란 군도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란 군도는 골웨이에서 페리로 1시간 정도 걸린다. 골웨이 시내에 있는 여행사에서 당일치기 패키지 투어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다.

여행객들은 아란 군도 3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인 이니시 모어(Inis Mor)를 주로 찾는다. 이 섬은 우리나라 제주도와 비슷한 풍광을 지니고 있다. 섬에 도착하면 여행자들을 위한 미니 밴이 대기하고 있는데 미니 밴을 타고 섬을 돌아보는 것보다는 자전거로 섬을 한 바퀴 돌아볼 것을 권한다. 하루 대여료는 10유로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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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 모어는 정말이지 자전거가 잘 어울리는 섬이다. 바다를 끼고 페달을 밟다 보면 상쾌한 기분이 뼛속을 관통한다. 해안에는 제주도와 같은 돌담이 끝없이 이어지고 해안 반대편 언덕의 푸른 초지에는 말과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평화롭다’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풍경이다. 간혹 마차를 타고 나들이 가는 섬주민을 만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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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 모어의 하이라이트는 클립스 오브 모어(Cliffs of Moher)다. 클립스 오브 모어는 아일랜드 여행 관련 책자나 사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으로 길이가 장장 8km, 높이가 300m에 달하는 거대한 절벽이다. 깎아지른 듯 수직으로 서 있는 절벽에 쉴 새 없이 커다란 파도가 몰려오는데, 이 거대한 절벽에 대한 묘사는 글이나 사진으로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직접 보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클립스 오브 모어에 펜스나 울타리 같은 어떤 안전장치도 없다는 사실. 절벽 끝에 ‘여기서 더 이상 가지 마세요(Please, Do not go this point)’라고 씌어진 안내판이 달랑 서 있을 뿐이다. 비교적 담이 큰 여행자들은 절벽 끝에 납작 엎드려 풍경을 감상하는데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이 흥건히 고인다.

아참, 골웨이에서는 반드시 굴 요리를 맛볼 것을 권한다. 골웨이 시내에 있는 ‘킹스 헤드(Kings head)’라는 펍에서 오이스터 스페셜을 먹었는데, 생굴과 함께 샐러드, 검은 빵이 나왔다. 이 펍의 주인 말로는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 등 할리우드 스타들도 찾아온다고 하는데,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Plus Info
인천국제공항에서 더블린까지 바로 연결되는 직항 편은 없다.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거쳐야 한다. 런던 개트윅국제공항에서 라이언 에어(www.ryanair.com) 등 저가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 저렴하다. 통화는 유로화를 사용하며 유효한 여권만 있으면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 시차는 한국 시간보다 9시간이 늦다. 오코넬 거리와 템플 바 지구는 시내 중심부답게 숙박 시설이 풍부한 편인데, 유명 펍들이 몰려 있는 템플 바 지구의 숙소는 밤이 깊어도 좀 시끄러울 수가 있다. 그 대신 온갖 관광객들과 섞여 흥겨운 저녁 시간을 보내기에는 적합하다. 이삭 그룹(www.isaacs.ie)은 호텔과 호스텔 등 다양한 등급의 숙박 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더블린 관광청 홈페이지(www.visitdublin.com)에서 숙소를 검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오코넬 스트리트는 더블린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항상 많은 인파로 가득한 이 거리는 마치 서울의 강남을 연상시킨다. 항공사와 서점, 우체국, 호텔, 백화점 등이 몰려있는 상업과 금융의 중심 거리다. 거리의 남단은 강을 가로지르는 오코넬 다리와 이어지며, 다리를 건너 조금만 더 가면 나이트라이프의 중심가인 템플 바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