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금도 관리해야 하는 시대다. 연금 상품에서 보장하는 금리 수준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 저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뉴기니, 안데스 등 전통사회 농부들이 밭을 분산하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분산 경작을 통해 다양한 리스크로부터 모든 밭이 한꺼번에 황폐화되는 위험을 줄이고 다양한 작물을 얻었던 그들의 지혜는 오늘날 연금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러스트 김영민
일러스트 김영민
2013년 상반기 금융 시장은 난기류 속의 비행기마냥 크게 요동쳤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다간 벌어놓은 돈마저 잃을 가능성이 크다. 벌어놓은 돈은 적은데 노후는 길어지는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의 선택이무위험 자산에 몰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 연금 시장이다. 흔히 연금은 노후 생활의 종자돈으로 여겨지는 까닭에 금융 시장이 안정적이지 않을수록 연금 가입자들은 안전한 상품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연금이 노후 생활의 진정한 안전판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연금의 명목가치가 아니라 실질가치다. 즉 연금이라는 통장에 찍힌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양과 질이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연금의 구매력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기대한 대로 노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뉴기니 사람들이 밭을 분산하는 다섯 가지 이유
이제는 연금도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다. 연금 상품에서 보장하는 금리 수준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 저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을 통해 노후에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연금의 샘물을 여러 개 파둘 필요가 있다. 즉 연금 상품을 속성이 다양한 것으로 분산하거나, 하나의 연금 상품이라면 그 적립금의 운용처를 다양하게 흩어놓고 관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소개하고 있는 캐럴 골란드(Carol Goland)의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골란드는 안데스의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서 생활하는 농부들의 분산된 밭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1993년에 발표했는데, 여기에 대해 개발 전문가들은 “농부는 하루 일과의 4분의 3을 밭들 사이를 오가는 데 허비해야 한다. 게다가 밭의 면적이 수 제곱미터가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농부들끼리 농지를 교환해서 땅을 한 곳에 집약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골란드의 연구는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전통사회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효율성보다는 위험관리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분산된 밭이 많을수록 시간당 평균 수확량은 떨어지지만, 굶어죽을 만큼 수확량이 떨어지는 위험도 낮아진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이런 내용을 골란드가 Q라고 명명한 한 가구의 예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Q는 중년의 남편과 부인, 15세 된 딸 하나가 전부였다. 그들이 기아를 피하려면 매년 에이커당 1.35톤의 감자를 수확해야 했다. 만약 그들이 한 곳에만 감자를 심었다면 어떤 해에나 굶어 죽을 가능성이 37%로 상당히 높았다. 3년에 한 번꼴로 닥치는 흉년에는 그들은 앉아서 굶어 죽어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기아 기준선보다 두 배나 높은 에이커당 3.4톤을 수확하는 밭을 선택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밭을 6곳에 분산해도 기아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7곳 이상으로 밭을 분산해야만 기아의 위험이 제로(0)로 떨어졌다. 물론 밭을 7곳 이상으로 분산하면 평균 수확량이 에이커당 1.9톤으로 떨어졌지만 1.5톤 미만으로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기아로 굶어 죽을 염려가 없었다.”

골란드가 연구한 20가구는 그들이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경작해야 한다고 계산된 밭의 수보다 평균적으로 두세 곳을 더 경작했다. 물론 밭이 분산된 까닭에 그들은 농기구를 운반하고 밭을 오가는 동안 더 많은 칼로리를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아를 피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만하다.

나아가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누비고 다녔던 뉴기니 지역 농부들의 경우 경작지를 최소 5곳에서 최대 11곳까지 분산해놓고 있으며, 농가당 평균 경작지 수는 7곳이라 말한다. 처음엔 그도 자신의 친구가 원래의 밭에서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외딴곳에 다시 밭을 마련하는 행동을 보고 어리둥절했으나, 뉴기니 사람들이 밭을 분산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듣고는 수긍이 갔다고 한다. 그 다섯 가지는 폭풍우, 병충해, 돼지, 쥐에 의해서 모든 밭이 한꺼번에 황폐화되는 위험을 줄이고, 기후권이 다른 3곳의 고지를 경작해서 다양한 작물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안데스 지역의 농부들은 적게는 9곳에서 많게는 26곳까지 평균적으로는 17곳을 경작한다고 한다.


소규모 농부들도 아는 분산투자 전략
정말 뛰어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들에게 배워야할 점은 다름 아닌 분산투자다. 뉴기니 농부들이 발품을 팔아가며 외딴곳에 밭을 일구는 것에서는 지역의 분산을, 기후가 다른 3곳의 고지를 경작하는 것에서는 시간의 분산을, 폭풍우와 병충해 등에 대비하는 모습에서는 종목 또는 상품의 분산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수익률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배워야 한다. 기름진 땅에 경작을 집중시키면 소출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소출이 떨어질 가능성이다. 만일 뉴기니 지역의 농부들이 현대 개발자들이 주창한 것처럼 효율성만 따져 집중투자를 했다면 아마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뉴기니 농부들은 연금처럼 노후 생활의 종자돈을 굴리는 데에는 수익률 지상주의보다 수익률 안정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럼에도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온통 수익률의 절대적 크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에서 조금 더 높은 생산량에 만족하는 전통사회 농부들의 지혜를 오늘날 세계에 대입하면 다름 아닌 안정적인 수익률 확보다. 요즘 들어 부쩍 인구에 회자되는 빈도수가 늘어나고 있는 중위험·중수익 전략이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다이아몬드도 이런 논리를 제대로 직시하고 있다. 역시 대가답다. 그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세계 전역의 소규모 농부들은 시간당 평균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방법과 수확량이 일정한 위험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의 차이를 알고 있지만, 미국의 많은 투자자들은 그 차이를 무시한다. 예컨대 당신에게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먼 미래에 사용하려 한다면, 때때로 닥치는 불황기에 이익률이 제로 이하로 떨어지더라도 시간당 평균 이익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택하는 게 맞다. 그러나 투자 수익에 의존해서 현재를 살아간다면 농부들의 전략을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당 평균 수익률이 낮더라도 당신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수준보다 연수익이 항상 높아야 한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