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폴즈(Penfolds)는 전 가격대에 걸쳐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호주의 국보급 와인이다. 펜폴즈 한 병에는 호주의 관대한 정신과 아름다운 경치가 담
[Wine Story] 168년 전통의 호주 대표 프리미엄 와인 펜폴즈
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8년간 호주 와인을 선도하며 세계적인 와인으로 성장한 펜폴즈 와이너리를 소개한다.



펜폴즈의 역사는 1844년 영국에서 호주로 이주한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즈(Cristopher Rawson Penfolds)가 와이너리를 건립하면서 시작된다. 의사인 펜폴즈는 그의 부인 메리 펜폴즈, 딸과 함께 호주 애들레이드에 정착하면서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입수한 포도 묘목을 함께 들여왔다.

펜폴즈는 애들레이드에서 7km 거리에 위치한 맥길(Magill) 지역에 100헥타르 규모의 대지를 구입해 직접 포도밭을 조성했다. 펜폴즈는 여기에 집을 짓고, 영국에서 살던 집의 애칭을 따서 ‘더 그랜지(The Grange)’라는 이름을 붙이고 병원을 개업했다.

병원은 성황리에 운영됐으며 펜폴즈는 와인에 다양한 의학적 효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환자 치료에 쓰기 위해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펜폴즈의 유명한 슬로건 ‘1844년부터 영원히(1844 to evermore)’는 와인을 처방 약재로 사용하던 펜폴즈의 초기 역사에서 비롯됐으며 오늘날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펜폴즈 와인을 처방전으로 음용했던 환자들은 이후 의료 상담보다는 와인을 문의하러 펜폴즈를 찾는 일이 잦아졌고 이때부터 와인하우스 펜폴즈의 명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오너가 바뀔 때마다 또 다른 성장을 이룬 펜폴즈

1870년 펜폴즈 타계 이후 부인인 메리 펜폴즈가 와이너리 운영을 맡았다. 1870년대까지 펜폴즈 와이너리는 그르나슈(Grenache), 베르데호(Verdelho), 무베드르(Mouvedre),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enez) 등 다양한 품종을 아우르는 부티크 와이너리였다. 이 시기는 호주 내수시장 특히 빅토리아와 사우스 웨일즈 지역의 와인 소비가 큰 폭으로 증가한 때로 펜폴즈도 전성기를 구가한다.

1889년 맥길 빈야드의 와인 리스트를 보면 토카이(tocai)·셰리(sherry)·포트(port)와인뿐 아니라 정찬 와인에서 클럽용 파티 와인까지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생산했다. 현재까지도 펜폴즈는 남호주 와인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메리 펜폴즈가 호주 와인 역사에 지대한 족적을 남기고 1896년 타계한 이후 사위인 토마스 프랜시스코 하일랜드(Thomas Francisco Hyland)가 와이너리를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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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랜드가 와이너리를 경영한 1900년대 초반은 포트와인이 크게 유행했다. 펜폴즈는 1920~30년대에 포트와인으로 다시 한 번 큰 성공을 거둔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호주에서는 와인 시장이 매우 제한적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폴즈는 퀸즐랜드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이주민들을 위해 이탈리아 레드 와인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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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펜폴즈는 바로사밸리에 있는 칼림나(Kalimna) 빈야드를 구입한다. 1940년대 후반 맥라렌베일, 헌터밸리 등의 호주 프리미엄 와인 산지에 빈야드를 조성하는 등 펜폴즈는 1900년대 초반 엄청나게 규모를 확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 와인 시장은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전쟁에서 유럽 와인을 경험한 장병들이 돌아오고, 유럽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호주 와인의 근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유럽에서 통용되던 클라렛(claret), 에르미타주(ermitage), 버건디(burgundy) 등의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다.

와인 근대화에 앞장선 펜폴즈는 1990년대 들어 열정적으로 다양한 와인 제조에 매진했다. 화이트 그랜지(White Grange) 프로젝트 결과 야타나 샤도네이(Yattana Chardonnay)가 소개됐는데, 야타나의 출시와 함께 펜폴즈는 전 세계 와인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1999년에는 와인 전문지인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그랜지 1955년 빈티지가 ‘세기의 와인(wine of the century)’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펜폴즈의 새 장을 연 그랜지의 탄생

펜폴즈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그랜지의 탄생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맥스 슈버트(Max Schubert)는 단지 심부름꾼으로 펜폴즈 와이너리에 합류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위치를 상승시켰고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맥길 에스테이트의 와인메이커의 일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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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슈버트는 펜폴즈 패밀리가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해외 와이너리의 전략적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파견됐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강화 와인 제조 방식을 익히는 것이었으나 그는 보르도에도 방문해 수십 년 된 고급 와인들을 테이스팅했다.

보르도 방문을 계기로 슈버트는 수십 년간 훌륭한 품질을 유지하며 저장이 가능한 호주 와인을 생산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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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돌아와 프리미엄 호주 레드 와인 프로젝트에 착수한 그는 1951년 실험적인 펜폴즈 그랜지를 생산했다. 그는 쉬라즈(shiraz)를 사용한 발효 과정과 뉴아메리칸 오크통을 사용한 숙성 과정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했다.

펜폴즈 그랜지는 당시로써는 매우 획기적인 와인으로 장기 보관성, 응집력, 밸런스 등에서 기존 호주 레드 와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출시 초기에는 오히려 음해성의 나쁜 평가가 잇따랐다. 이에 펜폴즈 와이너리 임원들은 1957년 펜폴즈 그랜지의 버티컬 테이스팅을 진행했고, 그 결과 슈버트에게 펜폴즈 그랜지 생산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슈버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이후로도 3년간 1957년, 1958년, 1959년 빈티지 펜폴즈 그랜지를 비밀리에 생산했다. 그랜지 생산금지 조치는 에르미타주 품종으로 생산된 1955년 빈티지가 호주와인대회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해제됐다.

1955년 8월,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와인 잡지 와인 애드버케이트(The Wine Advocate)를 통해 “그랜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풍부하고 응집력이 뛰어난 드라이 테이블 와인”이라며 극찬했다.

위대한 호주 와인(a great Australia wine)으로 그랜지는 호주 와인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호주 와인의 명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제공 롯데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