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Insight] 관심 높아지는 차기 금융위기 후보 주식시장인가? 상품시장인가?
2008년 9월 리먼 사태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어느덧 3년이 됐다. 투자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경제주체들에게는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은 암울한 시기였다.

현재 금융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화 유동성과 주가 등 금융변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리먼 사태 이전으로 돌아간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논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금융위기 극복 경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한 나라의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이 순서대로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실물부문에 자금이 들어가 경기가 회복된다.

‘위기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국가가 관장하는 유동성 위기는 극복됐으나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고 실물경기를 회복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 극복과제는 이제는 출구전략을 시행하거나 논쟁이 거세지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정책당국이 관장해야 할 단계는 지난 상황이다.

위기 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위기를 낳게 한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마련하는 두 번째 금융시스템 정비단계도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돼 왔다. 위기 이후 모든 금융활동에 준거의 틀이 될 미국의 금융개혁법이 추진된 데다 다른 국가들도 독자적으로 금융시스템을 개혁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부실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 중개기능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대적인 부양책을 병행해 나감에 따라 글로벌 경기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글로벌 증시도 위기 직후 극단적인 비관적 전망이 잇달아 나왔고, 위기극복 과정에서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지만 비교적 순조로운 흐름이 전개돼 왔다.

금융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창립 이래 처음 가진 밴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과 올 1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 발표 이후 월가를 중심으로 향후 증시 흐름과 관련해 거세게 일고 있는 두 가지 경기논쟁과 이에 따른 정책대응 문제를 놓고 벌이는 네 가지 독트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기 면에서는 지난해 8월 이후 거세게 불었던 ‘더블 딥’과 ‘소프트 패치’ 간 논쟁이다.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은 올 1분기 성장률이 낮게 나온 것을 계기로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정국 경기가 ‘더블 딥’에 빠지면 장기침체를 예고하는 것으로 증시도 본격적인 조정국면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1분기 성장률이 낮게 나온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소프트 패치론’으로 2분기 이후 회복국면에 재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FRB가 올해 성장률을 3.1~3.3%로 하향 수정했지만 1분기 성장률이 1.8%인 점을 감안하면 2분기 이후에는 3% 이상 나와야 연간 성장률 달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시각을 뒷받침한다.

경기논쟁과 맞물려 정책적으로 거세지는 ‘쌍둥이 독트린 논쟁’도 월가의 화두다. 하나는 재정정책 우선순위를 적자축소와 경기부양 중 어디에 둘 것인가와 관련한 ‘로고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간의 논쟁이다. 다른 쪽에서는 통화정책 대상에 자산시장을 포함시킬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의 논쟁도 일고 있다.

이미 재정적자가 위험수위에 놓인 만큼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적자축소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것이 ‘로고프 독트린’이다. 재정적자가 확대되면 신용등급 추락 등과 같은 신뢰위기에 봉착하고, 재정지출을 통한 부양대책은 ‘구축효과(驅逐效果·crowding out effect)’로 경기가 의도했던 대로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근거에서다.

이에 대해 오바마 정부의 입장은 최근처럼 경기회복이 완전치 못한 상황에서 적자축소에 우선순위를 두면 1930년대 대공황 당시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 것이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킨다면 누진적인 조세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일수록 재정수입이 늘어 재정적자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 ‘크루그먼 독트린’이다.

통화정책 대상과 관련해서는 원칙적으로 증시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 여건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신념이다. ‘그린스펀 독트린’이라고도 불리는 이 정책은 2000년대 초반 실물경제 여건만을 고려한 저금리 정책으로 한때는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자산시장에 거품을 일으켜 2008년 하반기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게 한 주범으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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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현재 위기를 풀어가는 버냉키 FRB 의장은 통화정책 대상에 자산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실제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고수익을 목적으로 각종 파생상품과 레버리지 투자로 실물경기와 자산가격이 따로 노는 정도가 심한 여건에서는 통화정책은 자산시장을 반드시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버냉키 독트린’의 핵심이다.

다행히 재정정책 우선순위 논쟁은 재정적자와 경기부양을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대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 눈에 뜨는 것은 오바마 정부가 강한 신념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페이 고(pay-go)’ 원칙과 간 나오토 정부가 대지진 사태 이후 일본 경제 부활을 목표로 의욕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간지언 정책’이다.

특히 ‘페이 고’ 원칙은 재정지출 총량은 동결하되 지출내역에 있어서 부양효과가 적은 쪽은 삭감(pay)하고 그 삭감 분으로 부양효과가 높은 쪽으로 밀어(go) 주면 경기가 회복되고 재정적자도 축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가 이 원칙을 추진해 재정과 물가안정 속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통화정책 대상논쟁과 관련해서는 ‘그린스펀 독트린’보다 자산시장을 함께 고려하는 ‘버냉키 독트린’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금리인상 논거로 자주 인용되는 ‘오쿤의 법칙(okun’s rule)’으로 볼 때 지난해 4분기까지 미국 경제 성장률은 잠재수준을 웃돌 정도로 ‘인플레 갭’이 발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부동산 시장 등을 감안해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장기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FRB의 방침이다.

