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영 래이투자자문 대표
장봉영 대표는 국민연금과 한국투신운용을 거쳐 2010년 말 래이투자자문을 세웠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있을 때는 4조7000억 원 규모의 인덱스 파생상품을 운용했다. “지난 1월 주식시장의 랠리는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에서 비롯됐습니다. 당초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이 큰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죠.” 장봉영 래이투자자문 대표는 최악의 시기는 지났고, 당분간 유동성에 의해 시장은 2100까지는 무난히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래이투자자문은 펀드매니저의 주관적 판단에 의지해 주식을 사고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권트(계량분석)를 이용해 보다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운용하는 자문사다.장 대표는 시장이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을 반등 신호로 받아들인 것은 주식시장의 선행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호황기가 100, 불황기가 -100이라면 주식시장은 가장 바닥인 -100일 때 반전하는 게 아니라 -50일 때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유럽 전체가 망하는 게 -100이라고 치면,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은 -50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 각국이 더 이상 뒤로 물러앉아 수수방관만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위기에 빠진 유럽을 살려낼 수 있는 핵심 국가다.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도 신용등급이 내려가게 됐고, 유럽 전체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경기지표가 나쁘게 나타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양적완화를 시행할 것이란 기대감이 생겨 주식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도 ECB가 행동에 나설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ECB는 작년 말 1%의 저금리로 4890억 유로의 자금을 3년 만기로 대출해주는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시행해 유럽 재정위기 확산에 대비해왔다. 오는 2월 말에 2차 LTRO를 시행해 시장에 추가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이다.
장 대표는 “지금까지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된 유동성은 지난해 9조5000억 원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들어온 것”이라며 “기존에 한국에 투자하던 자금 외에 신규 유동성이 들어오면서 1분기에 2100까지 코스피 지수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국내 시장으로 돌아온 외국인 자금은 작년 빠져나간 규모의 절반인 4조 원가량. 그는 최근 외국인의 매수세가 다소 주춤해진 것에 대해 “2000을 넘어서면서 밸류에이션이 부담스러워진 것이 사실”이라며 “프로그램 매수에 따른 매수차익 잔고가 3조 원 이상 쌓여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3월 선물옵션 만기일에 나오는 매도 물량을 매수 기회로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차익 거래는 선물과 현물의 가격 차이에 따른 거래를 말한다. 선물이 현물보다 비싸면 선물 매수, 현물 매도, 그 반대의 경우에는 선물 매도, 현물 매수를 하는 것이다. 이는 3개월마다 돌아오는 선물만기일에 선물과 현물 가격이 똑같아지기 때문에 가능한 거래 방식이다. 지금까지 이런 프로그램 차익 거래를 통해 쌓인 현물 매수 물량이 3조 원이 넘는데 이 중 상당 규모가 3월 선물옵션 만기일에 매도 물량으로 나올 것이란 게 장 대표의 예상이다.
그리고 한국 주식을 충분히 담지 못한 외국인이 이 매도 물량을 받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만기일에 1조5000억~2조 원가량의 매도 물량이 프로그램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외국인들이 지금 무리하게 국내 주식을 사들이기보다는 만기일에 나오는 물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따라서 코스피 지수가 2100까지 오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만 그 이후부터는 한동안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외국인도 충분히 담을 만큼 담았고 밸류에이션도 싸다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펀드 환매가 나오면서 투신권도 매수 여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장 대표는 “결국 이후 시장은 유동성에서 다시 펀더멘털로 중심이 이동하게 될 것”이라며 “세계 경기의 둔화세가 계속되고 있고 국내 기업 실적도 하향 조정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전고점인 2200을 넘는 것은 힘들다”고 평가했다. 2100 이상으로 주가가 상승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 실적과 국내외 경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업종별로는 정보기술(IT)과 정유, 화학 같은 소재주 등이 유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가운데 아직 주가 수준이 높지 않은 업종들이다. IT는 삼성전자가 작년 말부터 크게 올라 100만 원을 넘어섰지만 나머지 IT 종목들은 아직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장 대표는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상승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면 투자 매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IT 업종 중에서도 덜 오른 종목에 차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다만 IT 업종 투자 시에는 미국 경기지표의 향방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작년 말부터 IT가 주도주로 부상한 것은 미국 경기지표 호조에 따른 수요 회복 기대감 때문이었다”며 “이런 기대감으로 주가가 미리 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향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요 개선이 실제로 이뤄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 및 화학 업종도 올 들어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정유의 경우 일단 유가 강세에 따라 원가 부담에도 정제마진이 견조하게 나타나고 있다. 유럽 지역 한파,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미국의 정제설비 정기보수 등으로 정제마진은 10달러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주요 원료인 나프타와 부타티엔 등도 오름세가 계속되면서 화학업체들 또한 실적 개선이 전망되는 상황이란 평가다. 장 대표는 “정유·화학 업종은 대표적인 경기민감주”라며 “글로벌 경기 회복과 중국 긴축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주가가 오르는 종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동차 업종은 올해 수익을 내기 힘들 것으로 지목했다. 좋은 주식임에는 틀림없지만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자동차는 앞으로도 꾸준히 실적이 좋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작년 8월 이후 급락장에서도 주가가 그리 많이 빠지지 않아 다른 업종 대비 밸류에이션이 싸지 않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원화의 상대적 약세와 일본 대지진으로 반사이익을 얻었지만, 올해는 환율 하락과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회복 등으로 쉽지 않은 환경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올해 눈여겨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은 결국 중국 경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IT의 경우는 미국에서의 수요가 많다고 해도 정유, 화학, 철강, 조선, 기계 등 대부분의 경기민감주는 중국 긴축 완화 여부에 따라 올해 주가의 움직임이 결정될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 중국이 올해 긴축 완화에 나설 가능성은 높다”면서 “하지만 과거와 같은 고성장 전략보다는 연착륙(소프트 랜딩)을 하면서 안정화에 나서는 쪽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경기선행지수가 반등에 성공했지만 중국은 경기선행지수가 계속 경기 둔화를 가리키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누그러진 만큼 상반기 중 지급준비율 인하나 금리 인하 등의 방법으로 긴축 완화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지도부 교체가 예정돼 있는 것도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 모멘텀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지도부 교체를 전후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위안화 절상 압력과 선진국 수요 부진으로 수출을 통한 경기 부양보다는 내수시장 활성화를 통한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임근호 한국경제 기자 eigen@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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