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형 자산이전
경기도에서 비상장 중소기업(제조업)을 운영하는 김기동(61) 씨는 늘어나는 매출과 당기순이익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30년 넘게 키워온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본인 사망 후 예상되는 상속세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아무런 준비 없이 상속이 이루어진다면 사업체와 관련된 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할 상황이다. 기업 실적을 감안할 때 액면가 5000원인 한 주의 가치가 세무적으로 25만 원으로 평가된다는 사실도 김 씨를 놀라게 했다. 어떻게 해야 세금을 줄이면서 자녀에게 가업을 물려줄 수 있을지 김 씨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편법적인 승계의 두 가지 유형
세법상 상속세의 최고 세율은 상속액의 50%다. 사망할 당시 피상속인 명의의 모든 재산을 취합해 과세표준을 만들고 여기에 상속세율(10~50%)을 반영해 상속세를 계산한다. 50%의 세율로 상속세가 과세된다는 것은 과세권자인 정부가 개별 상속인보다 더 높은 상속지분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상속인으로 있을 경우, 배우자는 7분의 3의 상속지분을 갖고, 다른 자녀는 7분의 2의 상속지분을 갖게 된다. 반면 정부는 상속세라는 명분으로 10~50%에 해당하는 지분의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김 씨처럼 평생을 바쳐 키운 기업을 자녀에게 승계하면서 50%에 가까운 세금을 납부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수의 기업인들이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가업을 승계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가업을 승계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방법은 주식이나 전환사채(CB) 등을 헐값으로 넘기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기업주들이 모회사와 유사하거나 모회사의 업무와 직접 연관이 있는 작은 자회사를 세워 자녀에게 물려준 뒤 일감이나 거래처를 몰아줘서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회사의 재산을 자녀에게 빼돌리는 과정으로 통상 땅굴파기(tunneling)라고 부른다. 외형적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나 이해관계인 사이의 내부적인 거래로 부를 이전시키는 것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분을 저렴하게 넘기는 첫 번째 방법을 많이 활용했다면 요즘은 거래처나 일감을 몰아주는 둘째 방법을 많이 활용한다. 금융감독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자산 기준 30대 그룹 총수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50%에 가깝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 오너들은 마음만 먹으면 자녀를 알짜배기 회사 소유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런 과정이 편법 상속 수단으로 악용돼도 지금까지는 감시와 규제가 따르지 못했다. 일감 몰아주기는 정부가 2007년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로 규정했지만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당장은 세금을 피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완벽할 수는 없다. 가업을 승계할 때도 상속세와 증여세의 기본인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2004년 이후에 상속세와 증여세는 완전포괄주의로 과세돼 간접적인 무상 증여와 상속도 과세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상속세와 증여세의 제척기간은 보통 15년으로 다른 세금에 비해 기간이 길다. 상속재산이나 증여재산이 5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과세권자가 그 사실을 인지한 날부터 1년 이내에 언제든지 과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제척기간을 무한대로 두고 있는 실정이다.
누락된 상속 및 증여 재산에 대해서는 언제든 과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합법적인 범위에서 세금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가업 승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하라
세금은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근로 의욕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 특히 젊음을 바쳐 키워온 회사가 사망 후 세금 명목으로 가업과 관련한 재산의 절반이 줄어들 수 있다면 허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법에서는 상속재산 중에서 가업과 관련한 재산이 있을 경우에는 상속세를 계산할 때 일정한 금액을 공제해서 과세표준을 줄여준다.
상속재산 중 가업과 관련한 재산이 있을 경우 가업상속공제라는 이름으로 가업 상속재산의 40%를 상속재산에서 공제한다. 최대 100억 원까지 공제할 수 있다. 만약, 가업을 영위한 기간이 10년 이상일 경우에는 60억 원까지, 15년 이상 가업을 영위했으면 80억 원까지, 20년 이상 가업을 영위했다면 최고 100억 원까지 공제한다.
상속세의 최고 세율인 50%로 과세되는 경우라면 가업 상속공제로 최대 50억 원의 상속세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아래의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중소기업의 최대주주로서 50%(특수관계자 포함) 이상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
둘째, 가업의 영위기간 중 60% 이상 또는 사망일 전 10년 중 8년 이상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한다.
셋째, 상속인이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넷째, 상속인이 상속개시일 2년 전부터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다섯째, 상속인 1인이 가업의 전부를 상속받아 상속세 신고기한 중 임원에 취임해야 한다.
여섯째, 신고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
주식의 평가액을 낮춰라
상속세의 부담을 줄이면서 기업을 자녀에게 승계시키기 위해서는 가업상속공제만을 기대할 수 없다. 회사의 주식평가액을 낮춰야 한다. 주식을 평가하는 방법은 상장주식과 비상장주식이 다르다.
상장주식은 상속개시일 전후 2개월 동안 공표된 매일의 한국거래소(KRX) 최종 시세가액의 평균액을 계산한다. KRX에 상장되지 않은 비상장주식은 회사의 대차대조표에서 추출한 순자산가치와 손익계산서에서 추출한 순손익가치에 40%와 60%의 비율을 가중 평균한 가액으로 평가한다.
