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 Lalique

프랑스의 보석세공사이자 유리공예가인 르네 랄리크(ReneLalique·1860~1945). 그는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시대를 아우르며 왕성한 활동을 보인 아티스트였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메이저 경매에서 높은 가격을 기록하며 전 세계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Victoire automobile. 자동차의 마스코트로 부착했으며 많은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다.
Victoire automobile. 자동차의 마스코트로 부착했으며 많은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다.
작년 12월 15일 진행된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맥캘란 랄리크 서퍼듀(Macallan Lalique Cire Perdue)가 위스키 사상 최고가인 46만 달러(5억1700만 원)에 낙찰됐다. 이는 역대 위스키 경매나 판매 가격 중 최고가로 맥캘란이 지난 2005년 국내에 선보였던 맥캘란 화인 앤드 레어(Fine & Rare) 제품이 세운 기록인 7000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금액이다.

맥캘란 랄리크 서퍼듀를 담은 디캔터는 프랑스 크리스털 유리공예의 명가 랄리크에서 제작됐다. 랄리크는 르네 랄리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이 디캔터를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맥캘란 랄리크 서퍼듀 제품은 1942년 빈티지와 1945년 빈티지, 1946년 빈티지 등 3개의 스페인산 셰리 오크통의 원액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전 세계 컬렉터들의 시선을 모았다.

랄리크의 크리스털 제품은 또한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우아한 자동차 경연대회(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랄리크 크리스털 트로피로도 유명하다. 수상자들은 유백색의 투명한 랄리크 트로피를 받아들고 감격한다.

랄리크 아르누보 작품의 전형인 요정과 꽃

이처럼 클래식 카 경연에서조차 그 위상을 높이는 랄리크의 생명력은 무엇일까. 수많은 유리 제품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상승하는 랄리크의 가치를 이해하는 방법은 그의 컬렉션을 만져보고 소유해 보는 방법 외에는 특별한 길이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랄리크의 컬렉션들은 메이저 경매사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 지 오래다.

마른 데파르트망(Department) 태생의 프랑스 보석세공사이자 유리공예가인 르네 랄리크는 파리의 루이 오코크(Louis Aucoc) 밑에서 금세공 도제수업을 받고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수학한 뒤 1878년부터 1880년까지 런던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파리로 돌아온 뒤 1년 동안은 보석상이자 금세공가인 오귀스트 프티(Auguste Petit)를 위해 일했다. 당시 그는 유명한 파리의 보석상들을 위해 장신구를 디자인했는데 그중에는 네덜란드의 루이 프랑수아 카르티에(Louis Francois Cartier·1819~1904)도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에콜 베르나르 팔리시에 다니며 조각가 뷔스티앵 르키앵을 사사하기도 했다. 이후 랄리크는 1884년 프랑스 공예품 전시와 연계해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프랑스 왕관 보석 전시회’를 계기로 독자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게 된다.

그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아름다운 시절) 풍조 아래 화려한 장식작품을 제작해 명성을 얻고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인물이 됐다. 1885년에 파리의 보석세공 공방인 쥘 데스타프(Jules Destape)를 인수했다.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파리의 일류 보석상들을 위해 보석장식을 만들었다. 쥘 데스타프 인수 후 사업은 새로운 공방을 물색해야 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는데, 1890년에는 직원만 3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했다.

그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전통 원료를 거부하고 선명한 색채의 준보석을 선호해 보석디자인에 혁신을 일으켰다. 요정이나 꽃과 같은 모티브는 랄리크의 아르누보 작품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가 1897~98년에 제작한 머리띠 세이렌(Siren)은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이 선호한 여성으로 보석세공인들에게 인기 있는 모티브였다. 그는 1895년부터 1909년까지 프랑스 미술가 전시회에 정기적으로 보석과 공예품을 선보였다. 일반적인 잣대로 보자면 랄리크의 인기와 명예, 부가 보장돼 보였다.

아르누보 시대에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디자인 선보여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는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이 다르다. 다시 말해 곡선과 직선의 차이다. 그래서일까. 아르누보 시대에 유명했던 갈레 같은 예술가들은, 이어지는 아르데코 시대에는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하고 적응이 쉽지 않았다.

랄리크는 달랐다. 아르누보 시기에 보석으로 유명해진 랄리크는 자신의 보석 디자인을 값싸게 복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다가 1901년경부터는 유리작업을 시작했다. 1909년에 유리 제조업체를 인수했고, 1918년부터는 유리세공에 몰두했다.

