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있는 선거 시즌을 맞으면서 온갖 루머들이 증시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 금융당국에서 단속한다 하더라도 개미들에게는 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축제입니다. 저렇게 올라가는데 손 놓고 바라만 본다면 주식투자를 하지 말아야죠.”
개인투자자 김정민(39·가명) 씨는 지인의 말을 듣고 올 초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되는 바른손을 샀다가 이틀 뒤 팔았다.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덕분에 김 씨의 수익률은 이틀간 30%에 달했다. 그 뒤로도 바른손 주가는 계속 올라 2000원 내외에 불과했던 주가가 2월 8일 1만 원을 돌파하며 단기 고점을 찍었다. 과도한 주가 상승에 작전세력이 개입했다는 혐의를 포착한 금융당국은 뒤늦게 집중 조사에 나섰지만, 김 씨는 “제대로 한 방 크게 먹을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증시가 각종 ‘테마’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있는 선거 시즌을 맞으면서 온갖 루머들이 증시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루머를 만들거나 유포해 시세 조종과 같은 불공정거래 행위를 할 경우 적발해서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나섰지만 ‘대박’의 환상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속수무책이다. ‘테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개인 주식투자자들이 대부분 쓰는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는 제각각 테마주 리스트가 올라온다. 삼성증권, 동양증권 등은 투자정보업체 인포스탁이 정리한 테마주 리스트를 받아 그대로 HTS에 올린다. 대우증권, 대신증권 등은 자체 투자정보팀 등에서 만든 테마주 리스트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한다.
키움증권은 자체 선별한 테마주와 인포스탁이 제공한 테마 정보를 함께 올려놓는다. 증권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테마의 종류는 적게는 140개에서 많게는 250개에 이른다. 개별 테마들이 편입한 종목도 적게는 2~3개에서 많게는 40~50개가 있다.
예를 들어 인포스탁은 건설대표주, 자동차 부품주, 항공, 정유 등 종목 업종을 기준으로 한 리스트에서부터 4대강 정비, 바이오디젤, 신종플루 등 백신, 구제역, 남북경협, 전쟁 및 테러 등 정책 관련 종목들을 묶거나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주가가 급등락하는 종목들을 한 데 모아 리스트로 제공하고 있다.
인포스탁이 분류한 테마의 종류는 247개에 이른다. 기간별로 해당 테마에 포함된 종목의 등락 현황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자체 분류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테마주 리스트가 고배당주, 바이오신약, 요트 마리나, U헬스케어 등 169개에 이른다. 키움증권도 136개에 이르는 테마주 정보를 따로 제공한다.
권용호 인포스탁 대표는 “코스피, 코스닥 양 시장에 2000개에 가까운 종목들이 있지만 이들을 투자자가 일일이 살펴보기란 불가능하다”며 “급속히 변하는 산업 환경과 기업수익 모델을 업종별로 조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단순한 업종 분류로는 한계가 많아 주식테마 분류라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업종 분류의 성격과 미래의 성장 콘셉트가 유사한 종목들을 묶어 테마 리스트로 제공하고 있다”며 “시장에서 부각되는 종목을 조사해 주식테마에 편입하는 것이지 인포스탁이 임의적으로 조사해 먼저 편입한 후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테마주 리스트에 포함된 종목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의심이 생기는 부분이 많다. 시장에서 근거 없이 떠도는 풍문에 의해 주가가 움직일 때 해당 종목에 대한 조사 없이 테마에 넣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경남지역 레미콘 시장점유율이 3~4%대에 불과한 부산산업은 인포스탁 테마 분류에 ‘해저터널주’에 속한다.
이 회사는 그간 “우리가 영위하는 사업은 해저터널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수차례 밝혀 왔음에도 해저터널 테마와 연동돼 움직인다. 젬백스의 경우 정보기술(IT) 소재를 만드는 기업임에도 자회사가 줄기세포뱅크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줄기세포 테마’에 포함돼 있다. 줄기세포 부문에서의 수익이 젬백스 수익에 미치는 영향도 극히 미미하다.
한 투자정보업체 관계자는 “투자자나 상장사 기업설명회(IR) 관계자들이 먼저 전화해서 ‘이 종목을 테마로 묶어달라’고 민원을 넣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회사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별개로 임의로 테마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생기는 대목이다.
