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 과거보다 향상된 삶을 위해서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실질적인 힘, 능력이 필요하다. 로또복권에 당첨되거나 그 밖에 외부 환경으로 갑자기 신분이 상승되지 않는 한 개인 능력의 도달 한계는 명확하다. 그 한계를 넘는 힘이 있다면 바로 ‘배움’을 통해서다. 배움과 책은 불가분이다. 독서를 통해 내면의 힘을 함양하고, 실천을 통해 통섭의 힘을 얻는다. 그 지성의 힘은 ‘서재’가 출발점이다.
이번 호에는 다양한 계층의 지성인들의 서재를 들여다본다. 최고경영자(CEO)의 서재를 찾아가 그들의 책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인생과 경영 이야기를 들어 본다. 조선 선비들의 서재를 탐방하면서 그들의 삶과 철학을 조망한다. 찰스 윌리엄 엘리엇이 하버드대의 총장으로 재직 시 추진했던 대중을 위한 ‘5피트 책꽂이’ 프로젝트의 산물인 ‘하버드 클래식’에 소개된 도서들을 살펴본다. 경제학자가 인문학 도서에 숨겨진 다양한 경제 원리와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과학자이자 통섭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통섭형 인간을 위한 다양한 레시피의 지식 만찬을 소개한다. CEO의 서재를 엿보다
‘CEO의 서재(한정원 지음·행성B잎새)’는 성공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리더들에게 서재란 어떤 의미인지, 젊은 날의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과 한 기업의 리더가 된 지금 경영에 영감을 준 책들은 무엇인지 친절하게 들려준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이철우 롯데쇼핑 총괄사장 등 8인의 CEO가 등장한다.
본문은 책에 관한 이야기로만 국한하지 않았다. 좀 더 폭을 넓혀 그들의 인생역정과 경영철학에 대한 내용까지 담았다.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CEO들의 지혜와 경험을 토대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지금의 그들을 만든 도서 목록과 세계를 무대로 도약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권하는 추천 도서도 만나볼 수 있다. 윤영달 회장은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한 권의 책으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서울 남영동 본사의 서재에는 고전들이 즐비하다. 특히 ‘장자’, ‘논어’, ‘맹자’ 같은 중국 고전은 아예 출판사별로 있을 정도다. 신헌철 부회장의 서재에는 역사서가 유독 많다. ‘대망’, ‘삼국지’, ‘로마인 이야기’ 등 단행본보다는 역사물 시리즈가 대부분이다. 그중에서도 야마오카 소하치가 쓴 ‘대망’은 그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이다.
저자가 1년 여 동안 다양한 분야의 CEO를 만나고 그들의 ‘책, 인생, 경영’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린 결론은 ‘CEO들에게 책이란 경영철학의 원천이었다’고 전한다. “그들은 책에서 읽은 것을 체화해 기업 경영에 적용하고 터득한 지혜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행동파 CEO’였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책은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선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었으며,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도록 부추기는 훌륭한 참모진이었다.”
조선 선비의 서재를 엿보다
옛 선비들에게 서재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서재는 단순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었다.
‘조선의 선비 서재에 들다(고전연구회 사암 지음·포럼)’는 조선의 선비들이 생활했던 공간, 서재 30여 곳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대 최고의 학문과 식견을 자랑했던 유성룡, 정약용, 조식, 김득신, 송시열 등의 서재와 이에 얽힌 이야기를 옛 문헌에서 골라 수록했다. 서재와 인물들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한다.
