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의 질주가 무섭다. 중국과 인접한 우리는 예의주시하면서 그들을 능가할 비책을 발굴해야 한다. 비책의 근본은 <손자병법>에서 제시한 ‘상대방을 잘 간파하는 전략’이다. 특히 중국 문명을 이끈 인물과 정신의 흐름을 조망하면 그들과 겨룰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중국의 주요 인물 ‘조조, 제갈량, 마오쩌둥’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과 90세의 ‘영원한 외교관’ 헨리 키신저가 들려주는 중국 현대사, 그리고 중국 황제들의 유언을 정리, 분석한 책을 소개한다. 조조의 득인과 용인의 지혜
<삼국지>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최고의 처세 필독서다. <삼국지>가 비록 소설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도 실존 인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위·오·촉을 이끈 조조, 손권, 유비 등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고비 때마다 난관을 타개해 나가는 전략과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후세에 귀감이 돼 왔다.
그중에서도 조조는 특히 탁월하다. 비록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난세의 간웅’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조조를 왜곡한 결정적인 인물은 나관중이 아니라 청대의 모종강 부자다. 당시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백성의 대부분을 이루는 한족을 회유할 필요가 있었는데, 모종강 부자는 촉한을 정통으로 내세운 청나라 황실에 아부하고, 유비와 제갈량 등을 숭상하는 백성들의 기호에 영합해 나관중 작품을 3분의 1가량 손질한 개정판을 내놓았다. 동아시아에서 발간되는 <삼국지>는 대부분 모종강 부자의 개정판을 기본으로 삼았다.
<조조 사람혁명>(신동준 지음·한국경제신문)은 조조의 수많은 장점 가운데 ‘인재 활용’을 핵심 키워드로 뽑아 성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 본문은 모든 일의 시작은 사람이다, 인재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 인간적 실수는 눈감아주어라 등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15가지 비책을 소개한다. <삼국지>의 걸출한 영웅, 조조와 유비 가운데 유독 조조에게만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조조보다는 유비를 더 높게 평가하곤 하나 당대의 인재들은 조조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이는 조조가 인재를 알아보는 눈뿐만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최고로 끌어내는 재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조조의 리더십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그의 ‘사람 혁명’이다. 그에게는 인재를 얻고 활용하는 득인(得人)과 용인(用人)의 지혜가 있었다. 신분과 형식 등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만 있으면 과감히 발탁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과감한 인재 정책은 조조가 천하를 호령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옛날 삼국시대의 상황은 국가 총력전의 양상으로 전개되는 21세기 글로벌 비즈니스의 세계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무한경쟁의 경영 환경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판세를 바꿀 수 있는 인재’다. 조조는 2000년 전에 이 같은 사실을 꿰뚫고 있었으며 강력한 정책으로 이를 실천했다. 제갈량의 9가지 용인술
<삼국지>를 쓴 진수는 제갈량의 정치를 이렇게 썼다. “법률 조문과 교령은 엄격하게 분명히 했고, 상벌에는 반드시 신의가 있고 공정했다. 이리하여 관리들은 간사함을 용납하지 않게 됐고, 강자가 약자를 침해하지 않는 숙연한 사회 기풍이 이루어졌다.”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자오위핑 지음·위즈덤하우스)은 중국 국영방송 CCTV의 교양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의 강의 내용을 엮은 것으로, 제갈량에 대해 품고 있는 환상과 편견을 없애고 조직의 핵심 인재 및 수준 높은 관리자였던 그의 용인술을 면밀히 분석했다. 본문은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쓴다, 관대함과 엄격함을 결합해 대사를 이룬다, 성공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서 비롯된다 등 제갈량의 9가지 용인술을 소개한다.