실제 한 증권사 IT 담당 직원은 “테마에 묶을지 여부, 테마를 새로 만들지 혹은 없앨지 여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한다”면서 “리테일 각 부서에서 특정 종목을 테마에 넣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우리야말로 테마에 맞는 회사인데 증권사가 제공하는 테마 분류에 없다는 이유로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다”며 “다른 업계 IR 담당자들과‘우리끼리라도 테마를 만들어볼까’하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옷깃 스치지 않아도 마구 엮이는 ‘선거 테마’
최근 금융감독원이 집중 조사하겠다고 벼르는 선거 테마 역시 마찬가지다. 유력 정치인의 말 한 마디가 일파만파로 커져 “향후 5년간 ○○○ 정책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정보가 확인되지도 않은 채 퍼져나간다.
2월 10일 기준으로 금감원이 파악하고 있는 정치인 테마주는 약 78개에 이른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련 테마주가 14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관련 테마주가 10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 관련 테마주가 6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관련 테마주는 무려 34개에 달한다.
박 위원장의 친동생 박지만 씨가 회장으로 있는 EG의 경우 지난해 11월까지 2만 원 선에 불과했던 주가가 올 초 한때 9만 원 인근까지 치솟은 뒤 2월 중 6만 원 선을 형성 중이다. 정치 테마 대장주로 꼽히는 안철수연구소는 1만~2만 원 선에서 서너 달 만인 올 초 16만 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안철수연구소는 안 원장의 소소한 발언에 하루 시가총액이 1조 원씩 늘었다가 감소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 종목은 해당 정치인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테마주란 명분이라도 있다. ‘옷깃만 스쳐도 테마주’로 엮이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정치인 테마주가 대부분이다. 의류업체 대현의 경우 지난해 문재인 테마주로 엮이며 주가가 크게 출렁였다. 문 이사장과 함께 등산복 차림으로 사진이 찍힌 인물이 신현균 대현 대표가 아니냐는 설이 돌면서부터다. 이 때문에 대현 주가는 1100원대에서 4000원 선까지 급등했었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이 신 대표가 아니라는 게 확인되자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쳤다.
조광페인트 역시 이 회사 양선민 회장이 문 이사장과 경남고 동문이라는 이유로 주가가 3000원대에서 9000원대로 단기간 가파르게 올랐다. 경남고 경제인들의 모임인 ‘덕경회’에 소속된 종목들도 문 이사장이 ‘덕경회’에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일제히 주가가 뛰었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 경호실 직원이었던 한 인사가 대주주로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에 주가가 뛰는 종목도 있었다. 박 위원장 테마주로 엮였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2007년 8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내놓은 직후부터 토목건설업체 이화공영 주가는 2600원대에서 6만7400원까지 무려 2490%의 상승률을 보였다.
동신건설, 삼호개발, 특수건설 등도 대운하·4대강 수혜주로 꼽히며 주가가 폭등한 종목들이다. 이명박 당시 후보의 사돈의 사촌 기업인 효성ITX 역시 테마로 꼽힌 바 있다. 당시 이름을 떨쳤던 테마들로는‘MB 대운하 테마’,‘정동영 철도 테마’ 등이 있다. 그럼에도 투자자는 또 달려든다
금감원은 최근 증권방송이나 인터넷카페 등을 통해 테마주 관련 정보가 확대, 재생산된다고 보고 시장 감시 활동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테마주 관련 허위 정보를 작성, 유포하거나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가 적발될 경우 검찰 고발 등의 조치까지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테마 단속의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소위 작전세력 개입 징후를 포착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설령 포착했더라도 발 빠르게 빠져나가 잡아내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처음 허위 정보를 유포해 일단 테마가 형성되고 나면 부나방처럼 투자자들이 달려든다”며 “이 때문에 누가 작전세력인지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다시 부각되는 테마로는 ‘박근혜 신공항’ 테마가 있다. 박 위원장이 “남부권 신공항은 국민에게 약속한 것으로 반드시 약속이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일부 종목이 급등하기도 했다. 이 외에 ‘김문수 테마’,‘ 박원순 테마’ 등도 잠재적인 테마 후보군 중 하나다.
안재광 한국경제 증권부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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