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신 미술거래법연구소 소장 (대표 변호사)
법률사무소 기쁨의 최한신 대표 변호사는 변호사이자 미술거래법연구소 소장이다. 7년 전 변호사 사무실 1층에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전문적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경매에 참여하면서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 방 하나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미술 관련 서적이 그간 미술 공부의 여정을 보여준다. 현재 소장한 작품만 100여 점에 이른다.
“처음부터 미술거래법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공부를 했고, 작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처분하는 게 쉽지가 않더군요.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 자연 거래법에 관심을 갖게 됐죠.” 미래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필요한 인증서
그림을 알고 미술거래법을 연구하면서 적잖은 고객을 만났다. 의뢰인 중에는 상속이나 증여 문제로 법률사무소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액자산가 중에는 동산인 미술품을 통한 상속이나 증여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부동산과 달리 동산인 미술품은 자녀에게 현물 양도가 가능하다. 그런 특성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술품을 통해 음성적으로 상속과 증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국세청이 마음만 먹으면 탈법 상속과 증여에 대해 못 찾을 일이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술품도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상속보다는 증여를 활용하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직계비속은 10년 단위로 미성년은 1500만 원, 성년은 3000만 원까지 세금이 공제된다. 배우자는 6억 원까지 세금이 공제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증여를 하면서 반드시 인증서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인증서와 함께 작품 사진을 첨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술작품을 상속하고 증여할 때는 시가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된다. 그런데 미술작품의 가치는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다. 아내에게 증여할 당시 6억 원이던 그림이 남편이 사망하는 시점에서 10억 원으로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 이때 증여 당시 감정평가법인이나 한국미술협회 등에서 받은 인증서가 있다면 문제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요즘은 미술품 거래도 대부분의 정보가 공개돼 있어요. 특히 돈 되는 작가나 블루칩 작가의 작품은 고가인 데다 유명 화랑에서 주로 거래되기 때문에 국세청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래 내역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절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미술품 증여, 최적의 시기
미술품의 증여에는 시기가 가장 중요한다. 시기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남길 정도면 상당한 자산가들이다. 그들이 남기는 작품도 고가일 때가 많다.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고가의 미술품은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경제상황에 따라 가격 차이가 그만큼 큰 것이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예로 봅시다. 미술시장이 정점이었던 2007년 50호짜리 <선으로부터> 작품 한 점이 8억9000만 원에 거래됐습니다. 수수료까지 합치면 9억 원이 넘어요. 그런데 지난해 경매에서는 150호짜리 <점으로부터> 한 점이 9억2000만 원에 낙찰됐어요. 모두 1978년 작입니다. <선으로부터>가 <점으로부터> 시리즈보다 가격이 싸지만, 작품의 크기 차이를 고려하면 가격이 엄청 떨어진 거죠. 증여 시점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최 변호사는 미술품도 주식처럼 증여 시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많은 기업가들이 주식 가치가 떨어졌을 때 주식을 증여하듯이, 미술품도 가격이 떨어졌을 때가 증여 시점이라는 말이다.
증여의 적절한 시점을 알기 위해서는 미술 시장의 전체적인 흐름과 함께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전시 일정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내외 대형 회고전을 전후로 작품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천경자 씨 위작 논란이 있었어요. 작가는 위작이라고 했지만 평론가들은 진품으로 감정했거든요. 이후 절필 선언을 했는데 한동안 천경자 씨 작품이 거의 거래가 안됐어요. 이중섭 씨도 위작 논란에 휩싸였는데 그때마다 가격이 안 올랐어요. 그런 시기에 증여를 하면 낮은 가격에 평가를 받을 수가 있죠.”
젊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최우선
미술품을 남겨주기 위해서는 이처럼 미술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따라야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중요한 것은 작품을 보는 눈이다. 가격이 오를 젊은 작가의 작품을 증여한다면 그보다 좋은 자산이전도 없다.
작품 보는 눈을 키우는 데는 아트페어만한 게 없다. 최 변호사는 아트페어 첫날과 둘째 날 부스를 돌며 작품을 본다. 도록에 A, B, C 등으로 작품에 등급을 매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마지막 날 부스에 들러, 좋게 평가한 작품들이 팔렸는지를 물어본다. 7년 가까이 이렇게 아트페어를 돌다 보니 작품을 보는 눈도 자연 키워졌다.
“작가 박영근도 그렇게 알게 된 작가입니다. 아트페어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나중에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취급하더군요. 2007년에 약 800만 원에 샀는데 지금은 100% 이상 가격이 올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을 찾는 것도 좋은 공부이자,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사립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했다면 객관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알게 된 대표적인 작가가 이재호, 김태호, 문범 등이다. 이 중 이재호의 작품은 2~3년 사이 2배 이상 가격이 뛰었고, 문범의 작품은 외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소장품전’을 눈여겨본다. ‘신소장품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전 해에 구입한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로, 그는 작가 홍경택이 ‘신소장품전’에서 건진 최대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을 더 드리면, 여름이나 겨울에 작품을 사세요. 모두가 휴가를 떠나는 여름, 겨울에는 작가들도 휴가를 갑니다. 휴가비가 필요한 작가들이 갤러리를 통해 비교적 싼 가격에 작품을 내놓기도 하거든요. 작가의 사정을 아는 갤러리도 이때는 자신들의 몫을 포기합니다. 이때가 싼 값에 작품을 살 수 있는 기회죠.”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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