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남짓. 일본 최남단의 섬 오키나와로 가는 길은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멀다. 역사도, 문화도, 언어도, 음식도 일본 본토와는 다른 섬나라 속의 섬. 일본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름 휴양지 가운데 하나이며 장수(長壽)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오키나와는 도무지 일본 같지 않은 남국(南國)의 바다, 소박하면서도 흥겨운 사람들, 제주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식으로 여행자를 맞아주었다.
[The Explorer] 남국의 바다에서 장수를 맛보다
“오키나와(沖繩) 타임.” 한국어가 유창한 가이드에게서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무슨 말인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 말이 오키나와 사람들의 시간 개념 없음을 뜻한다고 들었을 때,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코리안 타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장하준 교수는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서유럽 국가들도 산업화 시기에 코리안 타임과 비슷한 의미의 관용구가 있었으나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키나와는 아직 산업화가 완결되지 않은 것일까. 세계가 산업화를 넘어서 정보화에 들어선 것이 언제인데, 자본주의 선진국 일본에서, 설마 이런 일이.
[The Explorer] 남국의 바다에서 장수를 맛보다
도쿄에서 1500km쯤 떨어져 있는 오키나와가 일본이 된 것은 150년이 채 안 된다.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오키나와 현’이 되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류큐왕국(琉球王國)’이라는 이름의 독립국이었으며, 일본과는 역사와 문화, 언어와 인종까지 전혀 달랐다. 류큐왕국은 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왔고 중국의 역사서에 일본보다 더 자주 등장할 정도로 대외 교류가 활발했다. 이웃나라의 많은 문물이 류큐왕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갔다.
2 옛 류큐왕국의 영화를 증명하고 있는 나키진조아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사방 시선이 트인 전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전망이 아름답다.
2 옛 류큐왕국의 영화를 증명하고 있는 나키진조아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사방 시선이 트인 전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전망이 아름답다.
거기에는 샤미센(三味線: 일본의 대표적 현악기) 같은 악기뿐 아니라 돼지와 같은 동물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류큐왕국은 조선보다 30여 년 앞서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美) 군정기를 거치고 나서 일본이 됐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 본토와는 다른 문화가 사회 곳곳에 남아 있고, 오키나와 타임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긴 일본이라기보다는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 같은 풍광을 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3 ‘일본의 아름다운 골목 100’ 중 하나로 꼽혔다는 ‘이시다다미미치(돌로 만든 다다미길)’의 끝에 있는 아담한 식당의 담벼락. 다양한 색깔의 맷돌로 장식한 것이 인상적이다.
3 ‘일본의 아름다운 골목 100’ 중 하나로 꼽혔다는 ‘이시다다미미치(돌로 만든 다다미길)’의 끝에 있는 아담한 식당의 담벼락. 다양한 색깔의 맷돌로 장식한 것이 인상적이다.
오키나와의 나하(那覇) 국제공항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국내선 청사는 나름 번듯했지만, 국제선 건물은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을 방불케 했다. 공항에서 벗어나 만나는 풍경도 그랬다. “아직도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지역 경제를 이끌어갈 만한 이렇다 할 산업이 없으며, 일본 내에서도 소득 수준이 낮은 편”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소득 수준과 행복 수준은 비례하지 않는 법.
4 오키나와 민속촌인 ‘류큐무라’에 있는 전통 가옥. 제주도보다 바람이 거센 이 지역 전통 가옥의 특징은 목재를 짜맞춰 바람에 흔들리도록 했다는 점이다. 일종의 내진 설계라 할 수 있다.
4 오키나와 민속촌인 ‘류큐무라’에 있는 전통 가옥. 제주도보다 바람이 거센 이 지역 전통 가옥의 특징은 목재를 짜맞춰 바람에 흔들리도록 했다는 점이다. 일종의 내진 설계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오키나와는 일본을 대표하는 장수촌이며, 오키나와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활기차며 여유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꼽을 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해변 풍경? 장수 음식으로 알려진 전통 음식들? 사람들의 타고난 낙천적 품성?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지금부터 그 비결을 찾아보기로 했다.
5 오키나와의 집마다 지키고 있는 수호신 시사. 원래는 눈을 부릅뜬 무서운 형상이지만 가끔 이렇듯 유머러스한 표정을 볼 수도 있다.
5 오키나와의 집마다 지키고 있는 수호신 시사. 원래는 눈을 부릅뜬 무서운 형상이지만 가끔 이렇듯 유머러스한 표정을 볼 수도 있다.
거친 자연에 맞서는 흥겨운 사람들

나하국제공항을 나와 찾은 곳은 오키나와가 시작됐다는 신성한 숲, 세화우타키(齋場御嶽)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 사이로 피어 오르는 안개에 둘러싸인 열대우림은 신비한 기운으로 여행자들을 맞았다. 류큐왕국 시절, 국가 최고 무녀의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다는 금남의 구역은 발길 닿는 곳마다 신기(神氣), 혹은 음기로 가득했다. 여기서 소원을 빌면 작은 것 하나 정도는 단박에 이루어질 것도 같다.