임진왜란의 국난을 슬기롭게 헤쳐나간 명재상이었던 유성룡의 ‘원지정사(遠志精舍)’는 평소 독서도 하고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웠는데, 그가 하회마을에 세운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 유성룡은 원지정사라는 이름에 크게 세 가지 뜻을 담았다. 첫째는 원지(遠志), 곧 ‘원대한 뜻’이라는 말 그대로 유학자로서 곧은 기상과 올바른 품성을 갖고 살겠다는 뜻을 담았다. 둘째는 들어와 앉아 있을 때 ‘원지’ 운운하다가 세상으로 나가면 권력과 출세 앞에서 ‘소초(小草·초라한 풀)’가 되고 마는 자신을 탓하는 뜻을 담았다. 셋째는 도연명의 시를 빌어 원지란 곧 ‘원지(遠地)’이기도 하다면서 세상의 온갖 욕망과 멀리하려는 자신의 뜻을 담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조선의 대표적인 독서광인 이덕무의 서재 이름은 ‘구서재(九書齋)’다. ‘구서(九書)’란 책을 읽는 독서, 책을 보는 간서, 책을 간직하는 장서, 책 내용을 뽑아 베껴 쓰는 초서, 책을 바로 잡아 고치는 교서, 책을 비평하는 평서, 책을 저술하는 저서, 책을 빌리는 차서, 책을 볕에 쬐고 바람에 쐬는 폭서를 말한다.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체득하겠다는 뜻과 의지를 담아 ‘구서재’라는 이름을 붙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조식은 서실(書室) 이름을 ‘뇌룡사(雷龍舍)’라고 했는데, 이것은 장자의 ‘송장처럼 가만히 있지만 용의 기상이 드러나고, 깊은 못처럼 잠잠하지만 우레 소리가 난다’는 말에서 취한 것이다. 이곳에는 산림에 묻혀 이름 없는 처사일지라도 용과 우레의 기상을 품고 살겠다는 그의 뜻이 담겨 있다. 실제 이곳에 기거하며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조식은 이황을 뛰어 넘는 사림의 태두로 우뚝 솟았다.
하버드의 서재를 엿보다
“생계를 위해 하루에 8, 9시간씩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특히 초년에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서 수년 동안 훌륭한 작품을 읽는 데 기꺼이 하루 몇 분씩 투자하고 교양인의 기준에 도달하려는 젊은 남녀들이 하버드 클래식을 이용해주기 바란다.”
‘하버드 클래식’을 편집한 찰스 윌리엄 엘리엇은 미국 남북전쟁 직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40년 동안 하버드대의 총장으로 재직했다. 하버드대에 재직하는 동안 엘리엇은 “5피트 책꽂이면 몇 년 과정의 일반교양 교육을 대체할 만한 책을 충분히 담을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1909년 은퇴할 무렵 출판사가 그를 초청해 ‘5피트 책꽂이’를 편집했다. 이후 20년 동안 낱권으로 1000만 권에 해당하는 약 50만 질을 판매했다.
‘하버드 인문학 서재(크리스토퍼 베하 지음·21세기북스)’는 보통 사람들에게 일반교양 교육을 제공하려는 취지로 출간한 인문학 고전 선집인 ‘하버드 클래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책으로, 플라톤에서 단테, 셰익스피어에서 소로, ‘성경’에서 ‘천일야화’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시작부터 19세기까지 출간된 저작물 중에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고전들만을 모아 엮었다. 이 책은 50권, 2만2000페이지, 150여 편의 작품을 모은 ‘하버드 클래식’에서 깨달은 저자의 독서 연대기다. 엘리엇은 고전을 교과 과정처럼 편집했다. 세계 사상의 주요한 흐름을 간파할 수 있도록 도서 목록을 정리했고, 이 책들을 통해 독자의 정신이 풍요로워지고 윤택해지기를 희망했다. 주요 도서를 소개하면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1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2권), 찰스 다윈 ‘종의 기원’(11권), ‘천일야화’(16권), ‘이솝 우화’, ‘안데르센 동화’(17권), 괴테 ‘파우스트’(19권), 마키아벨리 ‘군주론’(36권), ‘논어’(44권), ‘고린도 전서·고린도 후서’, ‘불교 법전’, ‘코란’(45권), 파스칼 ‘팡세 서한집’(48권) 등이 있다.
