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코발디(Frescobaldi)는 안티노리(Antinori)와 함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대표적인 와이너리 다. 1385년 설립돼 26대째 가족경영을 이어온 안티노리보다 77년 앞서 설립된 와이너리다. 토스카나 피렌체의 후작 작위를 받은 프레스코발디가(家)의 와인 스토리를 담았다.
[Wine Story] 702년 역사의 이탈리아 와인 명가 프레스코발디
프레스코발디는 1308년에 설립된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중 하나로 아직까지도 가족경영이 이어져 오고 있다. 7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레스코발디는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한국사로 치면 고려 후기부터 존재했다. 프레스코발디가의 29대손인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 후작 현 프레스코발디 오너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점심을 함께 했다.

토양과 자연에 대한 존경과 경의에서 출발
702년 역사를 가진 프레스코발디가는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혁신으로 이탈리아 와인 산업을 이끌고 있다.
702년 역사를 가진 프레스코발디가는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혁신으로 이탈리아 와인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 자리에서 프레스코발디 후작은 프레스코발디가 700년 이상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 가족의 화합과 단결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와인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게 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가 가족 간의 문제로 가족경영을 유지하지 못한 채 거대 기업에 인수됐다는 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우리가 경작하는 포도밭의 토양과 자연에 대한 존경, 경의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와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윤리 즉, 우리가 만드는 와인은 어떤 가격대의 와인이라도 각각 최고 품질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프레스코발디는 토스카나 피렌체의 후작 작위를 받은 귀족가문이다. 후작은 공작보다는 아래, 백작보다는 위에 위치한 계급이다. 프레스코발디 가문은 피렌체은행을 소유했었으며 1308년부터 프레스코발디 와이너리를 소유했다.

프레스코발디는 현재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가문은 오랜 역사만큼 유서 깊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도나텔라, 브루넬레스키, 미켈레초 등 예술가들이 프레스코발디의 와인을 즐겨 마셨다. 14세기부터 영국 왕실 및 유럽 귀족들에게 와인을 공급하면서 유럽에서도 그 명성이 높았다. 귀족을 위한 귀족 와인을 만든 귀족가문이었던 셈이다.
[Wine Story] 702년 역사의 이탈리아 와인 명가 프레스코발디
영국 왕실과의 인연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찰스 왕세자와 각별한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매우 비밀스럽게 치러진 찰스 왕세자의 두 번째 결혼식에 프레스코발디 가문도 초청을 받았는데,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초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Wine Story] 702년 역사의 이탈리아 와인 명가 프레스코발디
품종 다양화와 현대적 와인 생산기술로 젊음 유지

오래된 빈야드와 와이너리, 고풍스러운 성들은 프레스코발디가의 역사와 전통을 말해준다.
오래된 빈야드와 와이너리, 고풍스러운 성들은 프레스코발디가의 역사와 전통을 말해준다.
프레스코발디 후작은 자신들이 와이너리의 소유주가 아니라 수호자라고 말한다. 선대들이 그러했듯이 그들의 가장 큰 임무는 다음 세대에 가업을 이어주는 것이다.

가업을 잘 수호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계속돼 온 전통을 잘 이어가면서 동시에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오래된 기업은 지속적인 변화로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

현 세대 또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스코발디 후작은 토스카나 지역에서 현대적 와인 생산기술의 선구자였다.

1960~70년대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은 발효 중 온도조절 장치를 도입하는 등 양조기술의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당시 프레스코발디는 안젤로 가야, 안티노리와 함께 이탈리아 와인산업에 대혁신을 일으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와인을 만들어낸다. 이런 과정을 통해 토스카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복잡하고도 우아한 레드 와인을 만들고 있는, 와인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됐다.
[Wine Story] 702년 역사의 이탈리아 와인 명가 프레스코발디
포도 품종도 다양화했다. 프레스코발디는 1855년 키안티 지역에 최초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샤도네이, 피노 누아 품종을 들여왔다. 프랑스 품종은 이탈리아 토양을 만나 섬세하고 미묘한 맛과 적절한 산도를 가진 와인으로 탄생됐다.

프레스코발디는 1973년에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최초로 오크통 숙성을 시작했으며, 1976년 키안티 루피노 지역의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으로 만든 슈퍼 투스칸(Super Tuscan) 와인인 ‘모모레토(Mormoreto)’를 탄생시켰다. 모모레토는 카베르네 소비뇽 60%, 메를로 25%, 카베르네 프랑 15%를 블렌딩했다.

디켄터와 와인 스펙테이터가 극찬한 와인

모모레토 와인은 IGT 등급이다. 등급만 보면 테이블 와인(가격이 비교적 저렴해서 일상적인 식사 시 테이블에 놓이는 와인을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격은 국내 가격 기준 15만 원이 넘는다. 이런 와인을 슈퍼 토스카나(Super Toscana) 와인이라 일컫는다.

슈퍼 토스카나는 공식 등급이 아니고 그 품질 면에서 고급으로 인정받으면서 와인 애호가와 평론가들이 붙인 별칭으로, 가격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혁명’이다.
[Wine Story] 702년 역사의 이탈리아 와인 명가 프레스코발디
모모레토가 IGT 등급인 이유는 이렇다.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방식이나 법규는 매우 폐쇄적이라서 이탈리아 안에서 토착 품종 이외의 다른 품종이나 다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 경우 등급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전통을 벗어난 모모레토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뛰어난 풍미로 곧 인정받는 와인이 됐다.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인 모모레토 2007 빈티지는 5월 말 발표한 ‘디켄터 2011 월드 와인 어워즈’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또한 니포자노 리제르바(Nipozzano Riserva)는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에 네 차례나 선정됐다. 니포자노 리제르바는 모모레토와 같은 지역인 키안티 루피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프레스코발디 가문의 대표적 와인이다.

1000년이 넘은 니포자노 성 안에는 가문의 새로운 일원이 태어날 때마다 그 해 빈티지의 니포자노 500병씩 저장해 놓은 셀러가 있다. 니포자노는 생일, 성인식, 결혼식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니포자노를 꺼낸다.

한편, 프레스코발디는 1995년 이탈리아 최초의 조인트 벤처로도 유명한데, 미국 와인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와의 합작을 통해 ‘루체(Luce)’를 탄생시켰다. 현재 프레스코발디 그룹은 마르케시 데 프레스코발디, 몬다비와의 합작을 통해 만든 루체 델라 비테, 테누타 델 오르넬라이아, 어템스 등을 소유하고 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제공 신동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