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상사가 다가와 “잠깐 낮잠 좀 자고 오게나” 하는 회사가 있다? 없다? 디자인 가구회사 비트라(VITRA) 스위스 본사에선 가능하다. 이미 20년 전에 시작한 시티즌 오피스(citizen office) 프로젝트는 직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돕고 일과 삶의 구분이 없는 사무실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한다.

사무실 의자와 책상 디자인이 이달 영업 매출 신장에 기여한다니, 사장님께 읍소해볼 만하지 않은가. 디자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첫 번째 예를 비트라의 오피스 혁명에서 찾아본다.
집을 마구 쌓아 올린 듯한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비트라 하우스
집을 마구 쌓아 올린 듯한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비트라 하우스
몇 해 전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냅스(Metronaps)가 카네기멜론대와 공동 연구 끝에 ‘메트로냅스’라는 낮잠 캡슐을 제작해 맨해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24층에 ‘캡슐’ 방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당당하게 20분간 휴식을 취하고 돌아와 업무에 집중한다. 업무 시간 중 낮잠을 당당하게 사용하고 이를 인정하는 문화는 국내에서는 낯설기만 하다.

오피스 사무 가구를 주로 다루는 디자인 가구회사 비트라에서 최근 낮잠용 침대인 데이베드(daybed)를 신제품으로 내놓았다. 벨기에 대표 디자이너인 마틴 반 세브렌(Maarten Van Severen)은 비트라만을 위해 디자인한 MVS 셰이즈로 안락하고 편안한 데이베드를 만들었다.
잠깐의 낮잠과 휴식을 통해 업무 능률을 증가시킬 수 있는 오피스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MVS 셰이즈의 모습
잠깐의 낮잠과 휴식을 통해 업무 능률을 증가시킬 수 있는 오피스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MVS 셰이즈의 모습
부드럽고 탄력 있는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들어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이 데이베드는 ‘잠을 자다가 손이 자연스레 떨어지면 깬다’라는 아이디어를 더해 잠깐이지만 완벽한 낮잠으로 이끈다. 이 데이베드의 실물을 보면 생각보다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함은 정작 몸을 뉘었을 때 완벽한 쉼을 제공한다. 롤프 펠바움(Rolf Fehlbaum) 비트라 회장은 세브렌을 두고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에센셜리스트(essentialist)다”라고 했을 정도.
[Design Trends] ‘낮잠’ 권하는 사무실에서 일하라!…VITRA의 오피스 혁명
데이베드가 놓인 사무실 한쪽 공간이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나만의 침실에 될 수 있는 곳. 업무 공간이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뿐이리’로 치환되는 곳. 일터인 사무실이 집처럼 편할 수 있다는 인식의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비트라의 디자인 파워가 아닐까. 가구공장 및 생산기지가 모여 있는 독일의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를 실제 집 모양의 집 더미를 마구 쌓아 디자인한 것과도 그 속뜻이 일맥상통해 보인다.
지난달 방한한 패트릭(Patrick) 비트라 부사장은 유기적인 오피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방한한 패트릭(Patrick) 비트라 부사장은 유기적인 오피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속발전 가능’한 사무실을 향해, Citizen Office

옆 직원 책상과 공간을 분할해주는 파티션이 알록달록 캔디 컬러에 동그란 펜던트 조명까지 달려있다. 동그란 구 모양의 조명으로 장식하고 푹신한 소파가 놓인 휴게실은 디자인에 힘 준 유럽 부티크 호텔 로비 못지않다.

비트라의 시티즌 오피스 프로젝트는 1991년, 자그마치 20년 전에 시작됐다. 일차적인 사무실 환경에서 탈피해 생동감 넘치고 개개인 간의 상호 소통이 원활하며 일과 삶의 구분이 없는 사무실 환경 조성에 있다.
비트라 오피스는 실제 직원들에게 비트라만의 디자인 가구와 사무실을 몸소 겪고 체험하며 오랜 시간 스스로 진화를 거듭했다.
비트라 오피스는 실제 직원들에게 비트라만의 디자인 가구와 사무실을 몸소 겪고 체험하며 오랜 시간 스스로 진화를 거듭했다.
실제 사무환경 안에서 직원들이 직접 사용하고 경험하며,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연구를 거치며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단순히 디자인과 기능만 뛰어난 사무실 공간을 만드는 것에서 진화해 직원 간의 의사소통과 네트워크, 그리고 각기 다른 시간대에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직원들의 관점으로 오피스 환경을 바라보는 것을 기초로 한다.
[Design Trends] ‘낮잠’ 권하는 사무실에서 일하라!…VITRA의 오피스 혁명
비트라의 시티즌 오피스 개념은 바로 네트 앤 네스트(Net ‘n’Nest)다. 열린 오피스 공간 안에서의 자유스러운 네트워킹 즉 ‘Netting’과 개인의 업무에 대한 높은 집중과 프라이버시를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즉 ‘Nesting’이 합쳐질 때, 서로간의 성장을 촉진시켜 준다는 것에 가치를 둔다. 업무 성격에 따라 맞춤화된 장소에서 진행되는 업무는 직원들의 효율성과 능률성을 높이는 것이다.
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위치한 비트라 캠퍼스 사무실 모습. 회사 구성원 간의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사무실, 가구 디자인이 비트라 오피스 혁명의 키워드다.
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위치한 비트라 캠퍼스 사무실 모습. 회사 구성원 간의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사무실, 가구 디자인이 비트라 오피스 혁명의 키워드다.
사무실은 단지 주어진 일만 수행하는 곳이 아닌 창의적인 생각을 하며, 꿈을 꾸고, 대화하고, 논의하고, 협력하며 탐구하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트라는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오피스 문화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글 이지혜 기자 wisdo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