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fessional

진입 장벽이 높기로 소문난 미국 할리우드 연예계에 도미한 지 2년도 채 안 돼 뛰어든 한국인이 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모델 겸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연 씨가 그 주인공. 그의 전직은 놀랍게도 프로 탁구선수다. 탁구를 포기하고 떠났던 미국에서 그는 운명처럼 스스로 내던졌던 탁구채를 다시 쥐며 유명세를 탔다.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던 즈음 서울을 찾은 그를 만났다.
탁구선수 출신 할리우드 모델 이수연, “포기했던 탁구가 제겐 유니크한 ‘병기’죠”
‘이수연’이란 인물은 국내 포털사이트에서보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편이 낫다. ‘SOO YEON LEE’로 검색하면 뜨는 다양한 동영상 속에서 그는 시크하고 섹시한 모델로, 또는 운동복을 입고 선전하는 탁구선수로 등장한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본업이 탁수 선수라는 것. ‘선수’로 보여주는 그의 테크닉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 전 미국에서 보내온 프로필에는 분명 ‘모델이자 연기자’로 돼 있었다. 어엿한 소속 에이전시도 있다. LA타임스를 비롯해 ‘수연 리’를 다룬 신문과 잡지 기사를 빼놓지 않고 검토한 결과, 그의 현주소가 ‘한국 탁구선수 출신의 모델 겸 연기자’임을 알 수 있었다. 전직을 살려 탁월한 탁구 실력을 뽐냈던 그는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이 운영하는 핑퐁클럽에서 더욱 유명해져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을 비롯해 제이미 폭스, 캐빈 딜런 등의 할리우드 셀레브리티들에게 탁구 개인교습을 하는 ‘탁구 선생’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쇼트 팬츠와 운동화 대신 미니스커트에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탁구를 하는 그의 모습은 할리우드를 비롯해 유럽 패션계에서도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이색적이고도 신선하다. 서울을 방문하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수잔 서랜든에 탁구 가르치며 넓어진 할리우드 인맥
탁구선수 출신 할리우드 모델 이수연, “포기했던 탁구가 제겐 유니크한 ‘병기’죠”
핵안보정상회의로 호텔들이 북적거릴 때 서울을 찾으셨어요.

“호텔 입구에서 보안 검사까지 하는 걸 보니 약간 살벌하긴 한데(웃음), 사실은 핵안보정상회의 때문에 저도 서울에 왔어요. 조지아(그루지아)에서 저를 탁구 홍보대사로 위촉했는데, 미케일 사카시빌리(Mikheil Saakashvili) 조지아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에 오셨거든요. 한국 들를 때 건너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자고 하시길래 저도 날아왔죠.”

조지아에서 한국인인 이수연 씨를 탁구 홍보대사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탁구클럽에서 퍼포먼스를 많이 한 덕에 탁구 잘 치는 모델로 알려지면서 지난해에 조지아 체육협회장 초청으로 조지아에 간 적이 있어요. 조지아가 스키 분야에는 유명한 선수가 있지만 탁구는 역사 자체가 거의 전무한 나라더라고요. 국가 차원에서 국민체육을 육성하기 위해 체육 프로그램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데, 어린이 스포츠 인재 양성을 위해 롤 모델을 찾고 있다가 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동양인인데 키가 커서 그런지 시선을 많이 받았어요.(웃음) 지난해 7월에 그곳 아이들을 만나고 왔는데, 2012년부터 탁구 홍보대사로 활동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학교 내 탁구 코칭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 들었습니다.”

모델, 연기자, 탁구선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데 매니저도 여러 명 있을 것 같아요.

“예, 스포츠 쪽을 관리해주는 에이전시, 모델 일을 맡아주는 에이전시가 별도로 있어요.”

주로 어떤 분야 모델로 활동하시나요. 유럽에도 진출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잡지 표지 모델, 패션 광고 모델, 스포츠 브랜드 광고 모델로 주로 활동했고, 유럽에서는 질 샌더, 베르사체 등 하이패션 브랜드 영상 광고 모델로 캐스팅이 됐어요. 제가 탁구를 하다 보니 스포츠용품이나 음료 광고 쪽 요청이 많아요.”
탁구선수 출신 할리우드 모델 이수연, “포기했던 탁구가 제겐 유니크한 ‘병기’죠”
유럽 하이패션 브랜드 질 샌더와 베르사체 광고 속에서 이수연 씨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역동적인 동작으로 탁구를 선보였다.
유럽 하이패션 브랜드 질 샌더와 베르사체 광고 속에서 이수연 씨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역동적인 동작으로 탁구를 선보였다.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광고는 어떤 것인가요.

