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주요 예측기관들의 전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종전과 달리 ‘좀비 국면’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좀비(zombie)’란 본래 조직이론에서 나온 용어다. 근로자가 직장에 출근하지만 기업의 목적인 이윤 창출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3년차를 맞아 예측기관들의 우려대로 좀비 국면이 나타난다면 큰 문제다. 남아 있는 위기극복 과제와 그동안 비상대책 추진에 따른 부작용인 ‘애프터 크라이시스(위기 이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 수용층이 정책신호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Market Insight] 세계 경제의 최대 敵…  ‘좀비 국면’ 현실화
올 하반기 미국 경제는 ‘좀비 소비자’가 가장 큰 문제

스티븐 로치(Stephen Roach) 모건스탠리 회장은 미국 경제의 최대 적(敵)으로 ‘좀비 소비자’를 꼽았다. 총수요항목별 국민소득(GDP) 기여도에서 소비가 7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 구조상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소비자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이번 금융위기 이전까지 소비지향 생활패턴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미국 소비자들이 좀비 현상을 보이는 것은 ‘디레버리지(deleverage)’ 행위 때문이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부채를 축소하고 저축을 늘리고 있다.

헤지펀드 업체인 시브리즈 파트너스(Seabreeze Partners)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는 미국 국민의 디레버리지 행위에 대해 스크루(screw), 즉 ‘쥐어짠다’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미국 경제가 앞으로 일본 경제처럼 ‘5대 함정’에 빠져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좀비 소비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모든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정책 함정(policy trap)’이다. 경기부양 방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화정책도‘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책 함정과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경쟁력 개선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structure trap)’에 빠져 있는 점과 같은 맥락이다.

어떤 나라든 이런 상황에 놓이면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이 증대돼 예측기관들은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게 된다.

최근 미국 경제를 보면 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가 5대 함정에 빠지는 초기 단계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경기가 올 4월 이후 주춤거리면서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입증해 주듯 오바마 정부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대한 믿음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기준금리는 이미 ‘제로(0)’ 수준으로 떨어졌고,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려 2차 양적완화(QE2) 정책 종료 이후 3차·4차 양적완화(QE3·4)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경기 회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대형 금융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 성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여전히 잠재부실을 안고 있는 데다 다른 금융사들은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 이미 연방정부의 부채는 법정한도에 도달했고 미국 국민의 빚도 위험수위에 달했다.

이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미래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질 것이다. 오바마 정부와 FRB가 얼마나 빨리 이런 징후를 차단해 경기와 구조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당분간 투자자들은 버냉키 의장과 미국 경제의 최근 변화를 예의 주시해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최근 미국 경제를 보면 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가 5대 함정에 빠지는 초기 단계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 미국 경제를 보면 1990년대 초반 일본 경제가 5대 함정에 빠지는 초기 단계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은 ‘좀비 경제’에 대한 우려와 ‘잃어버린 30년’ 가능성 대두

국민지지도에 따라 경제를 분류하는 시각도 많다. 집권당에 대한 국민지지도가 60%를 넘으면 ‘탄력 경제’, 30% 밑으로 떨어질 때에는 ‘좀비 경제’라고 부른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의 현 집권당인 간 나오토(菅直人)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20% 밑으로 떨어져 일본 역사상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경제가 좀비 국면에 처한 지는 오래됐다. 1990년대 이후 거듭된 정책 실패가 가장 큰 요인으로 ‘제로’ 금리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채무 등이 장기간 좀비 국면을 대변해 주는 후유증이자 상징물이다. 경제 구조적으로 5대 함정에 장기간 빠져있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일본 경제가 재차 우려되고 있는 좀비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내수 부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970년대 이후 0.5∼0.8%포인트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내수기여도는 1970년대 3.8%포인트, 80년대 4%포인트에서 1991∼2008년 중 0.6%포인트로 급락했다. 그 결과 GDP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89.6%에서 2008년에는 82.5%로 크게 하락했다.

최근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내수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큰 편이어서 내수 확대 없이 좀비 국면에서 탈피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내수 부진이 고용과 임금 불안정성 증대, 인구고령화 진전 등 당장 해결하기 곤란한 구조적 요인들에 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재정 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수요를 적극적으로 대체해 촉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간 나오토 내각의 해산 이후 들어설 새로운 정부는 수출 등을 통해 일본 경제의 부진을 억제하는 한편 내수기반 회복을 위한 다양한 구조개선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추진 중인 비정규직 제도의 개선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한편 고령화 진전 등으로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정년연장 등도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비스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생산성을 제고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경우 정보기술(IT)의 서비스 산업 활용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특히 점차 늘어나는 고령층의 소비수요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발굴해 고령층의 저축을 소비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재정부문에 있어서는 불요불급한 지출삭감 등을 통해 재정수지 적자를 줄여나가 건전화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유럽 통합에서 배제하는 충격요법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유럽 통합에서 배제하는 충격요법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
그리스 ‘좀비 위기국’으로 전락… 하반기에는 ‘충격요법’이 동원될 듯

모든 위기국들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면 불가피하게 외부 수혈을 받게 된다. 바로 구제금융이다. 구제금융을 받은 대가로 위기극복 의지를 국제적으로 보여주면 회생이 가능하다. 1990년대 후반 전 국민이 나섰던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던 한국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그리스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미 ‘좀비 위기국’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국민은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기보다는 같은 상황에 처해 금 모으기를 했던 한국 국민과 달리 오히려 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그리스가 디폴트(국가채무 불이행)에 빠졌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경제현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잘 통용된다. 유럽 국가처럼 무늬만 회원국(bad apples)과 건전한 회원국(good apples)을 ‘통합’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건전한 회원국들도 썩게 된다.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현재 유로랜드 회원국이라 하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늬만 회원국’들이 많아지고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 무늬만 회원국들을 끌어가는 과정에서 이제는 ‘건전한 회원국’들까지 전염되는 임계상황을 맞고 있다.

그런 만큼 그리스가 더 이상 고통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다른 회원국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유럽통합에서 탈락시키는 충격요법이다. 조지 소로스 등이 제시하는 투 트랙(two track), 즉 건전한 회원국들은 계속 통합단계를 밟아가고 차제에 ‘무늬만 회원국’들은 탈락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충격요법을 동원하기 전 과도기에 그리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유럽 사태 해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비엔나 이니셔티브’를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비엔나 이니셔티브 구상’을 그리스 사태에 적용해보면 독일, 프랑스 등 경제 핵심국의 민간 금융사들은 그리스 채권상환을 가능한 자제하고, 채권만기 재조정과 경우에 따라서는 채권상각 시 일정한 수준의 손실을 감수하는 방안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우리 경제 내에서도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 현 정부의 당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재계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정부가 안 보인다’라는 비판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하든 간에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 수용층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쏟아 내기보다는 정책신호에 대한 민감도부터 끌어 올리는 것이 우선 과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