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본질과 대책’ 펴낸 김윤환 전 한국금융연수원장
본질과 대책, 어찌 보면 참으로 상투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과연 금융위기에 진짜 대책이란 게 있긴 한 것일까. 대책이 있더라도 정말로 필요한 순간, 다시 말해 예방이 가능한 것일까. 만일 예방할 수 있다면 왜 이토록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금융위기가 재현되고 그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금융위기 본질과 대책’ 이 책 한 권에 들어 있다. 저자인 김윤환 전 한국금융연수원장의 금융위기에 대한 연구와 고찰은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에겐 ‘IMF 외환위기’로 익숙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그것이다. 당시 김 전 원장은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냉철한 머리’가 요구되는 직업임에도 앞으로 국민과 기업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커졌다. 그 뒤 ADB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김 전 원장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집중적으로 연구·분석했고, 그때부터 금융위기는 큰 숙제로 남아 있었다.금융위기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그야말로 격동을 일으키는 걸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허리케인이 지나가면서 마을을 완전히 삼키듯 하는 걸 보면서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위기를 제대로 알아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뿐만이 아니죠. 최근 100년 사이 얼마나 많은 금융위기가 있었습니까. 인류사에 있어 가장 큰 침체기였던 1930년대 세계대공황 당시 미국이나 유럽의 실업률은 30~40%였어요. 1980년대 중남미 외채 위기도 엄청났어요. 최근 미국발(發), 유럽발 위기가 전 세계에 끼친 악영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죠. 본질을 알고 대책을 세워 가능하다면 다시는 금융 허리케인이 오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합니까. 안다고 해서 예방이 될까요.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18세기 후반 이후 꽤 큰 위기만 28번이었어요. 평균적으로 10년 내외에 한 번씩 터진 꼴입니다. 그걸 보면서 생각한 게 정책 당국자나 금융 담당자, 연구가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된 금융위기를 보면서 교훈을 얻었을 텐데 왜 계속 터질까 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곤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교훈을 배우지 못했거나 아니면 잊어버리는 것인가. 그런 맥락에서 보면 그래선 안 되겠지만 앞으로도 금융위기는 계속 터질 겁니다.”
학습효과가 없다기보다는 망각한 게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시 분명 교훈을 얻긴 했겠지만 10년 안에 다 잊어버리는 거죠. 전쟁의 근본적 동기는 탐욕과 무절제인데 금융위기의 본질도 마찬가집니다. 리스크 경시, 무절제, 공짜 심리가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본질이죠. 고수익만 바라보고 그 안에 내포된 위험을 무시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무절제한 투자 계획과 해외 차입 등을 일삼으며,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 ‘공짜 복지’를 즐기니 위기가 올 수밖에요.”
금융위기를 한번 맞고 나면 체질이 허약해져 다음 위기 때 더 크게 휘청거리는 것 아닐까요.
“그 말이 맞습니다. 금융위기는 터지는 국가에서 계속 터져요. 한번 허리케인을 맞을 때마다 회복이 되는 것 같지만 아닌 거죠. 첫째, 잠재 성장 능력이 약화됩니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6~7%였는데 지금은 2~3%죠. 둘째, 기업가 정신이 퇴화해요. 많이 벌려고 하지 않고 안전하게 버는 쪽을 택하는 거예요. 지금 보세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쌓아두고 있지 않습니까. 셋째, 경제적 소득불평등이 심해져요.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빌딩이나 기업을 싼값에 사들일 기회가 되니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어려워지죠. 중산층은 무너지고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한번 위기를 맞으면 펀더멘털이 약해지는 겁니다.”
지금 시대는 과거와 달리 국가 간에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죠.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금융위기의 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한 나라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나라와 해당 국가의 채권을 산 나라에만 한정됐지만 이젠 전 세계로 퍼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금융과 무역 등의 연계가 굉장히 심하니까요.”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대책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금융위기는 피하는 게 최선이지만 만일 닥쳤다면 매우 신중하고 효과적인 위기관리 대책을 실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신속한 기간 내에 탈출하는 게 중요해요. 첫째가 성장 속 위기 탈출(growing out)입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우리는 ‘IMF 외환위기’라고 하는데 그만큼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안정화 조건이 까다로웠어요. 그 많은 조건들을 수용하면 기업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점은 성장은 기다리고 금융 안정부터 하자는 것이었는데, 반대로 했더라면 수출이 늘고 수요가 늘어가고 기업이 활성화돼 경제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IMF도 나중에 제조업이 강했던 한국에 대해 판단이 틀렸었음을 시인했죠. 미국이나 유럽, 한국처럼 제조업이 강한 나라들은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과감하게 통화 확대를 해야 합니다. 둘째가 초기 단계에서 재정과 금융을 완화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선 최근 위기가 발생한 미국의 조치가 적절했지요. 셋째는 빈곤층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꼭 실시해야 해요. 빈곤의 대물림이 시작되지 않도록 교육과 건강을 무상으로 지원해야 해요. 넷째가 단계적 구조조정입니다. 1차로 조정을 하고 상황을 봐가며 다시 한 번 구조조정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다섯째는 범국가적 고통 분담 시책을 꼭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중앙정부가 주도해서 단일화된 부실자산 관리기구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선 우리나라가 참 잘했고 많이들 배워갔습니다.”
최근의 미국발, 유럽발 금융위기는 어느 단계라고 보십니까.
“미국은 회복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여요. 그런데 유럽은 비정상성이 잠재돼 있습니다. 역사 이래 유럽처럼 국채가 부도난 적은 없었다는 점이 그래요. 이제는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도 부도가 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 겁니다. 그다음으로 무서운 게 유로존입니다. 현재 유로화를 쓰며 통화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가 17개국인데, 그들의 노동과 자본이 다 얽혀 있죠. 17개국 중 한 나라만 터져도 나머지 국가가 다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럽이 완전히 회복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워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