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3년 만에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제2의 리먼 사태설’이, 우리 경제 내부에서는 ‘한국 경제 위기설’이 다시 나돌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시각대로 세계와 한국 경제가 위기에 다시 빠진다면 장기간 침체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모든 경제주체들이 위기를 당할 때에는 세 단계를 거치는 것이 정형적인 경로다. 위기 초기에 돈이 부족한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이 단계가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되지 못할 경우 시스템 위기로 악화된다. 이 단계에 진입해 실물경제에 돈을 제때 공급해 주지 못할 경우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모든 위기는 이 같은 위기 극복 3단계 순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은 위기 극복 대책으로 ‘브라운식 모델’을 추진해 왔다. 그중 하나가 각국이 뉴딜 정책을 표방하면서 이번 위기 과정 중에 뉴딜 성격의 재정 지출 규모는 세계 국민소득의 12%를 상회했다. 통화정책 면에서도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두 단계 이상 내리는 ‘빅 스텝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제2의 리먼 사태설’과 ‘한국 경제 위기설’…그 실체와 가시화 가능성은?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위기 극복 3단계설로 볼 때 올 7월까지 ‘7부 능선’이 지난 것으로 평가돼 왔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 극복 과제는 절대 규모로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다. 미국의 경우 부실 자산을 처리하는 시스템 복원 과제는 투자은행(IB), 시중은행, 대기업 등의 부실 자산을 털어낸 데 이어 위기 재발을 위해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마련했다.

한편에서 부실 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의 중개 기능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경기부양책을 병행해 나감에 따라 올 7월까지 경기가 빨리 회복됐다. 영국의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위기 이전의 소득 수준과 성장률과 비교해 위기 극복 정도를 평가한 세 가지 시나리오, 즉 완전 회복(full recovery), 영구 손실(permanent loss), 손실 확대(widening loss) 중에서 미국 경제는 올 2분기까지 두 번째 시나리오에 부합됐다고 진단했다.

이런 평가를 토대로 위기 극복 과정에서 최악의 상황인 실물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되돌림 효과’로 위기가 다시 발생하는 3년 주기설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돼 왔다.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는 ‘3년 주기설’이 가시화되느냐 여부는 비상대책의 후유증인 ‘애프터 크라이시스’ 문제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 여부에 좌우된다.

대부분 위기는 발생 3년 차에 찾아오는 ‘애프터 크라이시스’에 대한 대응과 극복 정도에 따라 위기 국면의 지속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관행이다. 1930년대처럼 이 문제를 과민하게 대응해 경기를 망치는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르거나, 너무 과소하게 평가해 대책 마련에 소홀할 경우 다시 위기를 겪게 된다는 것이 ‘위기 3년 주기설’의 골자다.

올 들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애프터 크라이시스’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이미 선진국들은 재정위기와 국가 채무가 지난해부터 재정위기 형태로 가시화됐다. 선진국에 비해 위기 충격이 덜했던 신흥국들은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과다 유동성에 따른 후유증 처리가 최대 현안으로 부각됐다.

‘애프터 크라이시스’ 문제가 심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낙관해 성급하게 출구 전략을 추진하면 모처럼 어렵게 돋은 싹(green shoots)이 다시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가 회복되는 데에는 불안 요인이 해소되거나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 국면에 진입한 후 출구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부분 신흥국들은 지난해 초부터 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상해 왔다. 인도, 말레이시아는 2010년 초부터 브라질, 칠레, 대만, 태국 등은 같은 해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해 오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부터 물가를 잡기 위해 모든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등 비교적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해 왔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위기가 지속되는 속에서도 물가를 잡기 위해 올 7월까지도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위기가 지속되는 속에서도 물가를 잡기 위해 올 7월까지도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신흥국뿐만 아니라 위기 극복 정도가 느리고 경기 회복세가 신흥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선진국들도 올 상반기에는 금리 인상 등 출구 전략을 추진하거나 모색했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위기가 지속되는 속에서도 물가를 잡기 위해 올 7월까지도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결국 이번 금융위기가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출구 전략을 추진한 것이 올 8월 이후 유럽 재정위기 등에 따라 세계 경제와 글로벌 증시가 다시 침체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은 가장 큰 요인이다. 이 같은 정책 실패를 놓고 ‘2011년판 에클스의 실수’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1990년대 이후 세계 경기는 경기 사이클이 사라졌다든가, 사이클이 있더라도 그 폭은 작아졌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장기 호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 과정에서는 그 어느 쪽도 옳은 결론이 아님이 단적으로 입증됐다. 오히려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한층 진전된 글로벌 경제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졌고 심리적 요인과 중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과거의 경기순환은 주로 인플레와 관련돼 발생했다. 1990년대 이후의 경기순환은 주로 자산 가격의 버블과 그로 인한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으나 이런 경기 침체도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공공부채 위기(199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1997), 일본의 장기 침체(1990년대) 등 국지적으로 발생했을 뿐 이번 금융위기처럼 전 세계적인 침체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이번 경기 침체가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는 종전과 같으나 세계적으로 동시 침체가 진행됐다는 점, 금융 불안에서 실물경제로의 전이 속도가 종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는 점, 실물경제 하강 폭이 대공황 시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는 점이 다르다. 그 결과 종전의 경기순환 패턴을 기초로 한 전망이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측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예측기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제2의 리먼 사태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외국 자금이 이탈되는것을 계기로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제2의 리먼 사태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외국 자금이 이탈되는것을 계기로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 침체와 회복의 기로에 서있는 세계 경기와 글로벌 증시가 올 11월 이후 어느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인지는 이에 대한 재평가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유럽 재정위기가 리먼 사태로 악화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전망의 정확성을 위해 무엇을 유념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때다. 이런 점검을 토대로 ‘금융의 네트워킹’과 ‘심리적 요인’ 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을 경우 세계 경기와 글로벌 증시는 대(大) 안정기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제2의 리먼 사태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외국 자금이 이탈되는 것을 계기로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극단적인 비관론자들은 10월 이후 코스피 지수가 1500 밑으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1600원 이상 급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요 경제지표도 올 하반기 들어서는 정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 등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모리스 골드스타인(Morris Goldstein)의 진단지표가 자주 활용된다. 이 기준대로라면 단기 투기성 자금의 이탈 여부는 자산 인플레 정도, 유입된 외국 자금의 건전도 등으로 평가된다. 이 중 유입된 외국 자금의 건전도는 순직접투자와 경상수지 합계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중장기 위기 진단지표는 대상국의 해외 자금 조달 능력, 국내 저축 능력으로 평가한다. 특히 단기 위기 진단지표가 악화될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대상국의 해외 자금 조달 능력에 곧바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민간부문의 저축률과 재정수지로 표현되는 국내 저축 능력이 더 중시된다.