“미국 광고는 특유의 유머가 있어서 모두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럽에서 찍었던 하이패션 브랜드 영상 광고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서 광고 동영상을 찾아 보여주며) 여기 보실래요. 이건 광고라기보다 한편의 예술작품에 가까울 정도예요. 질 샌더, 베르사체 등 브랜드 자체도 톱이었지만 이 광고를 만든 스태프 또한 톱이었죠. 완성된 광고물을 보고 제 자신도 ‘과연 저게 나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탄으니까요.(웃음) 전 세계에 방송됐는데, 이 광고 덕분에 패션계에 이수연이란 모델이 알려지게 됐어요. 그 후로 다른 일들도 많이 엮였죠.”

미국 언론 기사를 보니 수잔 서랜든의 탁구 코치로 유명하던데, 어떻게 알게 됐나요.

“수잔 서랜든을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고, 제가 모델로 활동하면서 크고 작은 이벤트에서 탁구 퍼포먼스를 하는 것을 보고 섭외차 연락을 해 왔어요. 서랜든이 뉴욕, 밀워키, 캐나다 토론토에 프랜차이즈로 탁구도 치고, 식사도 하고, 춤도 출 수 있는 ‘스핀 클럽(SPIN Club)’을 운영하고 있는데, 뉴욕 클럽 오프닝 파티에 저를 초대했어요. 그 다음부터 클럽을 자주 가게 됐는데, 그때마다 탁구를 가르쳐 주면서 친분도 생겼죠.”
수잔 서랜든이 운영하는‘스핀 클럽’에서 멜 깁슨과 함께.
수잔 서랜든이 운영하는‘스핀 클럽’에서 멜 깁슨과 함께.
올리버 스톤 감독과의 친분이 유별나다고 들었습니다. 몇 해 전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스톤 감독 부부와 동행했었죠.

“올리버 스톤 감독은 서랜든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부인이 한국인이라 그런지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아주 익숙한 분이었어요. 제이미 폭스는 제 소식을 듣고 클럽으로 직접 찾아와서 알게 됐고, 캐빈 딜런은 제가 탁구선수로 카메오 출연한 TV 쇼인 ‘앙투라지(Entourage)’에 함께 출연했던 인연으로 탁구를 가르치게 됐죠.”

그분들 탁구 선생이신데 누가 가장 재능이 있나요.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죠. 스톤 감독님은 열정이 있어서 열심히 하지만 실력은 그에 못 미치고 있죠.(웃음) 서랜든은 뉴욕에 갈 때마다 가르쳐 드리고 있고, 실력이 급속도로 향상되기가 힘든 상황이죠. 나머지 분들은 실력이 고만고만해요.(웃음)”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수연 씨의 ‘탁구 제자’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수연 씨의 ‘탁구 제자’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제이 레노 쇼’에도 출연하셨던데요.

“제가 주인공으로 초대된 건 아니었고, 서랜든이 게스트로 나갔는데, 탁구 얘기를 하면서 저는 스페셜 게스트로 나갔던 거예요. 방송 전에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시합 앞뒀을 때만큼의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근데 방송이란 게 연습한 대로 안 되더라고요. 외운 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즉흥적으로 대답했는데, 오히려 그게 제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 결과적으론 좋았어요. 스튜디오에 탁구대를 갖다 놓고 저랑 제이 레노가 탁구공을 주고받기로 돼 있었는데, 레노는 탁구를 전혀 안 해 본 사람이거든요. 제가 준비가 채 안 된 상황에서 서비스 볼을 너무 과격하게 넣는 바람에 공을 받다 넘어졌어요. 하이힐을 신고 넘어진 저를 레노가 부축해줬는데, 그게 방송으로는 더 재미있는 그림이 됐던 것 같아요.(웃음)”



9세 때 잡은 탁구채를 던지고 또다시 잡기까지
표지 모델로 촬영했던 ‘어반 매거진’.
표지 모델로 촬영했던 ‘어반 매거진’.
한국에서 실업팀 선수로 활동했었죠.

“네, 고교 졸업 후 바로 한국마사회 소속 선수로 활동했어요. 현정화 감독이 당시 저희 팀 코치였는데, 주니어 때부터 선배였던 김경하 선수와 후배인 유승민, 오상은 선수는 아직도 활동하고 있죠.”

