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미술 시장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국내 미술 시장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조금씩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실물경기의 영향으로 가시적인 회복이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는 게 미술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미술 시장 침체기에도 주목받은 작가들
전반적인 침체기에도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은 여전히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김환기, 이우환, 이대원 등이다.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며 김환기의 작품은 1년 사이 가격이 53% 올랐고, 이우환과 이대원의 작품 가격도 각각 49%, 48% 상승했다.
여기에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크고 작은 회고전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김환기의 작품은 최근 크고 작은 회고전을 거치면서 재조명받았고, 이우환 역시 지난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국제적인 미술가로 소개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뉴욕 전시에 갔었는데, 저도 보지 못한 작품이 30% 가까이 되더군요. 15년간 미술계에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이우환의 새로운 작품 세계를 보게 된 거죠. 회고전은 그런 파급효과가 있어요. 요즘 김환기, 장욱진 같은 분들의 회고전이 이어지고 있는데, 큰 전시를 하면 작품도 재조명받고 자연스레 거래도 이루어져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렇다고 단기적인 흐름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미술 시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지론이다. 미술 애호가라면 미술사의 큰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시대의 미감을 감지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국 미술 시장을 보더라도 아방가르드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설치미술 등이 때를 달리해 유행했다. 얼마 전까지는 앤티크풍의 작품이 주목을 받다가 지금은 메시지가 있는 개념 미술이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최근 미술계의 또 다른 경향은 개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독립적으로 평가하게 됐다는 점이다. 어떤 계보에 있는 작가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의 독창적인 오리지낼리티에 보다 주안점을 둔다. 미술 시장의 흐름 읽고, 작품 보는 눈을 키워야
미술에 관심을 갖는 이라면 먼저 미술 시장의 이런 흐름을 읽는 게 중요하다. 그런 다음 작품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게 좋다. 박 대표는 처음 작품을 대하는 애호가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낯선 작품 앞이라고 쭈뼛거릴 필요는 없다. 과감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게 좋다.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할 때는 예산도 고려해야겠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일단 즐기는 게 중요하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미술품이 있는 공간을 찾아가야 한다. 여러 작품을 보면서 내 취향이 어떤지, 스스로 미학의 기준을 세우는 게 좋다. 먼저 그림을 보는 게 도록을 보고 작가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보다 우선이다. 그런 다음 작품 설명 등을 보며 작가와 자신의 시각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처음에는 눈이 훈련된 대로, 익숙한 작품이 먼저 보이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보는 게 중요하다. 박 대표는 수많은 미술관과 화랑 중에서 가급적이면 삼성미술관 리움이나 호림미술관 등 수작을 볼 수 있는 곳을 권한다. 좋은 작품을 보며 눈을 훈련시키라는 것이다.
시간을 내서 해설이 있는 미술 기행을 다니는 것도 좋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도반들과 모임을 만든다면 금상첨화다.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가까운 도반들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을 즐기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때가 되면 전시장에 있는 작품을 자신의 공간에 갖다 놓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컬렉션의 세계로 접어드는 거죠.”
컬렉션은 전시장이나 화랑을 통할 수도 있다. 보다 다양한 작품을 보려면 경매를 활용하는 게 좋다. 실제로 경매에 뛰어들기에 앞서 1년 가까이 도록을 보고, 경매 과정을 지켜보는 시기가 필요하다.
미술품 가격은 최근 거래가를 중심으로 평가가 가능하다. 미술품 경매가 활성화된 요즘은 경매 기록을 보며 가격 추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미술 관련 잡지나 협회에서 내놓는 미술품 가격지수도 참고할 만하다.
올 초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내놓은 ‘미술작품 가격지수( KAPAA 인덱스·Korea Art Price Appraise Asso-ciation index)가 대표적이다. KAPAA 인덱스는 작가와 작품, 거래 정보 등 시장 정보 70%, 예술적 가치 30%를 적용해 산출한다. 컬렉션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가격 정보가 노출되고, 자신만의 미학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항상 아트테크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오래된 화랑들은 모두 재벌이 됐어야 한다. 미술계에서는 일반적으로 30% 성공하면 아트테크에 성공했다고 본다. 좋은 작품이지만 경매에서 유찰돼 싸게 살 수도 있다. 이를 두고 미술계에서는 “작품의 임자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덜 알려진 좋은 작가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싼 값에 살 수도 있다.
“20세기 초의 추상화가들이 그랬죠. 화단의 심한 비난을 받았던 게 20세 초의 추상화가들이거든요. 그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을 컬렉션한 컬렉터들이 있었어요. 그들이야말로 남다른 미감으로 컬렉션에 성공한 분들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좋아서 산 작품이 나중에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을 때도 있다. 한 시대에는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던 작품이라도 10년, 20년 후에 작품 가격이 오른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한 작가의 작품도 경향에 따라 작품 가격이 천양지차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도 시대와 재료, 소재, 선호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100배 이상 난다.
따라서 주식뿐 아니라 컬렉션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젊은 작가부터 원로 작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컬렉션에 포함시켜야 한다. 한 시대를 넘어 꾸준히 컬렉션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산가들이 부동산을 판 돈을 다시 부동산에 묻어두듯이, 그림을 팔아서 자금이 생기면 그림에 투자하는 게 합리적이다.
“최근에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잖아요. 그 덕에 많은 중국 젊은이들의 꿈이 화가고요. 그런 힘의 배경은 중국 컬렉터들이에요. 중국인들은 컬렉션의 역사가 깊고, 자국 작가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감사의 표시로 도자기나 그림을 선물하는 전통이 폭넓게 퍼져 있거든요. 그런 점이 부러워요.”
문화가 발전하려면 애호가들의 층이 두텁고, 사회 전반에 문화를 아끼는 분위기가 살아야 한다. 박 대표가 문화예술교육 컨설팅 사업에 뛰어든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사회지도층을 비롯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미술을 향유하고 컬렉터가 되기를 바란다. 문화예술의 발전은 거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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