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 the Men, By the Men, For the Men

세계의 유통업계는 여성들의 지갑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여성 자신은 물론 자녀를 끌어들인 마케팅이 고점을 찍은 후 유통업계가 눈을 돌린 대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성이다. 자고로 남성에게 불편하기만 했던 백화점은 스케일 크게는 건물 전체를 남성 쇼핑 공간으로, 작게는 한 층 전체를 남성만의 브랜드로 채우기에 분주하다. 쇼핑과 휴식이 한번에 가능한 공간, 그것은 여성들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Of the Men] 백화점에서 스파까지 이제, 남성들이 지갑을 열어야 할 때
없는 것이 없다는 말 그대로 백화점에 복합쇼핑몰, 전문관 등이 새로운 콘셉트로 변모하는 것은 시대의 ‘굵은’ 트렌드다. 모든 것을 다 취급하는 백화점이 한 가지 특정 아이템을 취급하거나(리빙 전문관 등) 특정 고객만을 타깃으로 재편하고 있는 것. 이 같은 상황은 일본, 홍콩, 유럽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각국의 백화점들도 복합몰, 전문관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며 백화점의 개혁을 시도함으로써 정체 위기에 빠진 백화점의 매출 곡선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홍콩 등도 남성관으로‘베팅’

일본의 경우, 남성 전문 쇼핑몰의 등장은 1999년을 기점으로 매출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평가됐던 백화점 매출에 신기원을 창출했다. 그 선두에 섰던 것이 이세탄백화점. 2003년 도쿄 신주쿠 본점 별관을 ‘남성신관’으로 리모델링, ‘이세탄 멘즈’를 오픈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았던 한큐백화점은 2008년 오사카 최대 중심가인 우메다에 남성 전문관 성격의 ‘한큐 멘즈’를 개업하면서 1년간 방문 고객 약 870만 명, 첫해 매출 265억 엔(약 384억 원)을 기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큐백화점은 지난해 10월 도쿄 긴자의 최대 상업지구인 유라쿠초에 ‘한큐 멘즈 도쿄’를 오픈하며 첫날 매출 30억 원을 올리는 신기록을 다시 새웠다. 비슷한 사례로 홍콩 랜드마크 백화점의 ‘랜드마크 멘’, 프랑스 라파예트백화점의 ‘라파예트 옴므’ 등을 꼽을 수 있다.
남성 전문관으로 침체에 빠져 있던 백화점 매출을 끌어올린 일본 한큐 멘즈
남성 전문관으로 침체에 빠져 있던 백화점 매출을 끌어올린 일본 한큐 멘즈
이처럼 세계적으로 백화점을 변신(?)시키는 유통 트렌드의 중심에는 남성이 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 미시족, 골드미스족들에게 ‘나 자신을 위해, 아이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라’며 지갑 열기를 재촉했던 국내 백화점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남성들에게는 높아 보이기만 했던 백화점 문턱을 대폭(?) 낮추고 앞 다퉈 남성 고객 모시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여기에는 ‘꽃중년’, ‘미중년’, ‘노무족(No More Uncle: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님)’ 열풍도 한몫을 톡톡히 했는데, 중년 남성들이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패션 상품 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보다 앞서 일본의 이세탄 멘즈와 한큐 멘즈의 성공적인 론칭과 성장 역시 국내 백화점들의 새로운 시도에 ‘롤모델’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백화점·스파·비즈니스 멤버십 클럽까지

남성 고객 모시기 경쟁에 선 백화점의 경우, 특별하고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을 위해 남성을 위한 공간 마련부터 시도했다. 작게는 수제화 편집숍, 잡화 편집숍을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백화점 한 층 전체를 남성 전용관으로 리모델링하는 형태다. 여성 고객들을 위한 공간들이 그랬듯 남성 전용관 역시 쇼핑뿐만 아니라 그루밍, 마사지 등 쇼핑과 휴식 공간을 겸한 ‘원스톱’ 쇼핑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백화점들마다 비슷한 형태의 숍을 속속 오픈하다 보니 직사입 경쟁도 치열하다. 흔하디흔한 명품 브랜드를 거부하는 패션 얼리어답터들에게 점수를 따려면 국내에 한 번도 선을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명품 브랜드 발굴이 관건이기 때문. 이에 백화점 머천다이저(MD), 바이어들은 숍 오픈을 앞두고 수개월씩 외국을 돌며 새로운 브랜드 개발을 위해 ‘원정’을 다녀야 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남성 고객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이템 가운데서는 벨트, 구두 등 잡화와 문구류, 슈트는 기본이 된 지 오래로 패션 액세서리 상품들이 고가의 명품 시계보다는 만만한(?) ‘멋내기’아이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의류, 잡화 편집숍 바람은 백화점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 일대에서도 뜨겁다. 대기업이 오픈했던 종전의 편집숍들에 이어 해외 브랜드들이 국내에 론칭한 편집숍도 등장하고 있는 것. 옷이면 옷, 슈즈면 슈즈 등 좀 더 특별한 나만의 아이템을 원하는 고객들이 증가하면서 문을 연 편집숍들은 해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 빠른 사후관리(AS) 등을 무기로 홍보전에도 한창이다.

한편 남성 전용관의 바람은 유통업계를 넘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데 그루밍, 스파를 비롯해 최근에는 비즈니스 멤버십 클럽까지 등장했다. 남성 고객만 출입할 수 있는 그루밍숍을 비롯해 사우나와 마사지 등을 한 공간에서 받을 수 있는 고품격 스파 등도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객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9월 서울 회현동에 들어선 스테이트 타워 남산 26층의 비즈니스 멤버십 클럽인 ‘더 스테이트 룸’은 대외적인 업무와 네트워킹,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하이클래스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형태로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일러스트·전희성

기획·진행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제공 각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