탁구는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아홉 살 때 초등학교 탁구부에 들어가며 시작했어요. 운동신경이 있어서 그런지 탁구가 재미있긴 했지만, 한국 스포츠 선수 훈련 시스템이 대부분 그렇듯 너무나 빠듯해서 학창시절은 탁구 이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소풍 간 기억도 없고, 경기 때문에 해외로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죠. 한 마디로 탁구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1994년에 주니어국가대표로 전국체전 개인 단식에서 1위도 차지했고, 고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 선수로 활동한 걸 보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경우인데, 탁구를 그만두고 미국에 간 이유는 뭔가요.

“한국체육대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후 스포츠 심리학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중간에 공부를 그만뒀어요. 슬럼프에 빠졌는데, 정말이지 모든 것을 다 바쳐 했던 운동이지만 목표대로, 욕심과 꿈대로 되지 않으니까 제 자신도 많이 힘들었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면, 2등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든요. 슬럼프는 극복할 수 있지만 금메달리스트는 냉정하게 생각하면 어려웠어요. 인생 전환을 위한 결정을 빨리 내려야겠다 싶었죠. 좀 더 큰 세계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영어공부도 할 겸 뉴질랜드로 갔어요. 그런데 뉴질랜드는 너무 느린 느낌이었어요. 살면서 공부만 할 순 없잖아요.(웃음)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미국으로 가봤어요. 동생이 시카고에서 유학 중이었거든요.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어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데 미국은 저랑 맞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무런 계획 없이 갔던 곳인데 말이죠.”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셨나요.

“결과적으로는 아니에요. 학생 신분이라 일은 할 수 없었는데 실업팀에서 일하면서 벌었던 돈을 다 쓰고 나니 생활비를 좀 벌어야겠다 싶었죠. 로스앤젤레스(LA)가 물가가 비싸거든요. 그 즈음 지인의 소개로 LA에서 패션의 거리로 통하는 곳에 있는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미국 간 지 6개월 지나서였으니 영어도 엉성했죠. 1년간은 탁구채도 안 잡았는데, 미국에 계신 탁구계 선배님들이 연락을 해오기도 하고 미국 친구들이 탁구를 배우겠다고 연락도 해왔어요. 결국 여기서도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탁구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것도 탁구인데 이걸 안 할 순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탁구를 시작했어요. 탁구가 미국에서 사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면 신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근 미국에서는 탁구가 생활 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어요. 생각보다 미국 사람들이 탁구를 좋아했어요. 개인교습을 시작하면서 돈도 쉽게 벌렸고, 영주권을 따야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어요. 시합에 나가기 위해서였는데, 연습장에서 미국 친구들도 많이 만나게 됐죠. 연습 기간을 거친 뒤 국제대회에서 연거푸 3번을 우승했죠. 그 덕에 신청한 지 8개월 만에 영주권이 나왔어요. 미국은 예술인이나 체육인에게 특별 영주권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과 미국에서의 국제대회 우승 기록이 도움이 됐죠.”

1년간 탁구채를 쳐다도 안 봤는데 그렇게 좋은 기록을 세웠다고요.

“(웃음) 한국 탁구 훈련 체계가 그만큼 완벽하다는 뜻이죠. 한국 선수들은 사생활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운동에 거는데, 미국은 훈련 시스템이 체계가 없고, 개인의 자발적인 노력에 맡겨두는 시스템이더라고요. 그러니 한국 선수들이 월등할 수밖에 없어요. 미국 최고의 토너먼트라고 하는 US 오픈, 캐리 오픈, 샌디에이고 오픈 등에서 연달아 우승했어요.”
탁구선수 출신 할리우드 모델 이수연, “포기했던 탁구가 제겐 유니크한 ‘병기’죠”
탁구선수로 컴백한 셈인데 모델은 어쩌다 하게 된 건가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길거리 캐스팅’이 된 거예요. 처음 했던 일이 인쇄광고 모델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영주권이 나온 후 적극적으로 에이전시를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죠. 미국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곳이거든요. 그러다가 운 좋게 맥도날드 TV 광고 조연급으로 캐스팅이 됐는데, 그 광고가 전국 방송을 타면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웃음) 그런데 그 다음부터 서너 차례 연거푸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겁니다. ‘이거 시간만 낭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이후에 잡지 촬영이 많이 들어왔어요.”

모델로서 자신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타고난 ‘끼’가 있었나요.

“얼굴은 동양적이지만 체형은 서양적인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신체 비율도 그런 편인데, 다리가 긴 편이라 각선미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들어요. 광고를 찍을 때도 다리를 강조한 콘셉트가 많았고요.”

탁구 잘 치는 모델이라 덕 본 일도 많았나요.