이 때문에 위기가 완전히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기 위해서는 국가별로는 위기극복이 부진한 국가들의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위기극복이 빠른 국가들도 재정적자와 인플레 등과 같은 ‘애프터 크라이시스’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남아있다. 이 과제 해결이 늦어지면 ‘3년 주기론’에 따라 또다시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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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상황에서 더 주목되는 것이 글로벌 유동성의 쏠림현상이다. 현재 정책적으로 글로벌 유동성은 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신흥국들은 강도 있는 통화긴축을 펴온 데다 올 4월 들어서는 유럽까지 가세해 외형상으로는 줄어드는 듯한 분위기다. 대부분 국가에서 인플레가 현안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금리는 계속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글로벌 유동성은 상당기간 줄지 않을 전망이다. 위기과정에서 퇴장되고 단기 부동화됐던 유동성이 시중에 방출되고 있다. 경제활력지표인 통화유통 속도와 통화승수도 빠르게 회복되는 추세다. 한때 3배 이내로 축소됐던 레버리지 비율도 일부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경우 10배 내외로 높아졌다.

올 들어 유럽 재정위기, 일본 대지진, 미국 신용등급 전망 하향 등 선진국에서 잇달아 악재들이 터져 나오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빠르게 신흥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지난해 신흥국으로 유입된 글로벌 유동성은 약 1조 달러에 달했다. 이 같은 추세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차기 금융위기에 대한 경고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시장 구성원과 금융상품, 금융감독 등에서 발생하게 될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화제가 됐던 ‘JP모건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금융위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탐욕과 공포의 줄다리기에서 탐욕이 승리할 때 또 다른 버블이 형성되고, 공포가 탐욕을 누를 때 시장은 위기를 맞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다음 금융위기는 반드시 온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민스키 모델에서도 인간의 욕망이 도를 넘어 탐욕 수준으로 변질되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급변하면서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심리가 확산돼 결국 버블이 붕괴되면서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대표적으로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1997년 10월 아시아 외환위기, 2007년 10월 서브 프라임 모기지발 신용위기 등과 같은 10년 주기설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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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유로 갈수록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금융위기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 것인가 하는 점도 문제다. JP모건은 지금까지 금융위기의 시장별 발생 패턴을 종합해 볼 때 차기 금융위기는 신흥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신흥국에서 발생했던 마지막 위기는 1990년대 후반에 발생했던 러시아 모라토리엄(국가채무 불이행) 사태로 10년이 넘으면서 신흥국은 공포의 기억이 잊혀져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연일 사상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금을 비롯한 각종 상품가격이 더 위험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도 차가 있긴 하지만 상품 시장은 각 섹터 별로 가격 상승이 빠른 ‘슈퍼 스파이크’, 가격상승국면이 오래 지속되는 ‘슈퍼 사이클’, 모든 상품 값이 오르는 ‘퍼펙트 스톰’이 발생되고 있다. 거품 형성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금값의 상승세는 무서울 정도다. 월가에서는 오랜만에 ‘인디애나 존스 위기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인디애나 존스>는 부자가 될 일념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금을 발견하면 그 순간부터 마음이 돌변해 혼자 독차지할 탐욕을 꿈꾸게 돼 정작 부자가 되지 못하고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것이 골자다.

짧게는 미국의 금리가 언제 인상되느냐가 향후 금값뿐만 아니라 차기 금융위기 발생 여부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달러 가치가 회복될 경우 그 자체가 금값을 하락시키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금을 비롯한 상품 시장에서 달러캐리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올 경우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증거금 상향 조정을 계기로 은을 비롯한 상품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차기 위기의 전조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어떤 위기가 올 것인가.단기 통화방어 능력, 중장기 위기방어 능력에 해당하는 해외 자금조달과 국내 저축능력, 자본유출 가능성을 보는 자본유입의 건전도 등으로 파악하는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로 볼 때 동유럽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높게 나오지 않는다. 주가수익비율(PER) 등 증시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도 이머징마켓의 주가는 적정수준보다 밑돌고 있다.

최근 상품가격 폭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증거금 상향 조정으로 자금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주로 상품 시장에 투자한 기존 자산을 회수해야 한다. 리먼 사태처럼 ‘마진 콜(증거금 부족현상)’이 발생하더라도 디레버리지(자산회수) 과정에서 증시로 전염돼 ‘나비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신흥국 증시는 당장 붕괴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일부 우려대로 상품가격 폭락이 증시로 전염돼 위기가 올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아직까지 신흥국 주가 버블이 극에 달한 상황이 아니고, 리먼 사태처럼 주가 폭락 직전에 극에 달하는 시장 모멘텀과 레버리지(차입비율)는 관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원자재 시장의 강세 행진이 이머징마켓의 상황과 연결돼 있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머징마켓의 상품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의 대부분이 매수에 치중(long-only)하는 자금 또는 국내 예금이라는 점은 이머징마켓 상품 시장의 과열양상을 보여주는 증표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부존자원 싹쓸이에 나서며 위기 이후 주도권 확보에 위협을 느낀 다른 국가들도 이 전쟁에 뛰어들면서 차기 위기의 성격이 ‘상품위기’로 귀결되고, 그 시기도 10년 주기론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경고를 최근 상품가격 폭락이 입증시켜주는 듯한 움직임은 각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런 점에서 국내 금융사들이 ‘스위트 스폿’으로 금을 비롯한 귀금속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재테크 관점에서 ‘스위트 스폿’이란 최고의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처를 의미한다.

오히려 귀금속 가격은 시장 자체요인보다 달러가치, 시장참여자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돼 예측하기가 어렵다. ‘인디애나 존스 위기설’이 주는 교훈대로 귀금속 가격이 다시 치민다 하더라도 실제로 투자할 때에는 위험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