오키나와는 신들의 섬이다. 5월부터 시작해 여름 내내 섬을 강타하는 태풍은 오키나와를 신들의 섬으로 만들었다. 거친 자연과 맞서기 위해선 자연보다 더 강력한 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집집마다 지붕이나 대문 옆에서 오키나와의 가정을 지키고 있는 시사(獅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물 사자를 뜻하는 ‘시사’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수호신이다. 전통 가옥뿐 아니라 많은 현대식 주택에도 시사가 ‘잡귀야, 물러가라’ 하는 무서운 표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얼굴이 조금씩 다른데, 이는 시사가 만든 사람의 얼굴을 닮았기 때문이란다.
6 전통 방식으로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모습. 일본은 오키나와를 식민지화함으로써 설탕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6 전통 방식으로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하는 모습. 일본은 오키나와를 식민지화함으로써 설탕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키나와 사람들이 신에게만 의존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신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 강인한 의지와 낙관적 흥겨움으로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꾸려나갔다. 오키나와의 전통 춤인 에이사는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오키나와의 문화와 역사, 자연을 종합선물세트로 보여주는 오키나와월드의 천막극장에서 본 화려한 원색의 의상, 힘 있는 동작, 신나는 음악으로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더불어 에이사는 전통적으로 마을마다 있는 청년 단체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전통과 안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에이사에 담긴 정신이다.
7 오키나와의 재래시장은 간판이 예술이다. 꽃이나 물고기, 전통 문양 등을 형상화한 그림에 작은 이름을 적어 놓은 가게들이 많다.
7 오키나와의 재래시장은 간판이 예술이다. 꽃이나 물고기, 전통 문양 등을 형상화한 그림에 작은 이름을 적어 놓은 가게들이 많다.
거친 자연은 이렇듯 강인하고 흥겨운 사람들을 낳았을 뿐 아니라 이곳을 세계적 장수촌으로 만든 음식도 만들었다. 오키나와의 주된 식재료는 돼지고기와 생선, 해초와 채소다. 돼지고기는 주로 삶는 방식으로 조리해 기름을 빼고, 생선은 굽고, 해초와 채소는 무친다. 조리하는 과정에서도 소금과 젓갈의 사용을 줄여 짜지 않게, 또한 너무 시거나 달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런 까닭에 자타가 공인하는 오키나와의 건강식은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도시인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단맛, 신맛, 짠맛 등이 골고루 어우러져 균형을 이룬 맛. 모난 데 없이 아름다운 오키나와 풍광과 이곳 사람들의 둥글둥글 여유 있는 품성과도 어울리는. 하지만 그림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음식을 먹고 장수를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여유로운 삶과 조화로운 음식이 장수를 이룬다.

우리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이 류큐왕국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 역사적 진위는 모르겠지만 홍길동의 후예들이 율도국에 정착했다면 오키나와 같은 장수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리라. 그 속에서 여유롭고 행복하게, 조화로운 음식을 맛보며.
8 시사는 오키나와를 찾은 관광객에게는 필수 기념품이 됐다.
8 시사는 오키나와를 찾은 관광객에게는 필수 기념품이 됐다.
일본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국의 바다 빛깔. 그 덕분에 오키나와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름 휴양지가 됐다.
일본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국의 바다 빛깔. 그 덕분에 오키나와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름 휴양지가 됐다.
Okinawa info

How to Get There

인천에서 오키나와까지 아시아나항공이 일주일에 세 번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2시간 소요. 이 밖에도 전일본공수(ANA), 일본항공(JAL), 중국동방항공, 캐세이퍼시픽 등 많은 항공사들이 인천에서 오키나와까지 운항 중이다.

Where to Stay

일본에서도 이름난 휴양지답게 오키나와에는 수많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있다. 그중 ‘오키나와 메리어트 리조트&스파’는 국내 TV 드라마에 등장해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탔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최고의 리조트로 치는 곳이다. 이 밖에도 기세벳테이 호텔&스파, 스파 리조트 엑세스 등이 유명하다.

Another Site

세계 최대의 수족관 크기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오키나와 추라우미 아쿠아리움에는 고래상어가 무려 세 마리나 있다. ‘1만 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풀밭’이란 뜻의 만자모는 기암절벽에서 바라보는 옥색 바다가 멋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류큐왕국의 옛 성인 나키진조아토도 볼 만하다.


글·사진 구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