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작품이 작가와 닮은 건 당연한 이치. 작품을 통해 유추해본 이세현 작가는 자기 의지와 색깔이 누구보다 분명한 작가였다. 직접 마주한 뒤의 느낌은 예상보다 더 강렬했다. 이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붉은 산수화’를 실물로 접했을 때의 그것처럼.더불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호기심이 일었다. 산수화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풍경들이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는 듯한 즐거움을 준 것처럼.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 안에 자리한 이세현 작가의 작업실. 온통 붉은색으로 점철된 작품 천지다. 거기에 여기저기 쌓여 있거나 흩어져 있는 사진 인쇄물들과 서적들, 그리고 대형 탱크 모형까지 만일 오픈된 공간이 아니었더라면 누군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풍경이다. 하긴 오해를 하기엔 이 작가의 ‘붉은 산수화’가 제법 유명하긴 하지만.
지극히 한국적 풍경인 ‘붉은 산수화’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가가 영국 런던에 머물던 당시 탄생했다. 30대 후반 뒤늦은 나이에 떠난 영국에서 이방인들이 흔히 겪는 혼돈의 시기를 보내며 ‘나는 무엇인가,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다 ‘가장 나다운 것’의 표현으로 탄생한 게 바로 ‘붉은 산수화’다. 군대 생활 중 야간투시경으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의 아름다운 자연을 모티브로 했다. 투시경을 통해 본 DMZ는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아름다움 그 자체였지만, 한편으론 적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그래서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장소라는 이중성을 띠고 있었다.
역시나 이 작가의 작품 또한 철저히 이중적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건설로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해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는 그의 시대정신이, 표면적으로는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파괴에 의한 디스토피아의 은유적 표현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추한 것을 추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아름답게 포장함으로써 오히려 추함을 강조하는 역설인 셈이다. 물론 그 기본 바탕은 ‘인류애’다.
레드 콤플렉스, 그 산을 넘다
2007년부터 시작한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시리즈는 현재 190번대 작업이 한창이다. 주로 해외에서 전시를 해온 이 작가가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대규모 개인전 ‘플라스틱 가든’에서는 다양한 ‘변주곡’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맥락은 레드 시리즈다.
산수화로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마을도 있고 거리도 있고 다양한 풍경이 공존하네요. 어쩐지 어딘가에 뭔가를 숨겨놨을 것 같아요.
“남한과 북한을 합친 대한민국의 풍경화이니 꼭 ‘산수(山水)’만 등장하는 건 아니에요. 시골 마을의 풍경들, 사라져가는 집들, 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 등 다양한 풍경이 들어 있죠. 현재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데 신작에서는 사람도 들어가요. 전쟁터의 사람들, 해수욕장의 여자 피서객 등 시대를 넘나들죠. 숨은 그림 찾기도 있어요. 누군가는 발견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죠.”
이를 테면 어떤 걸 숨겼나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부엉이 바위도 있고, 천안함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태어난 집, 고향인 거제도의 마을, 전 여자 친구들과 놀러갔던 풍경들도 있죠.(웃음)”
신작에서 사람을 등장시키게 된 건 어떤 계기에서인가요.
“지금까지 레드 시리즈가 분단과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공존, 죽음 혹은 삶의 스토리를 담았다면, 여기에 기호화되고 상징화된 인간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구성이나 표현 기법도 달라지면서 변화를 줄 겁니다.”
지난해 ‘플라스틱 가든’ 전에서도 ‘변화’에 방점이 찍혔는데요. 스스로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한가 봐요.
“런던에서의 삶의 행태와 지금의 삶은 달라요. 다시 말해 런던에서 머릿속으로 한국의 풍경을 생각하며 작업했던 레드 시리즈와 2009년 귀국해 직접 살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풍경은 또 다른 겁니다. 한편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지는 것도 있고요. 그런 변화들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났으면 하는 거죠. 물론 지난해 선보인 전시에서 나타난 변화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어요. 꼭 붉은색만 그리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작가에게 있어 변화라는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된다면 좋겠지만 저는 자기 성찰과 고민을 통한 변화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바뀌어 가는데 그걸 읽어내고 담아내려는 노력 말입니다.”
레드 시리즈는 진짜 붉은색만 사용하나요.
“붉은색과 크림슨 색(일반적으로 빨강과 장미색 사이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빨강)을 사용해요. 밝은 부분은 면봉으로 닦아내면서 표현하죠. 저는 어릴 때부터 붉은색을 워낙 좋아했는데 나이 들어가니 더 좋아지더라고요. 붉은 산수화 작업을 하면서 더 좋아하게 된 것도 있어요. 어디를 가나 붉은색을 띠는 것을 발견하면 애착이 가고, 붉은색 옷을 입은 여자를 보면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그래요.(웃음)”
그렇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붉은색의 상징성이란 게 있잖아요. ‘레드 콤플렉스’라는 말도 있고요. 우려는 없었는지.
“당연히 있었죠. 영국에서 처음 붉은 산수를 그렸을 때 영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어요. 영국 사람들은 왜 붉은색인지를 궁금하게 여겼지만, 한국 사람들 특히 우리 아버님 같은 세대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었어요. 젊은 층들은 농담 삼아 ‘빨갱이냐’ 할 정도였죠.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한국인들의 반응을 보니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싶어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반응 때문이라도 더더욱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가진 콤플렉스나 트라우마일 수도 있으니 산을 넘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작가가 자기 검열에 걸려 주저앉으면 안 되는 거니까요.”
