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 casa es tu casa!’

서울에 열 번째로 문을 여는 스페인 음식 전문 레스토랑‘미 카사(Mi Casa)’에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다국적군’이 기다리고 있다. 사장부터 직원, 주방 식구들까지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오가는 언어도 네 가지는 기본이다.

하지만 이들에겐 제5의 언어가 있으니 바로 ‘행복’이다. 이들이 스페인에서 들여온 건 비단 음식뿐이 아니다. ‘놀기 위해 일한다’는 스페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열정, 그 역시 원형 그대로다.
스패니시 레스토랑 ‘미 카사’ 가족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알베르토 프레텔, 카를로스 셰프, 마르크 조 벤델 사장, 마이클 리, 순천 벤델, 티나 수 벤델
스패니시 레스토랑 ‘미 카사’ 가족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알베르토 프레텔, 카를로스 셰프, 마르크 조 벤델 사장, 마이클 리, 순천 벤델, 티나 수 벤델
청담동에 자리한 ‘미 카사’를 찾은 날은 여름 장맛비가 위세를 있는 대로 부리던 날이었다. 굵은 빗줄기에 젖은 생쥐마냥 풀이 죽은 모양새로 민망함을 감추며 미 카사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소문으로만 듣던 ‘다국적군’이 한꺼번에 기자를 맞이했다.

유창하거나 어눌한 한국말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인사에 기자 역시 우리말과 영어, 어설픈 스페인어로 두루두루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나름 얼굴로 국적을 식별하며 예의를 갖췄던 셈이다).

미 카사의 외관 포인트 컬러가 옐로라면, 실내는 레드와 오렌지를 매치한 테이블 컬러, 흔한 마룻바닥을 대신한 스페인산 와인 빛 타일 바닥 등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골치 아픈 현실을 떠나 스페인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공간 이동의 즐거운 착각(?)은 잠시, 이제 대면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 탐구’를 시작할 차례. 그런데 주고받은 명함이 다섯 장이다. 과연 인터뷰가 끝나기 전에 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외울 수 있을까. 앉은 순서대로 명함 다섯 장을 취재 수첩 앞에 나란히 놓고 일단 물 한 모금부터 마셨다.

다국적군, 서울에서 뭉치다
[Living in Seoul] 스페인 음식·문화 전도사 ‘미 카사’ 패밀리
일단 사장님부터 탐구에 들어간다. 20대 후반의 젊은 사장인 마르크 조 벤델(Marc Cho Wendel)은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내고, 청소년기에 스위스로 건너가 공부한 실력파.

다양한 문화권에서의 경험과 함께 한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까지 두루 섭렵했다. 30년 가까이 무역 비즈니스를 한 부모님의 DNA를 물려받은 탓일까. 그는 친구와 함께 2년 전 스페인 와인 등을 수입, 국내에 유통하는 회사를 설립하며 서울로 적을 옮겼다.
다국적, 다언어가 공존하는 미 카사가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먹고 사는 즐거움’이 있는‘밥집’이기 때문이리라.
다국적, 다언어가 공존하는 미 카사가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먹고 사는 즐거움’이 있는‘밥집’이기 때문이리라.
이사인 알베르토 프레텔(Alberto Pretel)은 ‘친구 따라 (실제로) 강남 온’ 케이스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절친한 친구인 벤델 사장과 나중에 꼭 함께 사업을 해보자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미국 유학 중에 만난 한국인 친구로 인해 예전부터 한국 음식과 문화를 틈틈이 공부했던 덕분에 한국살이 1년 4개월에 “한국 사람 다 됐다”고 말하는 스페인 ‘선남’이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스페인의 알리간테에 별장이 있어서 유년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어요. 그때 만난 좋은 친구가 프레텔이죠. 둘이서 처음 시작했던 건 스페인 와인과 올리브오일 등 식자재를 수출하는 회사였는데, 제가 한국에 와인 수입과 유통을 하는 회사를 만들며 프레텔도 서울로 건너왔어요. 제 경우엔 어머니의 나라로 오게 된 거라 좋고, 프레텔 역시 워낙에 한국 문화를 좋아했던 친구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벤델 사장의 어머니인 순천 벤델이다. 그녀는 30년 가까이 기업 홍보상품 수출입 비즈니스로 잔뼈가 굵은 비즈니스우먼이다. 현재 독일인 남편과 함께 한국, 스위스, 스페인 등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아들인 벤델 사장에게는 사업적 멘토다.

“사업보다 더 어려운 게 자식 농사 아니겠어요.(웃음) 아이들이 여러 나라로 옮겨 다니며 공부했는데, 그때마다 언어와 문화가 바뀌니 아이들도, 저도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것이 아이들에게 경쟁력이 된 것 같아요.

그래도 마르크가 한국에서 사업체를 설립하고 버티고 있으니 아주 든든합니다. 알베르토는 예전에 저희 집에만 오면 김치를 달라고 했던 아이인데, 이렇게 한국까지 와서 아들과 함께 일을 해주니 고맙고요.”

그때 순천 씨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순천 씨의 둘째인 딸 티나 수 벤델(Tina Sue Wendel)이다. 그녀는 미 카사 오픈으로 바쁜 오빠와 어머니를 도우며 비즈니스 수업을 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다른 언어에 비해 한국어에 살짝(?) 약한 탓에 요즘 한국어 공부에 푹 빠졌다는 그녀는 레스토랑의 전반적인 운영을 돕고 있다.

