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Message]
인생에 수많은 멘토가 있지만 지금 우리에겐 나이 듦에 대한 삶의 지혜를 들려줄 이들이 필요하다. 여기, 온몸으로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을 대변하는 8인이 있다. 그들이 들려주는 아름답고 품격 있는 나이 듦에 관한 메시지.작가 오정희
“몸은 메말라가도 마음과 정신의 영토를 확장하는 중”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60대 중반의 나는 머리 염색을 그만두었다. 노모에게 막내딸의 백발을 보이는 일이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던 탓에 그때까지 계속해왔던 일이었다. 훨씬 늙어보였지만 거울을 통해 보는 내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를 이렇게 만나는구나 생각하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흔히 ‘몸이 늙지 마음이 늙느냐’고 하지만 백발이 되니 내가 명실공히 노년에 이르렀다는 자각이 들었다. ‘어르신’ 소리를 듣는 것, 자리를 양보 받는 일도, ‘이젠 나이 먹어서’라는 말로 두뇌 회전이나 동작의 굼뜸을 변명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반면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도 크게 잘못이 없는 경지’에 가까워지기는커녕 갈수록 ‘나잇값’에 대한 자의식이나 ‘노탐, 노욕, 노추’라는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게 되는 불편함, 어려움도 생겼다.
완경기에 이른 50세 때 어느 선배가 ‘거칠 바 없이 화려한 나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자식을 낳아 성년이 되도록 키웠으니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는 생물로서의 한살이를 끝내고 이젠 ‘나의 자유로운 삶’을 허용해도 될 것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50세가 되면 일주일에 하루는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봉사는커녕 어느 결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날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사, 인간사가 다 이렇게 뜻과는 달리 때를 놓치고 조금씩 어긋나기도 한다는 것을, 남과는 다르다는 의식이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앎’을 향한 도정이자 지향임을 깨닫게 된 것도 살아온 세월의 덕이니 감사할 일이다. 세상의 작은 귀퉁이에서 한 조그마한 사람으로 서성거리기만 했을 뿐이라는 아쉬움, 갈수록 궁금하고 신비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앎’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배우고, 또 배우고 싶다. 하여 몸은 조그맣게 메말라가도 마음과 정신의 영토를 확장시켜 가며 한없이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디자이너 이상봉
“화려한 날이 가면 즐거운 인생이 시작된다” 누구나 나이 들어 죽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더디게 나이 드는 방법으로 나는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을 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된 요즘에는 그게 너무 쉬워졌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젊은 사람들의 세계를 엿보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됐지 않나. 세상과 소통하다 보면 틀에 갇히지 않는다.
또 젊은 시절 자신을 힘들게 채찍질하며 살아왔다면 이젠 나를 위한 휴식도 필요하다. 가족을 위한 희생양, 조직의 소모품 같았던 자신을 보듬어주고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주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은퇴 후에는 가족끼리 마찰도 많은데 구성원들이 서로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탁구 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내는 골프를 즐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만 우리 부부는 각자의 취미생활도 존중해준다. 굳이 맞추려 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 다른 생각은 그 자체로 이해해 주는 것. 또 나는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엄청난 힐링이 된다.
주변에 보면 화려했던 젊은 날을 떠올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 안타깝다. 미래지향적인 마인드로 인생을 긍정하면 거기서부터 인생 이모작이 즐거워지리라 믿는다.
행복 전도사 정덕희
“인생도 사계가 있는 것, 어찌 봄만 아름다울까” 신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신 단 하나는 세월이다. 1년에 사계가 존재하듯 인생에도 사계가 있는 것. 어찌 봄만 아름답다 하는가.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 특유의 맛이 있는 법. 치열했던 시절의 흔적으로 팽팽했던 얼굴에 잔주름 그려지고 검은 머리 자연스레 하얀 옷 서서히 갈아입는 인생의 가을 끝자락. 진정한 아름다움은 만추에 있다. 다만, 만추의 멋을 누리는 비결은 얼굴에 세월 주름 그렸지만 마음 주름 피는 법을 안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지나온 세월이 세상의 알아차림을 위한 교육의 시간이었다면 이제 내 마음의 알아차림을 배워야 하는 나와 오롯이 동행해야 하는 가벼운 산책의 계절이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라는 의무의 옷을 벗어 버리고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 아침을 맞으며 내 몸에게 먼저 감사하는 삶을 살면 어떨까. 아직도 쿠데타 일으키지 않음에 대하여, 또한 쿠데타 중인 몸에게는 ‘그래, 그래 그만큼 썼으면 그럴 만도 하다’며 달래주고 어르고 만져주면서. 그리고 마음과 만나는 명상 시간, 내공을 다져야만 인생의 가을이 빛난다. 인생의 가을 맛은 시간 활용에 있다. ‘지루함이 생명을 갉아 먹는다’는 말처럼 지루할 시간을 주지 않아야 한다. 대가 없는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젊은 날 못해봤던 취미와 공부를 열성으로 하는 모습, 청춘은 마음으로 존재한다. ‘사막별 여행자’라는 책에서 아프리카 격언 중 ‘노인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불 탄 것과 같다’고 했다. 불타기 전에 열성을 다하는 모습, 스마트 에이징이다.
