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중세 이후 전 세계 자산의 식민지화를 통해 부를 키웠고, 종국에는 거대한 유럽연합(EU)을 탄생시켰다. 당시 신대륙 개척의 이론적 배경이 된 적자생존의 논리가 재정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유럽 대륙을 다시 감싸고 있다.

‘밀리어네어(millionaire)’라는 의미는 누구나 알다시피 백만장자라는 뜻인데 어원을 알고 보면 흥미롭다. 유럽 대륙에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투자가 성행하던 1700년대에 프랑스 회사 중에 미시시피 주식회사라는 이름의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북미에 있는 미시시피강 유역 프랑스 식민지의 무역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신대륙 무역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미시시피 주식회사의 주식을 샀고, 이에 힘입어 미시시피의 주식은 1년간 70배에 달하는 주가 상승을 보였다. 주가가 가장 높이 올랐을 때의 가격이 2만 리브르에 달했다.

당시 1000리브르 화폐면 상당히 높은 가치였는데 라틴어로 1000리브르를 뜻하는 말이‘밀레(mille)’다. 밀리어네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는데, 1000리브르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이를 감안하면 2만 리브르는 엄청난 금융 버블이 아닐 수 없는데, 결국 미시시피 주식회사는 버블의 폭락을 불러일으켰고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버블과 버블 붕괴는 프랑스에만 있었던 국지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당시에 중상주의의 기치하에 인도,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의 후추를 비롯, 향료와 중국산 차, 인도산 캘리코 등이 유럽으로 수입되면서 흔히 말하는 동인도 회사들의 짭짤한 돈벌이 수단이 됐다. 그 여파로 영국에서는 서인도 제도와 남아메리카와의 무역이 하나의 화두로 등장했고, 바로 그때 사우스 시 컴퍼니(South Sea Company)라는 회사가 설립됐다. 이 회사는 대동강 물장수처럼 영국 국채를 매입한다는 이유로 유상증자를 했고, 증자를 할 때마다 주식 가격을 올리면서 주가를 조작했다.

당시에는 런던을 중심으로 커피하우스가 크게 성행했는데, 카페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무역회사의 주식을 사는 데 열을 올리면서 많은 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버블의 끝은 언제나 끔찍한 법이다.

당연히 버블 붕괴가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허공에 날리게 됐다. 그 결과 귀족은 평민으로 평민은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우스 시 컴퍼니를 설립한 대주주가 <로빈슨 크루소>를 쓴 다니엘 디포라는 점이다. 당시 양대 베스트셀러는 <로빈슨 크루소>와 조너선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였는데, 두 소설 모두 신대륙에 대한 관심과 상상을 반영한 모험적인 소설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유로존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의 행운

유럽은 중세 이후 이처럼 전 세계의 자산을 식민화하면서 부를 키웠고 종국에는 EU라는 거대한 경제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만든 경제공동체 안에는 맹주 역할을 하는 독일과 프랑스를 위시해 동유럽의 끝인 루마니아와 남유럽의 끝인 그리스, 그리고 동북유럽의 끝인 발트 3국이 있다. 유럽의 거의 대부분 국가라 할 수 있는 27개국이 EU의 회원국이 되면서 그중 대다수의 국가들이 단일 통화인 유로(Euro) 화로 거래를 하게 됐다. 상당 부분의 금융 및 재정 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종의 국가들끼리의 금융 인수·합병(M&A)이 일어났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EU에 가입했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는 점이다. 영국과 스위스 같은 국가들이 그들이다. 영국과 스위스는 자국 화폐인 파운드와 스위스프랑을 계속 쓰면서 현재까지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통화 측면에서는 유로화의 위험으로부터 헤지가 되고, 파운드와 스위스프랑이 안전 화폐로 인식되면서 오히려 가치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영국과 스위스가 노린 점이 아닌가 싶다. 영국은 지난 수백 년간 유럽 국가와 물리적, 심리적 전쟁 및 경쟁을 하면서 어떻게 유럽 대륙과 관계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스위스는 지리적인 여건상 EU에 들어가지 않으면 너무 티가 나는 모양새이기도 하지만 영세중립국이며 전 세계의 다양한 자금이 유입되는 입장이라 통화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지금의 상황에서 유럽의 위기를 이용해 투자하려는 세계의 자금이 전초기지로 착륙을 하고 출격 명령을 기다리는 투자 목적의 전투기와 폭격기의 포스트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양국의 반사이익은 어마어마해 보인다.

