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슈로더투자신탁운용 국내투자운용본부장
슈로더투자신탁운용(이하 슈로더투신운용)은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최대 운용사 중 하나다. 김상철 국내투자운용본부장은 뮤추얼 펀드와 해외 투자 펀드에 강점을 가진 슈로더투신운용이 국내 주식형 펀드의 투자 강화를 위해 2010년 영입한 인물이다. ‘수퍼싸이클 펀드’ 등을 출시하며 투자 영역을 넓히고 있는 김 본부장의 투자 철학을 들었다. 슈로더투신운용으로 자리를 옮기신 지도 1년 6개월이 넘었습니다. 국내 자산운용사에서 외국계 슈로더투신운용으로 옮긴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1995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곳이 삼성생명이었습니다. 그 뒤 삼성자산운용에 있을 때까지 15년 이상을 국내 최고 운용사에서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로서 배운 게 많습니다. 슈로더투신운용으로 자리를 옮긴 건 글로벌 운용사의 노하우와 철학, 시스템에 대한 갈망이 커서였습니다. 당시는 슈로더투신운용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 주식형 펀드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거기에 동참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국내투자운용본부를 맡으면서 가장 주력한 점은 어떤 분야입니까.
“운용사의 경쟁력은 펀더멘털 리서치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좋은 인재를 뽑아 리서치의 깊이와 커버리지를 확대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슈로더 그룹의 그리드(GRID·Global Research Investment Database) 외에 국내 투자 환경에 맞는 투자 정보 시스템인 PMS(Portfolio Management System)를 도입해 투자 프로세스를 한 단계 올려놨다고 자부합니다.”
그동안의 성과를 꼽자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국내 운용팀의 인력과 시스템을 확충한 게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봅니다. 이를 통해 국내 투자 운용의 토대를 확고하게 마련했으니까요. ‘수퍼싸이클’이라는 공모 펀드를 출시함으로써 향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중요한 성과입니다. 국내 리테일 고객뿐 아니라 수협, 사학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참여를 끌어낸 것도 저희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국내 운용사에서 글로벌 운용사로 옮기시니까 다른 점이 많았을 듯한데요. 글로벌 운용사의 장점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슈로더투신운용은 1804년 설립돼 200년이 넘는 운용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 등 정치, 경제, 문화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성장해온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슈로더투신운용 성장의 비결은 일관된 투자 철학과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세, 그리고 리스크 관리에 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인 이야기 같은데,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컴플라이언스 측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슈로더투신운용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사내 시스템을 통해 하나금융지주가 매매 금지 종목으로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의아했죠. 알고 보니 하나금융지주가 홍콩 지역본부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제안했고, 이런 일 때문에 하나금융을 매매 금지 종목 리스트에 올린 거였더군요. 하나금융지주의 예처럼 슈로더투신운용은 컴플라이언스를 포함한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큰 장점입니다.”
운용에서도 차이점이 있습니까.
“국내 운용사들은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는 경향이 있지만, 슈로더투신운용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즈니스에 접근하고 운용도 그렇게 합니다. 펀드의 출시와 판매, 운용 등 모든 측면에서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제가 슈로더투신운용으로 옮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부임 후 출시한 수퍼싸이클 펀드는 슈로더투신운용의 철학을 담은 펀드일 텐데, 펀드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향후 10년에서 20년 동안 한국은 인구구조의 변화, 기후변화, 신흥 시장의 고성장 등 큰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이런 인자들은 한국의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사이클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런 슈퍼 사이클에 따라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되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수퍼싸이클 펀드’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슈퍼 사이클을 보면 인구구조의 변화는 고령화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예고합니다. 기후변화는 그린에너지, 탄소배출과 매연 저감에 대한 관심을 높이게 합니다. 신흥 시장의 고성장은 도시화와 인프라 개발, 원자재 소비 확대, 중산층화와 소비 증대 등을 수반합니다.”
종목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합니까.
“코스피 지수의 비중, 즉 시가총액보다는 성장성, 기업에 대한 정성적 평가,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밸류에이션과 운용역의 확신도 등이 기준입니다.‘수퍼싸이클 펀드’는 이렇게 선정한 30여 개의 종목에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출시됐는데 지난해 말 기준 설정 자산은 156억 원입니다.”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궁금합니다.