영화감독 송해성
“소중한 ‘가족’ 그 속에서 찾는 나이 듦의 참 의미” 영화 ‘고령화 사회’를 찍으면서 정말 행복했다. 그 행복감 자체가 영화가 주는 콘셉트이기도 했다. 촬영하는 동안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었는데 그 해답은 바로 ‘가족’에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가족과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를 한다. 일본 배우 겸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은 없어야 되는 존재”라는 말을 했다. 그냥 같이 사니까 가족인 거지 어떻게 보면 내 옆에 있는 친구보다 못한 존재가 가족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삶이 가라앉을 때 그걸 위로 끄집어 올려주는 것도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갈수록 우리 사회가 개인화가 돼가고 있지만 가족이야말로 지금 나를, 그리고 미래의 우리를 살게 해주는 희망의 끈이 아닐까.
은퇴 전문가 우재룡
“배우고 일하고 즐기고 나누는 삶을 지향하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개발기구(OECD) 중에서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노인들 중 80%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존재 가치가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은퇴 후 노후 생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은퇴 후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고,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노후 준비를 재무적인 문제로만 좁게 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선진국처럼 현명하고 멋있게 은퇴 후 삶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대 수명 100세 시대에 진정한 부자란 가족, 공동체, 취미 여가, 사회활동, 건강, 재무라는 여섯 가지 자산을 골고루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는 건강하고 돈 많은 사람이 노후 준비를 잘했다고 잘못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고령화가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진행된 서양에서는 행복한 노후란 배우고 일하고 즐기고 나누고 함께하는 삶을 말한다고 한다. 멋진 말 아닌가. 그래서 이제부터는 풍요한 노후보다는 행복한 노후를 추구해야 한다. 덜 가지고 좀 더 즐기고 활발하게 남과 교류하며 나누는 삶을 지향하자. ‘가진 것을 나눌수록 행복은 늘어나고, 내 마음을 남에게 활짝 열수록 더 가득 찬다’는 말이 현명하게 나이 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원칙 아닐까.
배우 나문희
“시간이 주는 나이테에 감사하며…”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면서 더 삶이 여유로워지고 풍부해졌다. 주변에서 인정해주면서 더 자신감이 붙은 것도 이유겠지만, 사실 나는 남들과 잘 비교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삶, 내 길을 묵묵히 갈 뿐. 나이 들면 자연스레 조금씩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게 되는데 일에서만큼은 욕심을 내고 용기를 더 내면 좋지 않을까. 그 일이 꼭 대단한 일일 필요도 없다.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이면 되는 거니까.
한 가지 더,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이 갖는 에너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관객들이 주는 에너지를 받고 힘을 내는 것처럼. 모든 관계는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매력적이지 않을지. 그런 이들을 보면 누구나 ‘아,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황금기’라고들 하는데, 인생에서 황금기는 꼭 한 번뿐일 이유도 없고, 젊을 때만 찾아오란 법도 없지 않을까. 시간이 주는 나이테를 감사히 여기자. 그런 자유로운 마음가짐이 노년기를 황금기로 만들 테니.
만화가 박재동
“100세까지 개구쟁이! 동심 잃지 않아야” 예술가가 건강을 이야기하면 무식하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뚱어리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이 약해지면 40대라도 늙은이고 건강하면 70세에도 철인 3종 경기에 나간다고 하지 않나. 나는 요즘 무조건 걸으려 한다. 엘리베이터보다 가급적이면 계단을 오르내리려 노력한다. 몸이 가뿐해지니 마음의 활력도 되찾았다.
또 하나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동심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와도 평등하게 지내자는 주의라 제자들에게 젊은 에너지나 영감을 많이 얻는다. 나이가 들수록 동심을 유지하며 어린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보통 사람들은 ‘고상하게 늙어야 한다’, ‘잘 늙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 피곤하게 한다. ‘이런 어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개구쟁이가 돼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살면서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찾아나서 보자. 나는 요즘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도보여행가 황안나
“걷다 보면 모든 삶은 기적으로 다가온다” 예순한 살 때부터 도보를 시작했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벌써 10년이 훌쩍 흘렀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되지만 일부러라도 호기심을 많이 갖는 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에 좋은 것 같다. ‘어딘가로 가보고 싶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주저 말고 행동으로 옮겨보길 권한다. 나도 처음에는 무서웠다. 용기 내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는데, 막상 떠나 보니 두려워할 게 아니었다. 아직 세상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구나 싶었다.
나는 걷는 동안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했다. 길가에 피어난 야생화도,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는 사소한 진리도 대단한 기적처럼 여겨지더라. 작은 것에 기뻐할 줄 알고 행복을 누리는 자세는 우리 나이에 더 필요한 것 같다. 내 인생에도 즐거움보다는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이 더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 애써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특히 걸으면서 집착과 번뇌 버리는 연습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긍정의 힘을 믿는 것. 상투적이지만 그게 정답인 듯하다.
정리 박진영·이윤경 기자
사진 한국경제신문DB·여백미디어·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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