반면에 줄곧 EU에 가입하기를 희망하던 국가도 있는데 바로 터키다. 터키는 어떻게 해서라도 EU에 가입하기 위해 온갖 러브콜을 보내고 제스처를 취했음에도 EU의 맹주들은 터키의 가입을 원치 않는 듯했다. 아마도 종교적, 인종적 이유로 보스포루스 해협 건너편에 있는 먼 옛날부터 근동이라 불러왔던 즉,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아시아인인 터키는 끼워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현재 터키를 살리는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터키는 이번 유럽 재정위기의 파편을 상대적으로 적게 맞고 오히려 활발한 경기 상황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현 위기를 거치면서 남유럽과 동유럽의 좋은 기업과 금융기관은 주인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현 위기를 거치면서 남유럽과 동유럽의 좋은 기업과 금융기관은 주인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혹독한 시련에 놓인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들

현재 EU는 그리스의 부채 금액 및 상환 조건 협의로 인해 시끄럽다. 주 채권국은 독일과 프랑스인데 그리스는 500억 유로에 달하는 부채를 앞으로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문제는 그 금액만으로 그리스의 재정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또 다른 문제는 그러한 자금 투입을 받아야 할 국가가 그리스 한 나라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2, 제3의 그리스가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재 유럽중앙은행(ECB)은 신용경색 완화를 위해서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은행들이 ECB로부터 차입 시 제공하는 담보 비율을 낮추어 주거나, 무담보대출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려주기도 하고, 기준이자율을 1.25%에서 1%로 낮추는 노력도 하고 있다. 반면에 다른 은행 규제기관인 유럽은행감독청(European Banking Authority)은 2012년 6월까지 1140억 유로 이상의 신규 자본을 확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최근 EU 정상회의에서는 유럽 은행들의 의무자기자본비율(Tier 1 Capital Ratio)을 9%로 합의함에 따라서 유럽의 은행들은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데 모건스탠리의 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18개월간 3조 달러의 자산을 처분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압박으로 결국 남유럽과 동유럽의 부실한 금융기관은 끝없는 추락과 구조조정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그런 지역의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유로존에서의 우량 기업들은 오히려 회사채 발행금리가 낮아지고 있으며 발행도 용이해 막대한 회사채 발행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있다. 부실화된 금융기관과 기업은 자금 조달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연쇄 부도와 동반 부실이 뻔한 상황에서 우량 금융기관과 기업은 오히려 금리가 감소하고 자금 조달이 더욱 용이해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현상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우량 금융기관과 기업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전통 유럽 지역에 몰려 있고 부실한 금융기관과 기업은 동유럽과 남유럽에 몰려 있다. 재정위기로 인해 자금 수혈을 받는 국가와 정부들도 남유럽과 동유럽에 몰려 있고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국가들은 결국 전통 유럽 국가들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5년 또는 10년 후의 모습이 어떨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동유럽과 남유럽의 정부 및 민간은 결국 지금 지원받은 자금을 갚아나가는 혹독한 시련을 겪을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좋은 기업과 금융기관은 M&A를 통해 주인이 바뀔 것이다. 국가가 보유한 국영기업도 주인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미 그리스는 국영 이동통신사인 OTE(Hellenic Telecommunications Organization)의 지분을 매각한다고 발표하고 상반기 내에 상당한 국영기업을 민영화할 예정이다.

1500년대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차근차근 정복하고, 1700년대에는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정복해 나갔듯이 이제는 전통 유럽의 종주국들이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을 금융적으로, 재정적으로 통합해 나가는 모양새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일러스트·추덕영
이동훈 삼정투자자문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