막상 국내에서 레드 시리즈가 선보였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신선한 충격이라며 다들 놀라워했죠. 그 누구도 분단과 개발, 독재의 이야기를 서사적 구조보다 아름다운 실제 풍경 안에서, 그것도 붉은색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러고 보면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이 함께하는 이 작가의 작품은 현실이기도 하고 비현실이기도 하네요. 아름다운 유토피아지만 그 안에는 고통스러운 흔적이 있고요.
“여러 장의 풍경 사진을 겹쳐서 스케치를 하는데 귀국해서 자료 수집 차 2주에 한 번씩 여행을 다녔어요. 그렇게 전국을 돌았는데 다니다 보니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산세는 아름다운데 그 산세 안에 인간이 점령하고 있는 주거 형태, 상업 형태들이 너무 난개발이 돼서 아름다움이 사라져가고 있었죠. 요즘 다들 디자인을 부르짖는데 사실 디자인은 영원한 아름다움이 아니에요. 트렌드일 뿐이죠. 디자인이란 명목으로 인위적 힘을 가해 만들어진 자연이 과연 진짜 아름다운 걸까요. 자연스럽게 삶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것 그게 아름다운 디자인인 거죠. 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가 겪었던 분노와 화가 보일 겁니다. 다만 직접적이 아니라 시적인 느낌으로 숨겨서 이야기했죠.” ‘다름’ 인식 후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의 귀환
느꼈겠지만 이 작가는 지극히 현실 참여적이다. 시대 혹은 정치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기 색깔이 너무나 분명한 그지만 초기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전혀 다른 그와 마주한다.
영국으로 가기 전 작품 세계는 어땠나요.
“그때도 변화가 많긴 했어요. 대학 때는 조각과 설치 위주로 작업을 많이 했고, 이후엔 드로잉 설치 쪽을 많이 했죠. 어떤 때는 개념미술적인 것들에 집중했는데 그땐 어떤 특정 색깔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어서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한 작업들을 주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선 변화가 너무 심해 작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죠. 레드 시리즈만 본 사람들은 저의 예전 작업을 짐작하기 어려워하는데 반대로 예전 작업에 익숙한 분들은 지금의 작품을 보고 많이들 놀라요.”
영국에서 어떤 자극을 받고 달라진 건가요.
“처음에는 영어 공부만 하러 갔었는데, 그 1년 반 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았나, 어떤 존재였나에 대한 생각 말이에요. 당시엔 작품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존재의 두려움이 있었던 거겠죠.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름’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책으로만 봤던 문화적 차이가 직접 부딪쳐 보니 우열의 문제가 아닌 그저 다른 문화적 코드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들이 주류이고 현대미술이 발달해 있다고 생각했던 건 그저 학교 교육에 의한 프레임일 뿐이었던 거예요. ‘다름’을 인식함과 동시에 열등감이나 콤플렉스가 없어지면서 제 자신에 대해 더 돌아보게 됐죠. 예전에 했던 컨템퍼러리 작업들을 생각해 보면서 나의 문화, 정서, 환경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된 거예요. 유학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레드 시리즈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분간 작품을 팔지 않겠다”고 했더군요. 대단히 자신감에 찬 발언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랬었나요? (웃음) 사실 제가 그린 그림을 갖고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작가가 많이 소장하고 있어야 전시 준비도 할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에요.”
레드 시리즈는 초기 작품부터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세계적인 컬렉터인 울리 지그(Uli Sigg)가 ‘비트윈 레드’를 컬렉션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2007년 영국 첼시 예술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완전 무명이었던 저를 만나기 위해 지그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날아왔어요. 세계적인 컬렉터가 저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와 대화를 하면서 컬렉터들이나 업계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는 좋은 기회가 됐죠. 그 후 제 작품 중 여러 개를 샀다고 들었어요. 첫 만남 이후 종종 연락하고 지내고 제가 홍콩 아트페어나 바젤 아트페어에 참가하면 꼭 보러 오곤 해요. 지그는 저에게 굉장히 좋은 파트너예요.”
국내 컬렉터들과도 교류를 하나요.
“거의 없죠. 묘한 게 외국인 컬렉터들은 작가의 그림을 사면 스스로 먼저 연락을 하고 궁금해하고 소식도 전하고 하는데 우리나라 컬렉터들은 쑥스러워서 그런지 잘 나서질 않는 것 같아요.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면 좋을 텐데 그 부분은 좀 아쉬워요.”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 세계는 또 어떻게 변하고 발전할까요.
“글쎄요, 짐작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긴 한데 어떤 게 행위를 통해 드러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수많은 생각 중 90%는 사장되거든요. 하나 변하지 않는 건 어떻게 변하든 ‘인류애’에 대한 지향점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올해는 해외 전시가 많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탈리아 밀라노 개인전과 독일 쾰른 개인전을 준비 중이에요. 국내 전시는 아직 계획이 없는데, 사실 전시라는 게 기존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지 똑같은 이야기를 매년 반복해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커요. 해외 전시는 워낙 오래전부터 기획한 것들이라 레드 시리즈 중심으로 가는 거고요. 내년쯤에는 해외에서 지금 하고 있는 새 작업을 공개할 예정이에요. 장기적으로는 한 10년 후쯤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작업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아 사실 어느 정도 ‘전략적 즐거움’인 부분이 있거든요. 그날을 생각하니 벌써 행복하네요.(웃음)”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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