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중년의 위기, 영어로는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mid-life crisis)’라고 하는 40~50대가 겪는 일종의 인생 하반기 진입에서 겪는 인생관의 변화라고나 할까. 이 기간 동안 때론 바람이 나거나 하는 ‘퇴행성’중년의 위기를 겪는 경우도 있다. 이 ‘퇴행성’위기는 종종 삶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인생의 크라이시스’가 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미국에서는 꽃중년의 행태가 조금 다른데, 오래된 자동차를 스포츠카로 바꿔버리거나 오토바이를 구입한다거나 하는 젊음의 이미지만 겨우 유지하는 변화에서 최근에는 사이클링이나 철인 3종 경기(triathlon) 등 근본적으로 젊음을 연장하며 나온 배를 허벅지에다 올려놓고 스포츠바이크(sportsbike)를 타는 무늬만 ‘꽃중년’이 아닌 정말 멋있는 중년 남성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중년의 위기 또는 변화를 대부분 겪을 것이라는 일반적 견해와는 달리 1990년에 발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년의 10% 정도만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며 여성은 2년에서 5년, 남성은 3년에서 10년까지의 기간을 거친다고 한다.
학문적 견해에서 보는 ‘중년의 위기’는 아닐지 몰라도 같은 연령대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에 대한 재평가가 한창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소위 이민 1세인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1.5세들의 경우는 한국과 미국 문화의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도 많이 겪은 층이라 자아상에 대한 발견이 더 새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 중년층에 접어든 베이비부머(baby boomer)는 미국 성인 인구의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간 연령(median age)은 45세라고 한다. 그리고 소비자 지출의 3분의 2가 40세 이상에서 나온다고 한다.
2007년 이후 철인 3종 경기 인구는 51%의 성장세를 보였으며 철인 3종 경기 인구 120만 명 중 3분의 1을 차지하는 40대 남성이 가장 많은 증가세를 보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나 스포츠용품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소비가 비교적 여유로운 연령층인 만큼 위기의 중년 남성의 대명사였던 붉은색 스포츠카 대신 1만 달러에 가까운 경주용 자전거에서 수영 후 클로린(chlorine) 제거에 사용하는 샴푸, 근육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기능성 식품까지 다양한 제품이 나와 변화하는 중년의 라이프 스타일을 겨냥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과거 여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던 마케팅의 기술이 남성들의 지갑을 열심히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형 꽃중년 열풍은 주말만 되면 운동하러 나가는 남자들의 가정엔 시간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가계 재정에도 만만치 않은 부담을 주고있다. 운동을 즐기는 남자들이 1년 평균 2200달러를 운동 관련 용품 구입에 지출하고 있기 때문. 언젠가는 183km 자전거 대회에 나가기 위해 새벽에 모인 친구들 중 한 명이 자전거 ‘쫄쫄이’를 입고 나오지 않아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속에다 몰래 입고 나왔다고 했다. 집을 나서는데 부인이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금방 온다고 대답했단다. 후환에 대해서는 “난 몰라”가 답이다.
남편들의 이런 트렌드와 관련된 기사가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실렸는데 내용 중 한 아내는 남편이 운동에 지출이 많은 대신 건강할 테니 나중에 병원비 아끼게 되지 않겠냐는 훌륭한 대답을 해주었다. 이 같은 사회적 트렌드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영국에서도 매밀스(mamils·쫄쫄이를 입는 중년 남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속도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꽃중년이라는 단어가 나온 걸 보면 한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배에다 왕(王)자 만들기를 하려면 배를 한번 접었다 피면 생기는 빨간 살 자국이 아니라 근육으로 이루어진 왕자를 가진 중년이 많아지는 것은 곧 건강하게 중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는 좋은 현상이고 이런 세계적인 트렌드에 발을 맞추는 마케팅 전략도 구상해 볼 만할 것 같다. 김세주 _ 김앤정 웰스매니지먼트 대표(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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