이 지표를 활용해 우리의 위기 가능성을 진단해 본다면 대부분 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와 3년 전 리먼 사태 때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위기 가능성이 낮게 나온다 하더라도 최근처럼 외국 자금의 엑소더스(이탈) 현상이 나타나면 위기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외환위기 경험국들이 겪은 고질적인 ‘낙인 효과(stigma effect)’ 중 하나다.

외국 자금의 엑소더스에 대응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사전적 대응 방안으로 외국 자금 유·출입 규제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 역량 강화 방안으로 외환보유액 확충, 외환보유액 활용 능력 제고 등이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 이후 추진되는 새로운 논의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대응 방안이라 볼 수 있다.

각각의 대응 방안에 대한 실효성을 검토해 보면 외국 자금 유·출입 규제는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으나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방안은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외국 자금이 레버리지 투자 기법을 즐기는 헤지펀드 등이 주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로 증거금 부족 현상이 발생하면 자본 회수국으로 선택된 신흥국에서 한꺼번에 자금이 이탈되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와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외국 자금 이탈이 전형적인 예다.

위기설을 근본적으로 불식시켜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갈수록 지연되는 시스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을 얼마나 쌓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안은 지표접근법이다. 이 방안도 보유 동기에 따라 기도티와 캡티윤 모델, 국제통화기금(IMF) 방식으로 구분된다.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액을 따져보면 IMF 방식에 의해서는 1050억 달러, 기도티 모델로는 2990억 달러, 캡티윤 모델로는 3810억 달러 내외로 나온다.

적정 외환보유액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자본 유·출입 환경, 외채 구조 등에 따라 달리 선택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자유화가 진전되고 국제 간 자금 흐름이 각종 캐리 자금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신흥국들은 기도티와 캡티윤 모델의 중간선에서 외환보유액을 쌓으려는 노력이 증대되고 있다. 우리 적정 외환보유액은 3300억 달러 내외로 추정된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흑자로 증가세가 지속돼 왔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을 지속적으로 축적한 결과 지금은 3000억 달러가 넘는다.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으나 외환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 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적정 수준에 와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각종 판단지표로 이처럼 위기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우리는 왜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것일까. 특정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세 단계를 거친다. 우선 외화 등에 금이 가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처럼 담보 관행이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시스템 위기로 비화된다. 돈을 공급해 주는 데 시스템 상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는 것이 위기 경험국의 전형적인 경로다.

우리는 외화유동성을 비교적 빨리 확보한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재평가, 잦은 정책 변경,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 정경유착에 따른 각종 부정부패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다.

문제는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이 심화돼 왔다는 점이다. 경제 여건이 뒤따르지 않는 고평가 요인이 유럽 재정위기와 같은 사태를 계기로 외자 이탈로 연결될 경우 그동안 극복했다고 보는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진다. 이것이 ‘위기 재귀설(crisis reflexibility)’의 실체다.

더욱이 이런 위기설이 우리 내부에서 먼저 나온다는 점이다. 리먼 사태 당시에도 우리 내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 나왔던 위기설이 오히려 국제 금융시장에서 화두가 될 정도였다. 근거 없는 위기설에 따라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제를 건실하게 만드는 데 애를 쓴 우리 국민에게 돌아간다.

최근 위기설만 해도 그렇다. 노무라(野村) 증권,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한국이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발표했다. 세계 3대 평가기관 중 하나인 미국의 무디스(Moody’s)도 한국의 재정건전도가 매우 건실한 것으로 평가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우리 경제를 최소한 있는 그대로 믿는 긍정적인 심리다. 부존자원과 축적된 자본이 없이 우리 경제가 압축 성장을 한 것은 우리 국민의 ‘하면 된다’라는 정신 덕분이다.

최근 나돌고 있는 위기설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와 증시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를 근절하고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되살려야 한다. 정책당국도 최근처럼 대외 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우리 사회 내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위기설을 근본적으로 불식시켜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갈수록 지연되는 시스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