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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수사로 비화된 ELW 시장의 불공정 논란은 금융시장의 효율성과 투명성, 두 가지 가치의 충돌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파생상품 시장의 최대 이슈는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의 불공정 논란이었다. 지난 3월 검찰이 증권사에 대해 전격 수사에 나서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ELW 불공정 논란은 단순하지 않다. 업계는 글로벌 속도 환경을 감안할 때, 증권사의 자율적인 서비스까지 불법으로 매도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스캘퍼의 수익이 일반 투자자 몫에서 나왔는지도 입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한 전문가는 “이번 ELW 논란은 금융시장의 효율성과 형평성이란 가치가 부딪힌 상징적 사례”라며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향후 금융시장의 발전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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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 증권사 사장들 ‘무더기 기소’

여의도 증권가를 겨눈 검찰 수사의 칼날은 유례없이 날카로웠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12개 증권사 전·현직 대표이사를 포함해 업계 관계자 30명을 기소하고 직원 2명은 구속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는 “증권사 대표들이 ELW에 투자하는 스캘퍼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전산시스템 설치와 관련해 결재를 하는 등 사실상 불법 행위를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스캘퍼 5개 조직 18명을 합하면 총 48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증권사는 스캘퍼들에게 방화벽 등 보안장치를 거치지 않게 하거나 스캘퍼들의 알고리즘 매매 프로그램이 탑재된 컴퓨터를 증권사 내부 전산망에 직접 연결시키는 방법 등으로 주문 속도를 일반 투자자보다 3~8배 빠르게 해줬다.

스캘퍼들은 증권사 유동성 공급자(LP)들의 호가 제시 시스템을 꿰고 있다가 한 발 일찍 호가를 가로채는 방식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증권사들은 스캘퍼에게 외부 사무실을 내주고 월 1000만 원 수준의 임대료를 제공하거나 컴퓨터와 사무실 집기 비용까지 부담하기도 했다.

증권사와 스캘퍼의 독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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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특별 서비스’ 배경은 간단하다. 하루에 몇십억에서 몇백억 원의 자금을 굴리는 ‘큰손’ 몇 명을 고객으로 유치하면 막대한 수수료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스캘퍼를 ‘바람잡이’로 쓴 경우도 있었다.

자신들이 발행한 ELW 종목에 대해 스캘퍼가 거래를 일으켜주면 일정한 보답을 하는 체계다. 유동성에 민감한 개미투자자들은 거래량이 많은 종목에 우선 접근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증권사가 벌어들인 ELW 수수료는 711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증권사의 속도 서비스를 무기로 스캘퍼들도 10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봤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4143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같은 모순에도 ELW 시장이 세계 1위 홍콩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ELW는 특정 주식이나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옵션’과 비슷한 구조이지만 증시에 상장된 점이 다르다.

옵션 거래에 1000만 원이 넘는 증거금이 필요한 반면 ELW는 1000만 원 이하로도 투자가 가능하다(8월부터 1500만 원의 기본예탁금 부과 예정). 소액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보니 개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ELW 거래의 99%가 개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정한 수단’인가 ‘자율적 서비스’인가

검찰은 기소된 증권사와 스캘퍼에 대해 자본시장법 178조 1항 위반(사기적 부정 거래) 혐의를 걸고 있다. ELW 관련 불공정 행위에 대해 최초로 자본시장법을 적용한 사례다.

자본시장법 178조 1항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와 관련해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 중요 사항에 관해 거짓을 기록하거나 고의로 누락해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행위, 거래를 유인할 목적으로 거짓 시세를 이용하는 행위를 처벌토록 하고 있다. 검찰은 증권사가 스캘퍼에게 제공한 전용회선, 가원장 체크 등 직접접속(DMA) 서비스를 ‘부정한 수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업계와 전문가 일각의 주장은 다르다. 법무법인 화우가 작성한 ‘ELW 검찰 기소에 대한 검토의견(금융투자협회 의뢰)’은 검찰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우선 ‘부정한 수단’에 대한 해석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사의 주문속도 차별은 국제적 관행인 만큼 사회통념상 부정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미국, 유럽 등 많은 국가에서 DMA를 허용하고 있으며 해당 금융당국이나 사법당국도 문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금융당국이 내놓은 DMA 관련 가이드라인은 업계의 관행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기계와 시스템에 의존하는 알고리즘 거래가 세계 금융 질서를 재편 중인 상황에서 DMA 서비스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스캘퍼의 수익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쟁점이다. 검찰은 스캘퍼의 매매로 일반 투자자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화우 등은 “스캘퍼의 전략은 LP의 호가 알고리즘에 대한 사전적 예측 등 독자적 투자기법에서 나왔을 뿐, 개인투자자의 손실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맞선다.

한 전문가는 “국내 파생상품 시장이 개인의 투자 열풍에 기반해 급성장하다 보니 ‘개인투자자 보호’라는 가치에 스스로 속박되는 모순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금융당국은 최근 1500만 원의 기본예탁금을 신설해 개인투자자들의 무분별한 파생상품 시장 진입을 막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인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소액으로 파생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번 조치로 ELW 시장의 플레이어는 스캘퍼와 LP 둘만 남게 될 것”이라며 “소액 투자자에게 파생상품 투자와 헤지(위험회피) 기회를 제공하는 ELW의 취지에는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시장 관리와 오락가락하는 정책 속에 투자자만 골탕을 먹는 셈이다.

ELW 호가 구조도 문제

이 가운데 ELW 시장의 또 다른 모순들도 드러나고 있다. 이번 기소에 걸리지 않은 LP들의 횡포가 그것이다. LP들은 기초자산 가격 변동에 맞춰 ELW 종목의 호가를 수시로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투자자들은 주로 LP로부터 종목을 사고 되팔기 때문에 LP 호가가 사실상 수익을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ELW 시장 구조상 LP가 호가를 독점한다는 점이다. 이점을 악용하는 ‘나쁜 LP’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LP가 스프레드(매수-매도 호가 간격)를 과도하게 벌리거나 호가 제시에 뜸을 들이면 투자자가 못 버티고 싸게 물량을 내놓게 된다.

처음부터 ELW 가격을 왜곡하거나 고마진을 붙이기도 한다. 한국거래소(KRX)가 이들을 규제하기 위해 분기별 LP 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력이 없다는 평가다. 우수 LP를 뜻하는 A등급 증권사는 꾸준히 감소해 지난 1분기 두 곳에 그쳤다. F만 피하면 별다른 제재가 없다 보니 C 정도만 받고 ‘수익 관리’를 하는 증권사가 적지 않다.

시장 감시를 책임진 유관기관들도 매매가 활발할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라 개선이 쉽지 않다. ELW 한 종목 상장 시 210만 원 정도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를 KRX가 110만 원, 금융감독원과 예탁결제원이 각각 50만 원 정도를 가져간다.

김유미 한국경제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