인간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고, 삶의 의미를 속삭여주는 고전의 목소리에 잠깐이나마 귀 기울여도 좋을 것이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를 엿보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김훈민, 박정호 지음·한빛비즈)’는 역사, 문학, 철학 등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인문학에 숨겨진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제 원리를 밝혀낸 책이다. 경제학자의 프레임으로 인문학을 해석하고 다양한 인문학적 소재들을 바탕으로 경제용어와 원리들을 설명한다.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는 엔론 사태의 데자뷰와 같으며, 프랑스혁명은 분식회계라는 꼼수로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제학의 개념들이 인간 스스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들이라면, 그 자취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신화, 역사, 문학, 문화, 철학 등 인문학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둘째는 인문학을 사용해서 경제학의 여러 개념들을 제시할 경우 독자들은 우리 생활 곳곳에 경제학적인 개념들이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탐정이다. 그러나 홈즈의 사례금 책정방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헤미아 왕실 스캔들’에서 홈즈는 의뢰인 보헤미아 왕에게 사건 착수금으로 1000만 파운드를 받는다. 반면 ‘얼룩 띠’에서는 사례금을 낼 능력이 없는 젊은 숙녀 스토너에게 형편이 닿는 대로 자신이 쓸 얼마간의 비용만 지불해달라고 말한다. 경제학에서는 소비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동일한 상품에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을 ‘가격차별’이라고 한다. 홈즈와 같이 소비자 한 명 한 명의 지불용의 가격을 파악해 각기 다른 가격을 받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격차별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장 발장을 바른 길로 인도해 그가 시장이 되는 데 일조한다. 주교는 은식기를 훔쳐간 장 발장을 용서해주고, 은촛대를 얹어주면서 자신과 한 약속을 잊지 말라고 말했을 뿐이다. 2008년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너지’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미라엘 주교의 방식은 이 책의 주제와 연관성이 높다. 이 책에서 ‘너지(nudge)’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미라엘 주교의 경우 장 발장을 선한 길로 인도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직접적인 훈계가 아니라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너지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과학자의 서재를 엿보다
‘통섭의 식탁(최재천 지음·명진출판)’은 국내에 처음으로 ‘통섭의 개념’을 소개한 최재천 교수가 21세기 통섭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와 지식을 아우르는 기획 독서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자연과학, 인문, 사회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책 요리를 선보인다. 최 교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별한 책을 코스 요리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 책은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 퓨전 요리까지, 가벼운 책에서 다소 묵직한 책까지 저자의 친절한 설명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함께 맛보면 좋은 책들도 소개해 지식의 통섭과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저자는 도서 제목이 ‘통섭의 식탁’인 것은 기획 독서가 독자를 통섭형 인재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직 스스로 통섭형 인재가 됐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돌이켜보면 자의 반 타의 반 통섭형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문과와 이과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엉뚱하게 이과로 배정돼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아픔이 훗날 나로 하여금 과학자로 살면서도 끊임없이 인문학을 기웃거릴 수 있는 자유분방함을 선사할 줄은 몰랐다. 이 책에는 그런 나의 아름다운 방황의 흔적이 질펀하게 널려 있다.” 셰프 추천 메뉴 3가지로 제인 구달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 조너선 와이너 ‘핀치의 부리’, 리처드 랭엄 ‘요리 본능’을 소개한다. 애피타이저는 ‘마틴 루터 킹 자서전’, ‘젊음의 탄생’, ‘0.1그램의 희망’ 등을, 메인 요리에서는 동물, 진화, 과학을 깊게 이해하기 위한 ‘동물들의 사회’, ‘침팬지 폴리틱스’, ‘이기적 유전자’, ‘찰스 다윈 서간집’, ‘바이오필리아’, ‘자연은 알고 있다’ 등의 도서를 소개한다. 디저트는 ‘야생 속으로’, 일품요리는 ‘리오리엔트’, 퓨전 요리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 다양한 도서들을 소개한다.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 ktkang21@han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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