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ia Interview - 사진가 장성용

훌쩍 떠난 여행에서 1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사진가 장성용 씨는 ‘자전거’라는 매개체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굳이 자전거를 찍으러 여행을 갔던 것도 아닌데 그가 찍은 사진 곳곳엔 자전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길다면 긴 1년, 짧다면 짧은 1년이지만 한국 생활을 잠시 정리하고 떠난 세계 속에서 만난 렌즈 속 자전거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High-end Bicycles] 자전거와 함께한 낭만적‘일탈’
직업을 가진 사회인이 1년이란 시간을 일 더미에서 떠나 있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계획하고 실천한 사진가 장성용 씨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추억 속의 자전거들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 왔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동네 한 바퀴 정도가 전부였던 그였지만 여행 경비도 줄일 겸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도 남길 생각으로 나라마다 자전거를 빌려 돌아다녔다.

[High-end Bicycles] 자전거와 함께한 낭만적‘일탈’
사진 속 피사체에 부여된 ‘의미’

그의 포트폴리오 한쪽에 눈길 닿는 곳곳마다 양복을 입은 신사도, 곱슬머리의 아이들도 모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는 파리의 풍경이 있었다. 그에게 자전거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고 한다.

첫 도착지인 파리에서 이리저리 자유롭게 다니며 맘에 드는 풍경을 파파라치 사진 찍듯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그 많은 풍경 사진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니 모든 사진마다 자전거가 걸려 있음을 발견했다. 비단 자전거의 완벽한 프레임뿐만 아니라 자전거 보행표지판이나 자전거 주차장까지도 말이다. 사진 속 풍경이 우연치고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후론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전거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나라들을 다녀오셨나요.
[High-end Bicycles] 자전거와 함께한 낭만적‘일탈’
“여행 전, 아일랜드에 집중적으로 머물며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여행 루트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획을 다시 세우고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암스텔담~아일랜드 더블린~스페인 바르셀로나~벨기에 브뤼셀·브뤼헤~이탈리아 밀라노·친퀘테레~영국 런던·벨파스트~캐나다 토론토·퀘백~ 미국 뉴욕·시카고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왔어요.”

혼자서 여행을 계획하셨나요.

“아내와 함께 했죠. 제가 남들보다 조금 자유로운 직업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1년이란 시간을 무턱대고 떠나 있기란 어려운 일이죠. 제 인생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결혼한 후 아내와 함께 해외든 국내든 1년 정도 여행하기였어요. 다행히 그런 저를 잘 이해해준 아내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흔쾌히 동참해준 최고로 고마운 친구이자 반려자예요.”

자전거로 맺어진 인연, 나의 보물

언제부터 자전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사실 처음부터 자전거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여행 중 우연히 더블린의 펍에서 만난 아일랜드 친구와 ‘요즘 대중교통 이용보다 자전거가 더 많이 보여’라며 시작된 자전거에 관한 대화가 약 3시간 동안 계속된 적이 있어요. 남들이 보기엔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해 보였겠지만 사실은 손짓, 발짓을 해가며 자전거로 인해 얼마나 편리하고 건강한 세상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죠. 그게 계기가 됐고 그 친구는 제가 초대해서 한국에 자전거를 갖고 오기도 했어요.”

카메라에 담은 자전거 중 유난히 애착이 가는 컷이 있다면요.

“1년 동안 찍은 자전거 사진의 컷 수가 약 1만여 컷 정도 됩니다. 그 많은 사진 중에서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사진은 캐나다 퀘백에서 만난 프랑스의 토마스 씨 가족이에요.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만 타며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는 그 가족은 서로 도우며 같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직접 느끼게 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고 했어요. 자전거에 풍선을 매달고 다니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6개월 정도에 걸쳐 여행을 하던 그들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죠.”

[High-end Bicycles] 자전거와 함께한 낭만적‘일탈’
타국에서 특이한 풍경은 없었나요.

“여러 나라를 다니다가 신기했던 건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자전거 택시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경찰들이 있다는 거였어요. ‘빨리, 빨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저에겐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이었죠. 여유롭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했던 저에게 ‘빠르게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되고 사람들을 배려하는 세심함이 생긴다’라는 뜻밖의 대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지나가는 자전거마다 눈으로 쫓고 있었던 장성용 씨. 그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유난히 자전거가 눈에 들어오게 돼 출장을 가게 되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자전거를 찾아 촬영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화려하지도 잘 다듬어 있지도 않은,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골에서 아이부터 머리 희끗한 노인들의 일상 속 자전거를 찾아 카메라 렌즈 속에 담아 오고 싶다고 한다.

“자전거 사진들이 제 렌즈 속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느낌을 뿜어내는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들이 어떤 존재로 그곳에 있었는지요.”

글 양정원 기자 neir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자전거 사진 장성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