벤델 사장을 도와 미 카사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마이클 리(한국명 이시영)는 5년 전 한국에 온 재미교포. 벤델 사장의 ‘친구의 친구’의 소개로 미 카사 가족이 됐단다. 정보기술(IT) 분야 전문가라는 이력에 걸맞게 8월에 공식 오픈하는 미 카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

다국적군의 마지막 멤버는 사진 촬영을 위해 요리를 모두 준비하고 허겁지겁 주방에서 뛰어나온 셰프 카를로스(Carlos). 원래는 멕시코 사람인데 스페인 요리 전문가로 스페인에서 ‘모셔온’ 인상 좋은 주방장이다.

요리도, 사람도 모두 모였을 때 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시선 맞추기도, 좋은 표정을 잡아내기도 힘들다. 하지만 만국 공통어 ‘스마일~’은 이날도 여지없이 진가를 발휘한다.
미 카사에서는 스페인의 ‘알타 쿠제나(하이 퀴진)’를 맛볼 수 있다. 국내에 흔치 않은 스페인산 와인을 음미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미 카사에서는 스페인의 ‘알타 쿠제나(하이 퀴진)’를 맛볼 수 있다. 국내에 흔치 않은 스페인산 와인을 음미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이보다 더 스페인적일 수 없다

함께 모여 있는 것 자체가 그저 행복한 사람들, 점잖은 독일어와 리드미컬한 스페인어가 교차하는 공간은 다이내믹하다. 그런데 다국적, 다언어가 공존하는 미 카사가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먹고 사는 즐거움’이 있는 ‘밥집’이기 때문이리라.

“서울에 아홉 개의 스페인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니 미 카사가 아마도 열 번째겠죠. 한국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레스토랑마다 차별화를 이루기도 힘들겠죠. 미 카사는 진정한 정통 스페인 요리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고객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음식은 정통을 고집하되, 테이블 사이즈는 넉넉하게 하고 지중해 풍 인테리어가 콘셉트이되 모던한 느낌을 부여했어요. 저희 슬로건이 ‘미 카사 에스 투 카사(Mi casa es tu casa)’입니다. 우리 집이 바로 당신의 집이란 말인데, 어떤 분이 오셔도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Living in Seoul] 스페인 음식·문화 전도사 ‘미 카사’ 패밀리
‘주인장’과 ‘객’이 따로 없었으면 한다는 미 카사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통 스패니시 퀴진 몇 가지를 부탁했다. 우리나라에 흔치 않다는 스페인 와인도 빼놓으면 섭하다.

그런데 식전 빵부터 수상한(?) 소스들이 동반된다. 빵은 자고로 발사믹 소스를 살짝 떨어뜨린 올리브오일에만 찍어먹어야 한다는, 지극히 이탈리안 스타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잘못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올리브오일만 찍지 말고 이 토마토소스랑 아이올리 소스도 빵에 함께 얹어 먹어보세요. 기가 막히지요. 우리 집은 특제 소스가 자랑인데, 스페인에서 흔히 먹는 소스도 있지만 제가 특별히 만든 것도 있어요.

독일 남자랑 결혼해서 외국에 나가 살면서 고추장이 어찌나 먹고 싶던지요. 그때는 한국 고추장을 구할 수도 없어서 핫소스를 어찌나 먹어댔던지 위장에 탈이 나기도 했어요. 나중엔 안 되겠다 싶어 일반적으로 먹는 소스를 조금 매콤하게 만들어 보기 시작했죠.”

어머니 순천 씨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싱싱한 연어를 슬라이스해서 내오는 타파스에도, 양고기 구이에도 미 카사만의 특제 소스가 동반된다. 오징어를 쫀쫀하게 볶아낸 타파스와 적당히 잘 익힌 양고기 구이는 스페인 와인과도 근사한 마리아주를 이뤘다.
[Living in Seoul] 스페인 음식·문화 전도사 ‘미 카사’ 패밀리
스페인 정통 하이 퀴진을 먹어보는 흔치 않는 기회는,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지닌 미 카사 사람들과 나누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로 더욱 빛을 발했다. 빈 병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와인 잔에도 저녁 어둠이 절반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문득, 어머니의 나라를 다시 찾은 젊은 사장의 꿈이 궁금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가족이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죠. 비즈니스적인 꿈이라면 미 카사를 프렌차이즈로 성장시키는 겁니다. 음식을 통해 한국과 스페인의 문화적 교류까지 이뤄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미 카사는 고객들과 스페인 요리의 레시피도 나누고, 더 나아가 스페인어도 가르쳐 줄 수 있는 공간이에요. 두어 달에 한 번씩 스페인 와인을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도 열 계획입니다.”

벤델 사장의 얘기 끝에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주제 하나가 등장했다. 한국 사람들과 스페인 사람들의 극명한 차이에 관한 것인데,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살고 스페인 사람들은 놀기 위해 일한다는 것. 공통점은 양자 모두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지겨워질 때 ‘미 카사’가 ‘투 카사’가 돼줄지도 모르겠다. 일하기 위해 살든, 놀기 위해 일하든 어쨌든 행복하기 위함 아닌가. 태생과 국적이 어디든, 함께 어울려 걸쭉한 수다 한 판 벌일 수 있다면 그 역시 ‘유니버설’한 가족 아닌가. 미 카사 02-546-3979

글 장헌주 chj@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