비상장주식의 평가는 회사의 대차대조표(순자산가치)와 손익계산서(순손익가치)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비상장주식의 평가액을 낮추기 위해서는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순자산가치를 낮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순자산이라는 것은 회사의 자산 총액에서 부채 총액을 차감한 개념이다. 순자산가치를 줄이기 위해서는 회사의 자산은 줄이고 회사의 부채는 높여야 한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자산과 부채를 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회사의 순손익가치는 노력에 따라서 줄일 수 있다. 순손익가치는 손익계산서에 계산된 당기순이익에 가까운 개념이다. 당기순이익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해서 가득한 이익도 있겠지만, 영업활동과 관련 없이 발생한 이익도 당기순이익에 반영된다.
예를 들어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유가증권을 매각해 매매차익을 실현시킨 경우를 가정해 보자. 그 손익은 손익계산서에 특별이익으로 반영돼 당기순이익을 높이게 된다. 이렇게 높아진 당기순이익은 순손익가치를 높게 만들어 비상장주식의 평가액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더구나 상속이 개시되기 직전에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등을 매각해 당기순이익을 높이면 비상장주식의 평가액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다. 상속개시 직전 사업연도의 당기순이익에 3의 가중치를 두고, 상속개시 2년 전 사업연도의 당기순이익에 2의 가중치를 두고, 3년 전 사업연도의 당기순이익에 가중치 1을 두어 가중 평균으로 순손익가치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속개시일이 임박한 사업연도의 당기순이익이 비상장주식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결국, 비상장주식의 평가액을 줄이기 위해서는 상속개시일 3년 전부터 회사의 순이익이 비정상적으로 커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업활동과 관련이 없는 수익이나 특별이익은 가급적 반영을 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상장 후 증여나 상속을 하라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서는 회사주식의 평가액을 낮춰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회사 주식평가액을 낮추기 위해서 상승기조에 있는 회사의 매출을 일부러 줄이거나, 불필요한 지출을 늘려서 비상장주식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왜곡된 의사결정이다. 차라리 이 경우에는 본인이 운영하는 비상장회사를 기업공개(IPO)를 통해서 상장을 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비상장회사가 KRX에 상장이 되면 세무적으로 주식을 평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에 40%와 60%를 가중 평균해서 평가하지 않고, 그 평가를 주식시장에 맡기게 된다. 상장주식의 경우 상속일 전후 2개월 동안 공표된 매일의 KRX 최종 시세가액의 평균액으로 계산한다. 이렇게 주식시장에서 결정된 가액으로 계산한 평가액이 장부(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에 의존해서 만들어진 평가액보다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전에 증여하라
가업을 승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상속이 진행되기 전에 미리 증여하는 것이다. 상속이 개시되기 전에 사전 증여를 통해서 지분을 분산하는 것이다. 10년 전부터 미리 증여해서 증여세를 납부했다면 이 부분은 상속세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가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증여의 판단을 내렸다면 여러 가족에게 분산해서 증여하는 것이 좋다. 10년 전에 증여하면서, 여러 가족에게 분산해 증여를 한다면 증여세도 줄이면서 상속재산에도 가산되지 않기 때문에 상속세와 증여세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증여할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증여하는 부모는 대표이사의 자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둘째, 본인의 주식지분과 가족의 주식지분의 합계가 50%(상장주식의 경우는 40%)는 유지돼야 한다.
셋째, 증여할 때는 회사의 지분을 여러 가족에게 나누어 증여해도 되지만 상속으로 지분을 물려줄 경우에는 회사를 운영할 자녀 한 사람에게 지분을 몰아주어야 한다. 넷째, 가업을 물려받을 자녀는 적어도 상속개시일 2년 전부터 해당 기업에 근무를 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필요한 이유는 상속이 진행될 때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함이다. 주식 가치가 떨어지면 3개월 내에 증여를 취소하라
상장된 회사의 주식을 증여할 때는 가급적 저평가될 때 증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상속이 개시되기 10년 전에 증여하고, 증여할 때 여러 가족에게 분산해 증여하고, 회사주식의 평가액이 가장 낮을 때 증여하는 것이 좋다.
주식을 투자할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저렴할 때 구입해야 큰 자본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증여도 가장 평가금액이 낮을 때 증여해야 세금 측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주식의 가치가 가장 낮은 시점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낮은 평가 시점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 쉽게 부를 축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증여는 어느 정도 주식의 가장 낮은 평가 시점을 찾을 수 있다.
세법에서는 증여 후 3개월 이내에 증여를 취소해 반환할 경우, 원래의 증여에 대해서도 증여로 보지 않고, 증여의 취소로 반환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이를 활용하면 주식의 저평가 시점을 찾아낼 수 있다.
즉 증여 후 주식의 가치가 더 떨어지면 3개월 이내에 증여를 취소하고, 가장 저평가된 시점이라는 판단이 될 때 다시 증여하면 된다. 만약, 이렇게 증여한 후 주식의 가치가 더 떨어진다면 다시 3개월 이내에 증여를 취소해 가장 낮게 평가되는 시점을 기다리면 된다.
물론 증여를 취소하고 다시 환원하는 과정에서 증권거래세를 내야겠지만 0.3% 정도의 증권거래세는 줄어드는 증여세와 비교하면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원종훈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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