<삼국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는 ‘삼고초려(三顧草廬)’ 장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비 집단의 앞날에 흥미진진한 기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흔히 ‘삼고초려’ 고사는 유비의 입장에서 이야기되곤 했지만, 이 책은 제갈량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유비 집단이라는 벤처기업으로 들어가기 위해 매사에 빈틈없고 신중한 제갈량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유비 집단 내의 텃세를 물리치며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했다.
저자는 대학에서 경영학 과정을 강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직행동학과 사회심리학 등에 관한 이론적 토대가 있어, 내용 전개에서 한 편에서는 고사(故事)와 인물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분석을 진행한다. 예를 들면 관리학의 각도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를 말하면서, ‘냉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때는 온유한 방식으로 한다’는 관리 법칙을 끌어낸다. 또 인격심리학의 관점을 사용해 어린 시절 양친 부모가 세상을 떠난 경험이 공명의 성격과 리더십 스타일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쳤음을 분석했다. 자기계발의 관점에서 역사 사건을 분석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삼고초려’를 오늘날 기업의 인재 초빙과 결부시켜 ‘나설 때는 당당하게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들어가서는 침착하고 조용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분석을 제기했고, ‘주관적으로 원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쉽지 않게 보이는 책략’ 등으로 해석했다. 일생을 쉬지 않았던 마오의 독서생활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중국 대륙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다시 시작됐다. 마오쩌둥의 공산군은 4년여의 전투 끝에 국민당에 승리를 거두고 1949년 1월 베이징에 입성했다. 그리고 1949년 10월 1일, 마오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마오는 위대한 혁명가이자 박학다식한 학문가다. 부지런한 독서 생활은 마오 일생의 한 부분으로 그의 혁명 생애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活到老, 學到老)’는 경구는 마오가 늘 말하는 중국 속담이며, 자신도 그렇게 살았다.
<마오의 독서생활>(꿍위즈 외 지음·글항아리)은 마오와 평생을 함께 한 동지와 비서부터 그의 도서실 관리자, 영어교사를 역임했던 8명의 저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마오의 독서 철학, 독서 이력, 독서 습관 등을 소개한다.
마오는 어려서부터 부지런하고 배움을 좋아했으며 책을 즐겨 읽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의 독서욕은 갈수록 강해졌다. 지식을 쌓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동서고금의 각종 서적을 탐독했다. 가장 힘들고 긴장으로 점철된 혁명전쟁이라는 환경에서조차 책읽기를 잊지 않았다. 1966년 마오의 장서는 수만 권에 달했다. 그는 책에서 얻는 지식을 중시하는 한편 산지식도 중시했다. “공부하는 책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글자가 있는 강의안은 책이고, 사회의 모든 것도 책입니다.” 그는 ‘무자천서(無字天書)’ 즉 사회를 ‘글자가 없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에서의 경험과 실천을 강조했다.
마오는 중국 현대작가 가운데 루쉰의 저작을 가장 애독했다.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 혜능 사후 그의 제자가 편찬한 <육조단경>(六祖壇經)은 마오가 여러 번 탐독하고 외출할 때도 지니고 다녔을 정도였다. 1976년 8월 26일 마오가 요구한 마지막 책은 <용재수필>(容齋隨筆)이다. 그가 최후로 책을 읽은 시간은 그해 9월 8일, 즉 임종한 그날 5시 50분으로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는 상황에서도 책을 읽었는데 모두 7분을 읽었다.
50여 년 전 마오는 옌안에서 있었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내가 다시 10년을 더 살고 죽는다면 9년 359일을 배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실천으로 50여 년 전의 약속을 실현했다. 위대한 혁명가이자 학문가인 마오는 그의 심장이 거의 멈출 즈음에야 평생 쉬지 않고 이어온 자신의 독서 생활을 끝맺었다. 키신저가 본 중국의 외교 역사
중국 근대사는 그 나라의 국토 크기만큼이나 방대할 뿐 아니라, 예측불허의 사건으로 점철돼 있어 전문가들조차 충분히 이해하기가 수월치 않은 인류 역사의 한 부분이다. 20세기 초에 이미 쇠약하고 지리멸렬했던 제국은 불과 반세기 후인 지금 세계 제2의 경제 초강대국이 됐다.