1908년과 1910년 사이 최초로 틀(金口)에 부어 주얼리를 만드는 시도를 했는데, 1904~06년 사이 만들어진 펜던트 ‘키스(The Kiss)’는 그의 첫 글라스 아트였다. ‘키스’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연인들이 화관을 쓰고 사랑스럽게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아르누보의 모호성을 상기시킨다.

랄리크의 혁신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는데, 그 시작은 1908년이었다. 그와 이웃한 화장품 점포인 프랑수아 코티(Francois Coty·1874~1934)가 향수병 디자인을 그에게 위임한 것이 계기가 됐다. 향수병과 함께 그는 유리 조명기구에 잔기를 사용한 램프, 스탠드, 샹들리에 등을 제작하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랄리크의 화려한 램프는 현재 경매에서 수십만 달러에 낙찰된다.

1910년에 이르러 랄리크는 아직 곡선의 아르누보가 대세인 시대에서 이미 미래를 향한 시선으로 디자인하는 과감성을 보여준다. 온힘을 글라스 아트 개발에 쏟아 부으면서 파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1920년대의 화려한 아르데코 양식을 구현하게 됐다.

아르누보에서 아르데코로 가장 성공적인 전환을 보여준 작가

아르데코는 이미 1910년경 파리 살롱전에서 그 기미를 볼 수 있지만 그 명칭은 새로운 양식이 출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25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장식미술 및 현대산업 박람회’ 레스포시지옹 엥테르나쇼날 데 아르데코 라티프 엥디스트리알 모던느(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ecoratifs et Indestriels Modernes)’에서 연유했다.

랄리크의 반짝이는 유리분수가 광고 포스터에 등장하는 등 박람회를 대변하게 됐으며, 이는 그 후 아르데코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 전시회를 기점으로 아르데코라는 용어가 한 시대의 문예사조를 대표하게 된다.

아르데코는 1930년대에 서유럽과 미국의 건축과 장식미술에서 주된 양식이 됐다. 아르누보가 수공예적인 것에 의해 나타나는 연속적인 곡의 선율을 강조해 공업과의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반면, 아르데코는 공업적 생산방식을 미술과 결합시킨 기능적이며 고전적인 직선미를 추구했다. 아르데코 양식은 단순함, 깔끔한 형태, 유선형 같은 외양, 구상주의 형태에서 나온 기하학적이고 양식화된 장식 등이 특징이며 매우 다양하고 값비싼 재료를 사용했다.

그러나 아르누보와의 경계선은 희미했는데, 슈토클레트 저택과 같은 프로젝트는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두 양식 공통의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양식의 연속성의 예를 1920년대까지 활동한 많은 아르누보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의 작품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인 전환은 랄리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파리 만국박람회 이후 랄리크는 모든 면에서 정점에 서게 되는데 영국 저지에 지어진 유리 성당(The Glass Church) 세인트 매튜 성당(St. Matthew’s Church)과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대서양 횡단 여객선 마르세유에 채택된 장식 등이 그의 왕성한 활약을 보여준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아르데코를 빛낸 유리 예술가 르네 랄리크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아르데코를 빛낸 유리 예술가 르네 랄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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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아르데코를 빛낸 유리 예술가 르네 랄리크
1 윌리엄 패턴(William’pattern)의 손잡이가 독특한 칵테일 잔이다.
2 나이아드(Naiade: 물의 정령) 조각으로 랄리크의 독특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3 동시대 파리에 모인 많은 예술가들에게 베아트리체와 같았던 여인 수잔을 조각으로 표현한 랄리크의 작품. 르누아르 드가의 그림 속 수잔을 랄리크의 유리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4 1910년 작품으로 사면에 매미가 조각된 향수병이다.
5 ‘Vigne Strie’라 이름 붙여진 1920년대 작품으로 고전적인 느낌의 세피아 파티나(sepia patina) 와인 디캔터와 잔 세트. 안정감 있는 볼륨과 색상의 조화가 돋보이는 파인아트 경지의 와인 액세서리다.
6 랄리크의 테이블 클럭으로서 일체형으로 이루어진 유백광의 글라스와 백색 받침으로 구성됐다.
7 새의 병(Ornis Vase)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오펄레슨트 글라스(opalescent glass) 꽃병이다.
8 소용돌이 물결(Tourbillons Vase)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 황금빛 찬란한 기하학적 문양이 강한 인상을 준다.
9 기하학적인 묘사로 새들을 반복적으로 장식해 큰 볼(bowl)을 형성했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아르데코를 빛낸 유리 예술가 르네 랄리크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아르데코를 빛낸 유리 예술가 르네 랄리크

김재규 _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