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유럽 열강들의 먹잇감이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최근 들어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이들 신흥 국가들의 달라진 위상을 살펴본다.
과거와 달리 신흥 국가의 성장으로 선진 국가의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투자회사의 독식은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와 달리 신흥 국가의 성장으로 선진 국가의 다국적 기업이나 금융투자회사의 독식은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허버트 웰스(Herbert Wells)의 저서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에서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통해서 미래의 세계로 안내된다. 그곳에서 두 부류로 나뉜 인류를 만나는데 하나는 지상 세계의 나약한 히피족이고, 다른 한 부류는 지하 세계 어둠의 사람들인 몰록족이다. 소설 ‘타임머신’은 본질적으로 진화론과 연관이 깊은 소설이다. 이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징벌을 통해 진보하고 무지와 무능력은 질병과 죽음으로 벌을 받는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웰스의 두 번째 소설 ‘닥터모로의 섬(The Island of Dr. Moreau)’에서는 식민주의자가 채찍으로 하등 인종을 문명화하듯이 닥터모로는 고문으로 동물을 문명화시킨다. 이렇게 1800년대 중반에 나왔던 웰스의 소설들은 당시 유럽 열강에 의해 개척되던 신대륙 식민지에서의 논리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웰스의 다른 소설 ‘투명인간’ 역시 투명인간이 된 주인공이 자기보다 열등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면에서 우등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힘들게 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은연중에 숨어 있다.



다윈의 진화론 이면에 숨겨진 선민의식

1800년대는 그런 방식으로 서구 열강에 의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북미 및 남미, 그리고 중국과 인도가 유린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벨기에 국왕 레오폴트 2세의 아프리카 콩고 침탈이다. 당시 레오폴트 2세는 국왕의 대리인들에게 고무와 상아 거래의 독점권을 부여했다. 그 대리인들은 현지의 원주민들에게 한 푼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상아와 고무를 징발했다. 만일 원주민이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으면 마을을 불태우고 아이들을 살해하거나 손을 자르기도 했다. 그때 그렇게 획득한 부로 레오폴트 2세는 지금 벨기에에 가면 볼 수 있는 라에켄궁이나 아르덴궁을 건설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히 알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 중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당시 후진적인 인종의 절멸과 착취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로 활용됐다. 1800년대 중반 다윈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럽인들보다 하등하고 덜 지적인 인종은 절멸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문명화된 인종들이 전 세계에 걸쳐 야만 인종들을 거의 완전히 절멸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대륙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을 인간과 대별되는 고릴라에 더 가까운 종으로 구분해 멸절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실제로 많은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점령한 후 많은 현지 종족을 절멸시키고 만다.

유럽인들은 당시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인도 등에 대한 군사적 우월성을 생물학적인 우수성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중에 자만과 교만을 징벌하는 복수의 여신으로 네메시스(Nemesis)가 있다. 1842년 당시 영국의 군함을 중국의 황허(黃河)와 대운하의 상류로 이끌고 가기 위해 건조된 최초의 영국 증기선의 이름이 네메시스였다는 점을 알게 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신흥국

그로부터 150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 유럽인들이 하등한 인종으로 분류하던 중국과 인도, 그리고 멸절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프리카, 남미,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지금 새로운 형태의 파워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이미 세계 5대 강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아프리카와 남미는 새로운 자원강국과 개발 지역으로 떠오르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필자는 이머징마켓으로 불리며 새로운 성장의 근간으로 떠오르는 국가의 여러 면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인도네시아는 최근에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무디스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을 투자 적격 등급으로 상승 판정받았다. 1997년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거의 빈사상태까지 떨어졌다 실로 15년 만에 다시 명예를 되찾은 것이다. 자원부국으로서 2억50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연합의 맹주국가로서 선진국이 가장 먼저 진출해야 하는 국가(number one destination)로 자리 잡고 있다.

항상 투자에 있어 선도적이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글로벌 사모투자펀드의 최근 펀드 조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TPG캐피털(TPG Capital)은 최근 인도네시아 인수 펀드를 8억 달러 규모로 조성했으며, 인도네시아 국내 사모투자펀드인 사라타고캐피털(Saratago Capital)도 4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광산업, 소비재, 인프라, 금융을 유망 분야로 보고 투자 대상 발굴에 혈안이 돼 있다. 최근에는 CVC캐피털(CVC Capital)이 인도네시아 백화점을 8억 달러에 매입해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떨까. 최근 러시아는 전 세계에 대한 밀 수출을 5배나 증가시키면서 세계 최대 밀 수출 국가로 떠올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가 커지면 밀 소비가 증대될 것으로 예측해 전략적으로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농업을 확대하며 구소련 경제 시절 노후화됐던 곡물 저장시설을 현대화하고 무역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미국과 캐나다가 유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곡물지대의 위치를 바꾸고자 하는 전략적 야심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 국내 소비산업의 증대는 해외 유통기업의 진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소득의 증가로 인해 소비의 증가 유인이 존재하나, 현대식 쇼핑몰은 많이 부족한 상태다. 최근 모건스탠리 부동산 펀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최대 쇼핑몰인 갤러리아를 약 11억 달러에 인수해 향후 러시아 내의 유통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관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프리카를 바라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모두(冒頭)에 언급했듯이 벨기에는 콩고에서의 상아 및 고무 착취로 원주민을 고통에 몰아넣었는데 사실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후 아프리카는 절대 빈곤과 낙후된 사회간접시설(SOC),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 불안과 내전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아프리카 대륙은 전 세계 자본의 새로운 전진기지가 되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콩고 등은 호주에 필적하는 철광석 매장량을 자랑한다. 아마 2020년까지 전 세계 철광석 생산량의 1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리오틴토(Rio Tinto)와 아르셀로 미탈(Arcelor Mittal) 등 세계 유수의 철강 및 자원개발업체가 철광석 개발을 위한 철도 등의 인프라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게끔 하고 있다.

반면 동아프리카에 있는 모잠비크와 탄자니아 등은 천연가스의 보고로 알려지고 있는데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국인 카타르와 호주의 라이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인 오일 메이저인 셸(Shell)이나 엑슨 모빌(Exxon Mobil)은 현지 기업과 공동 개발 및 생산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중이다.

이러한 자원 및 식량 확보를 위한 열풍과 신흥 국가들 내부의 소비력 증가로 인한 유통 및 소비재산업 성장에 힘입어 최근 신흥 국가들의 통화의 국제 외환시장에서의 거래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1년 엔화, 유로화, 스위스프랑은 세계 최대 외환거래소인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오히려 거래량이 부진한 반면 신흥 국가의 외환 거래량은 전년 대비 무려 42%나 증가했다고 한다. 외환 거래량의 증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선진 국가의 다국적기업이나 금융투자회사의 독식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150년 전 유럽 열강에 의한 착취와 독식이이제는 쉽지 않은 상황이 분명하다. 양자가 서로 윈-윈 하는 전략만이 지속 가능한 협업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경우는 오히려 신흥 국가의 행위나 제재가 다른 국가의 경제 및 생산구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도 꽤 보인다.

최근 중국은 자국 내 광물자원의 보호를 위해 첨단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희토류의 생산 제한과 수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은 놀란 나머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중재를 요청할 정도다.

또한 터키는 유럽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5.9%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중국 다음으로 빠르게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 의한 멸절의 논리가 정당화될 수 없는, 오히려 이제는 기존의 기득권 국가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선처를 호소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은 확연한 사실처럼 보인다.




이동훈 삼정투자자문 전무

일러스트·추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