‘핑퐁 외교’라는 창의적인 외교를 일구어 냈던 헨리 키신저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외교정책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중국 및 아시아 문제에 관해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헨리 키신저 지음·민음사)는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온 저자가 치밀한 현실 정치 감각과 역사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중국 외교 역사를 깊숙이 조망한 책이다. 1971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중국을 방문한 이후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 온 저자는 중국 정상들과의 개인적인 대화 기록 및 최근 해제된 기밀문서를 바탕으로 중국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소개한다.
본문은 아편 전쟁, 마오쩌둥 혁명, 삼각외교와 한국전쟁, 제3차 베트남전쟁, 장쩌민의 시대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관찰자로서 키신저의 관점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 독자들이 알기 힘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나 피를 말리는 대치 상황 등이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
이 책은 평화와 전쟁, 그리고 국제질서에 대해 중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설명하며, 21세기의 글로벌 세계에서 중국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므로,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무엇보다 상대 국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올바른 외교가 가능하다는 기본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오랜 세월 외교관으로서의 소회를 말한다. “역사가 과거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변화라는 것은 한 번도 생기지 않았을 터, 모든 위대한 업적은 현실로 변하기 전까지는 하나의 비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업적은 불가피한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굳게 확신하고 몸을 던지는 데서 이루어진다.” 깊은 통찰과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중국 황제들의 유언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사람이 죽기 전에 남기는 말을 ‘유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사람이 제왕이라면 그가 남기는 말은 ‘유조(遺詔)’라고 칭한다. ‘조(詔)’라는 글자는 황제의 명령을 가리킬 때만 쓴다. 그러므로 ‘유조’는 황제가 죽기 전에 남긴 명령이 된다.
<황제의 유언>(허무펑 지음·비아북)은 개국 제왕과 중흥 군주부터 태평성대 천자까지 오늘날 중국 역사를 대표하고 완성한 황제 12명의 깊은 통찰과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유언을 담았다.
중국 역사상 현존하는 최초의 유조는 <상서>(尙書) ‘고명(顧命)’ 편에 보인다. 이는 주나라 성왕이 임종 전에 대신 소공과 필공에게 아들인 강왕을 맡기는 내용이다. 그래서 후대에는 유조를 ‘고명’이라 칭하고, 유조를 받아 새로운 황제를 보좌하는 대신을 ‘고명대신(顧命大臣)’이라 부르게 됐다.
수천 년을 이어온 중국 역사에 600여 명의 황제가 출현했다. 그러나 이들 제왕 중에 유조를 남김으로써 후세에 영향을 끼친 제왕은 30명도 되지 않는다. 유조의 내용에는 제왕 자신이 일생 이룩한 공적에 대한 회고나 후세에 대한 희망, 후계자를 위한 조언, 장례 문제, 자신의 언행에 대한 참회와 개선해 달라는 요구사항 등이 포함돼 있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아들 유선이 제왕이 될 제목이 아니라면 대신 그 자리를 취하라는 대담한 유언을 남겼다. 이는 후대에 커다란 논쟁거리를 제공했지만 제갈량의 충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유비의 계략이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왕들이 남긴 유조는 중국 역사의 유명한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바꿔치기 된 진시황의 유조와 진나라의 운명, 유방의 유조와 여후의 정권 찬탈, 허위로 가득 찬 유비의 유조와 죽을 때까지 사력을 다한 제갈량, 인생철학이 가득한 측천무후의 유조’ 등은 모두 직접적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유조는 제왕이 남긴 말이자 그가 생전에 천하를 다스리며 축적한 지혜가 마지막 순간에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왕이 남긴 유조는 그 왕조의 역사에 대한 주석(註釋)이라고 할 수 있다.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 ktkang21@han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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