“수퍼싸이클 A클래스의 수익률은 - 1.02%로, 코스피 지수 대비 5.08% 초과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펀드 중 28% 수준입니다.”
부임 전에 슈로더투신운용에서 출시한 국내 펀드가 있었죠.
“2002년 출시한 ‘코리아 알파 펀드’가 있습니다. ‘코리아 알파 펀드’는 밸류와 그로스 사이의 균형적인 스타일과 중소형주에 투자하는 펀드로, 현재 40여 종목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형주와 성장주 중심의 ‘수퍼싸이클 펀드’와 차별화됩니다. 향후에 순수 중소형주 펀드를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중소형주 펀드는 50여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로 성장성이 있으면서도 밸류에이션이 현저히 저평가된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국내 펀드를 출시하며 국내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 슈로더투신운용이 여전히 해외 펀드가 중심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슈로더투신운용의 브릭스 펀드가 잘 알려져 있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국내 펀드는 아직은 취약한 상태로 회사에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해외 펀드와 국내 펀드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운용자산 면에서도 여전히 해외 펀드 비중이 높죠.
“현재 운용자산은 브릭스 펀드 2조8000억 원을 포함해 총 4조6400억 원입니다. 이 중 국내 펀드는 1140억 원으로 전체 운용자산의 약 2.5%를 차지해 아직은 미미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회사의 전체 펀드에서 30~40%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5년 안에 리테일 펀드 2조, 기관 펀드 1조 정도를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투자 경험을 하셨을 텐데, 투자자들에게 깨달음을 줄 만한 사례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운용역으로 있을 때 현대모비스에 투자해 성공한 경우를 들 수 있겠네요. 펀드를 맡으면서 현대모비스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현대정공이라는 옛 이름으로 불렸고 지금과 달리 컨테이너와 갤로퍼 등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맡은 후 현대차와 기아차 부품 서비스사업을 양수했고, 이후 종합 부품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당시를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회사의 변화(restructuring)를 인지하고 장기적으로 분석한 게 주효했다고 봅니다.”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을 듯한데요.
“물론 많습니다. 실패한 경험을 보면 신규 산업의 성장성이나 기존 기업의 사업다각화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에 기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궁극적 수혜자는 콘텐츠업체가 될 거라는 확신에 투자한 경우는 최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경영진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는 계기가 됐죠.” 그런 투자 경험을 통해 깨닫는 점도 많겠습니다. 개인적인 투자 철학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저는 자기 나름의 운용 철학과 투자 스타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제 경우를 보면 처음 운용역이 됐을 때는 시장과 분위기에 휩쓸려 잘 알지 못하는 종목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철저한 펀더멘털 분석을 통해 기업의 본질가치 대비 저평가된 종목에 투자한다는 운용 철학이 확립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과 종목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석은 단기적이라기보다는 장기적인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업이 어떻게 변할지 논리적인 상상을 펼쳐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경영자의 자질과 성품, 능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종목을 고르는 기준도 남다를 듯합니다.
“정부의 규제산업이나 가격 통제를 받는 산업과 기업은 제 기준에서는 제외됩니다. 규제산업은 대개 내수 위주 산업으로 한정된 시장 내에서 경쟁할 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보다는 많은 이해당사자를 고려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이익 추정이나 밸류에이션이 매우 어렵습니다. 또 시가총액이 크더라도 모르는 종목이나 확신이 가지 않는 종목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경영자가 창의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글로벌하게 경쟁하는 기업에는 확신을 갖고 투자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주식시장 전망을 부탁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긍정적입니다. 중간 중간 하락도 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좋을 것으로 봅니다. 특히 하반기로 갈수록 상승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유럽이 부채 위기를 극복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국이 예상보다 좋은 경기지표를 나타내고 있고, 중국도 연착륙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것은 한국의 기업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다는 점인데, 1분기는 특히 유럽의 영향으로 수출이 부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보유액, 단기 외채비율, 경상수지 등 모든 면에서 좋아졌고, 기업들도 전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이익을 늘여가고 있습니다. 수급에서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매우 풍부한 상태입니다. 국내에서도 연기금이 지난해 13조5000억 원 순매수했는데, 올해도 그 정도는 무난할 듯하고요.
지난해 9조4000억 원 순매도했던 외국인들도 올 들어서는 순매수로 돌아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단기적으로는 변동성이 있을 수 있으나 코스피 지수는 상승 추세로 복귀해 전고점을 넘어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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