“그럼요. 탁구는 저를 다른 모델보다 유니크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죠. 솔직히 미국이나 유럽에 예쁜 모델들이 얼마나 많아요.(웃음) 유럽에서 찍었던 질 샌더 광고도, NBA 최고의 선수인 블레이크 그리핀(Blake Griffin)과 찍은 스포츠 음료 ‘레드불(Red Bull)’ 광고도 탁구선수 출신이기에 제가 거머쥘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레드불 광고는 제가 탁구 시합으로 NBA 최고의 플레이어인 그리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내용인데, 제가 탁구를 치는 중간 중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할 정도로 여유를 부리죠.”



모델에서 연기자로 새로 꾸는 ‘아메리칸 드림’
“다행히 운동으로 단련된 승부 근성이 있어서 제 자신과의 싸움에는 자신이 있어요.  외국 나가서 힘든 일 있어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죠. 미국 연예계 활동 다음에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다행히 운동으로 단련된 승부 근성이 있어서 제 자신과의 싸움에는 자신이 있어요. 외국 나가서 힘든 일 있어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죠. 미국 연예계 활동 다음에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모델로도 부족했나요. 연기 활동까지 했던데요.

“TV 쇼에 카메오로 잠깐 나가기도 했고, 독립영화 2편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아직은 초보라고 할 수 있어요. 연기 수업을 하면서 무술 수업도 받고 있어요. 동양인 연기자의 경우 무술을 할 수 있으면 오디션에서 유리하거든요. 언제 어떤 역할에 캐스팅이 될지 모르니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운동과 음식 조절인데 사실 음식 조절이 더 중요해요. 다이어트의 60~70%는 음식 조절이 아닌가 생각해요.”

도미한 지 5년째인데 언어로 겪는 어려움은 없나요.

“사실은 영어가 가장 큰 스트레스예요.(웃음) 대화를 하는 데 지장은 없는 수준이지만, 연기는 다르잖아요. 미세한 발음과 억양의 차이는 제가 넘어야 할 산인데, 솔직히 제가 미국 본토 발음으로 영어를 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하면서 단련된 것이 제 자신에 관한 한 어떤 것과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인데, 영어 하나만큼은 미국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겠더라고요. 저만의 색깔을 매력으로 만들어야겠죠. 어떤 분들은 제 특유의 억양이 섹시하게 들린다고도 하세요. 하하. 그래도 미국은 나이에 상관없이 재능만 있으면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인 것 같아요.”

이왕 시작한 연기이니 목표도 한번 여쭤볼까요.

“일단은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계속할 거구요, 지금 모든 것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할리우드 거물급 스타가 주연인 TV 연속극에 캐스팅이 거의 확실시 됐어요. 그 역시 탁구가 캐스팅에 도움이 됐어요.(웃음)”

모델, 연기자, 그 다음엔 또 어떤 분야에 도전하실지 기대가 되는데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주병진 쇼’라는 토크쇼를 보게 됐는데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게스트의 진솔한 얘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는데, 문득 언젠가는 나도 저런 쇼에 나가서 내 삶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정도의 게스트가 되려면 열심히 살아야겠죠. 다행히 운동으로 단련된 승부 근성이 있어서 제 자신과의 싸움에는 자신이 있어요. 외국 나가서 힘든 일 있어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죠. 미국 연예계 활동 다음에는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할리우드에 입성한 것도, 유지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으리라 예상됩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모토나 멘토가 있나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지원 덕분이에요.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왔지만, 항상 어머니는 저와 함께 해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죠.”


길어진 인터뷰는 점심식사까지 이어졌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신 그는 조지아 대통령과의 미팅이 있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탁구가 국민 생활스포츠로 인기가 높아진 요즘, ‘탁구도 잘 치는’ 모델 이수연 씨를 찾는 행사도 많아졌다. 기업의 프로모션 행사는 물론 NBA 경기 하프타임 휴식 쇼, 영화배우들이 마련하는 오스카 시상식 프리(pre) 파티까지 하이힐을 신고 탁구를 치는 이색적인 퍼포먼스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운명처럼 다시 시작하게 된 탁구는 그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기술 이상의 그 무엇이다. 탁구채를 다시 들면서 그는 장애 아동과 치매 노인들에게 틈틈이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오는 6월에는 테런스 하워드, 에바 롱고리아 등 스타들과 함께 캐나다와 미국에서 소아암 돕기를 위한 자선행사가 예정돼 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오가는 핑퐁에 그는 오늘도 꿈을 싣는다. 이룰수록 더 커진다는 그의 꿈은, 어째 자꾸 커져만 갈 것 같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자료 사진 제공 이수연 장소 협조 롯데호텔서울 웨딩(02-771-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