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문제가 기업의 경쟁력과 실적에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주식 투자자들도 특허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난 8월 특허 문제로 애플에 ‘한방’ 크게 먹었던 삼성은 그달 또 한 차례 특허 문제로 자존심을 구겼다. 코스닥 상장업체인 한미반도체와의 특허 소송에서였다. 반도체 후공정용 장비를 만드는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2월 경쟁사인 세크론(삼성전자가 지분 78%를 보유한 자회사)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한미반도체 매출의 60%대를 차지하는 주력 장비인 ‘소잉앤드플레이스먼트(sawing and placement)’에 적용된 특허기술을 세크론이 무단으로 사용해 경쟁 제품을 제조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8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세크론은 해당 장비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고 손해배상금 2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한미반도체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로 파산했던 벤처기업들의 특허권을 다수 인수한 업체들이 2000년 중반 이후 로열티 등으로 수입을 올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로 파산했던 벤처기업들의 특허권을 다수 인수한 업체들이 2000년 중반 이후 로열티 등으로 수입을 올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특허 소송 급증

특허 문제가 기업의 경쟁력과 실적에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주식 투자자들도 특허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 화학회사 듀폰과의 특허 소송으로 1조 원 손해배상금과 첨단 섬유제품 생산 및 판매 금지 판결을 받은 코오롱인터스트리의 주가가 작년 7월 13만 원대에서 현재 6만 원대로 반 토막 난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김병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특허침해 소송에서 패소한 기업들은 사업 전반이 위태로워지고 심각한 경우 파산에 이르는 사례도 있다”며 “이를 지켜본 많은 기업들이 특허를 하나의 자산이자 적극적인 사업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허 관련 소송 건수는 금융 위기 후 급증하는 추세다. 2009년 2371건이었던 글로벌 특허 소송은 2010년 3921건으로 늘었고, 작년에는 5031건을 기록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3983건의 특허 소송이 발생해 2010년 전체 소송 건수에 해당할 정도로 급증했다.

특허가 중요해지면서 특허 관련 소송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NPE(non-practicing entity)라고 불리는 특허 전문회사다. 특허권을 사들인 뒤 특허 소송을 통해 합의금이나 배상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20세기 산업 전쟁이 유형자산 중심의 경쟁이었다면 21세기는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무형자산 간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라며 “이미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파산했던 벤처기업들의 특허권을 다수 인수한 업체들이 2000년 중반 이후 로열티 등으로 수입을 올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현재 미국 기업이 보유한 지재권의 경제적 가치는 5조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함께 주식시장에 상장한 NPE 기업들의 주가도 크게 올랐다. 대표적인 NPE 기업인 아카시아의 최근 2년간 주가상승률은 나스닥 평균의 10배 이상이며, 애플을 2배 이상 웃돌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과 관련한 글로벌 특허 소송은 애플과 삼성, 듀폰과 코오롱인더스트리 외에도 많다. LG전자와 LG이노텍은 오스람과 발광다이오드(LED) 특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신일본제철과 1조3000억 원 규모의 특허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제약사업과 관련해 화이자와 특허 소송을 하고 있다.

특허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했던 사례도 있다. 유무선 지불결제솔루션 업체인 다날과 KG모빌리언스는 2002년 ‘단문메시지서비스(SMS)를 이용한 전자결제 승인 방법 및 시스템’에 대한 특허와 관련해 분쟁 중이었다.

그러나 특허 소송으로 상대방을 몰아세우기보다는 향후 휴대전화 결제 시장의 확대에 대비해 서로 특허권을 공유하면서 이후 10년간 2개 회사가 실질적으로 시장의 90% 이상을 과점 형태로 장악하면서 그에 따른 수혜를 누려 왔다.

휴대전화 결제 시장 규모는 890억 원에서 2011년 2조2000억 원으로 성장했다. 급성장하는 시장이었지만 두 회사가 초기에 특허를 공유하며 진입장벽을 구축했던 덕분에 경쟁사들이 잇따라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특허 문제가 국내 기업에 부정적인 이슈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꼭 해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예로 든 한미반도체는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진입을 기술력으로 막아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KOSDAQ] 급증하는 특허 분쟁, 지재권 수혜주를 찾아라
특허 수혜주는…

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로열티 수입을 꾸준히 올리는 곳들이 있다.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사업 초기만 해도 엔진 관련 기술이 전무해 일본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내고 기술을 이전받아야 했다. 1980년대 중반 미쓰비시는 현대차의 기술 개발을 막기 위해 로열티의 50%를 깎아줄 테니 현대차의 마북리연구소를 폐쇄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보다 장기적인 수익을 위해 독자적인 엔진 개발에 나서게 됐다. 1991년에 이르러서는 액센트를 출시하며 승용차 부문의 로열티 지급은 모두 털어냈고, 2005년에는 상용차 부문에서도 기술 독립을 실현했다. 지금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로열티를 지급받는 상황이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1473억 원과 1799억 원을 로열티 수익으로 올렸다.

코스닥에서는 위메이드가 2010년과 작년 768억 원과 763억 원의 로열티를 받았다. 위메이드가 개발한 게임인 ‘미르’ 시리즈가 중국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다. 그 밖에 JCE, 바이로메드, 자화전자 등도 안정적으로 로열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IT 업종에서 특허 이슈와 더불어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종목으로 윈스테크넷과 슈프리마, 인포뱅크를 특허 수혜주로 꼽았다.

윈스테크넷은 국내 네트워크 보안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1위 업체다. 보안 관련 특허 23건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거래처를 늘려가고 있다. 김병주 연구원은 “보안업계에서 특허는 기술력을 입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2011년 일본 NTT도코모에 제품을 납품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 데에는 네트워크 보안 관련 특허가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NTT도코모가 여러 보안장비를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윈스테크넷은 시스코, IBM, 맥아피 등 글로벌 유수의 보안 제품보다 높은 성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슈프리마는 바이오인식 전문 업체로 950여 개의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에서 특허침해 소송에 휩쓸리기도 했다. 슈프리마가 미국 인구통계청에 지문 라이브스캐너 공급에 나서자 미국 바이오인식 전문 기업인 크로스매치가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견제에 나선 것이다.

소송은 슈프리마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슈프리마의 제품이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리면서다. 이 덕분에 슈프리마의 미국 진출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실적과 주가 역시 큰 폭으로 뛰었다.

인포뱅크는 양방향 문자서비스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현재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생방송 1억 퀴즈쇼’ 등 방송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문자 투표 뒤에는 모두 인포뱅크가 버티고 있다. 이 기술은 인포뱅크가 1998년 원천특허를 취득했고, 이후 특허무효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2010년 대법원에서의 승소로 2018년까지 독점적 권리를 가지게 됐다.


임근호 한국경제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