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ucina

레스토랑의 성패는 오픈한 지 3년 안에 판가름 난다는 얘기가 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쿠치나(La Cucina)’는 20년간 한자리에서 ‘같은’ 손님들을 맞고 있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라 쿠치나를 찾았다. 테라스 유리창으로 감상하는 남산의 눈 내리는 풍경은 이탈리안 퀴진이 서브되기 전 애피타이저로 충분했다.
[Gourmet Report] 정재계 VIP들이 사랑한 이탈리안 퀴진
필자의 기억 속에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7년 전 쯤이었을까. 지인에게 끌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스테이크 하우스를 찾은 적이 있다. 예약도 받지 않으니 서둘러야 한다는 그의 얘기에 아침부터 일찌감치 꽤 먼 거리를 운전해 가며 속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평을 감출 수 없었다.

1시간쯤 달려 도착했을까. 멀리서 봐도 한눈에 ‘오래됐구나’ 하는 느낌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스테이크 하우스는 이름도 심플하기 그지없었다.‘더 스테이크 하우스.’ 레스토랑 꼭대기에는 성조기가 날리고 있었고, 입구 대기석은 시니어들(우리말로 하자면 ‘어르신’쯤 되겠다)이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순서를 기다려 입장(?)한 실내는 더욱 놀라운 광경이었다. 엄청나게 넓은 레스토랑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시니어들이었던 것. ‘나 스테이크요~’ 하며 보란 듯이 두꺼운 스테이크를 잘라 입 속으로 넣는 그들의 행복한 표정에 “이 집에 몇 년 다니셨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40년” 또는 “50년”이 보통이었다.
[Gourmet Report] 정재계 VIP들이 사랑한 이탈리안 퀴진
20년 ‘장수’ 비결은 ‘트래디션’

맞다, 음식 장사의 ‘정답’이다. 100년이 넘도록 단골들이 먹을 때마다 ‘원더풀’을 외칠 수 있는 맛과 서비스. 그 어떤 고급 소재 인테리어보다 빛이 나는 이유다.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 맞은편에서 20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는 ‘라 쿠치나’는 강남의 모던한 고급 레스토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100여 평의 실내 곳곳에 놓인 앤티크 가구와 안주인의 솜씨를 눈치 챌 수 있는 분재와 화분들이 여느 집 다이닝 룸 분위기에 가깝다.

1990년에 오픈했으니 벌써 20여 년. 아버지와 찾던 곳을 자식까지 대동해 3대가 찾는다는 라 쿠치나만의 분위기다. 20여 년 전 만해도 서울 시내에 제대로 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몇 군데 없었다.

강남이 지금 같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 더구나 VIP들의 출입이 잦은 남산 하얏트호텔에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없었다. 자연 호텔 바로 앞에 문을 연 ‘라 쿠치나’는 입소문을 탔다. 그 시절 ‘하려면 제대로 하자’며 이탈리안 셰프까지 주방으로 모셨으니 정재계 인사는 물론 외국인 손님들이 물어물어 찾아오더란다.

20년이 흘러 “맛있는 파스타 달라”던 심플한 손님들은 “면발은 이렇게, 소스는 이렇게, 고기는 이렇게 구워 달라”며 디테일하기 그지없는 ‘미식가’들로 변했다지만, 라 쿠치나의 고집은 변치 않았다. 이탈리안 퀴진의 ‘전통’은 유지하면서 한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한 적절한 ‘현지화’다.

여기에 또 하나. 혹자는 ‘촌스럽다’고 평하겠지만 20년간 유지해 온 ‘우리 집 다이닝룸 같은’ 아늑한 분위기다. 트렌디하지 않다고 폄하할 수 없는 가치. 한우 안심 스테이크를 씹으며 오래전 추억도 함께 곱씹어보는 것도 꽤 괜찮은 맛일 게다.
[Gourmet Report] 정재계 VIP들이 사랑한 이탈리안 퀴진
역대 대통령들이 찾은 맛집

“라 쿠치나가 그렇게 유명하냐”고 묻는 이에게 “최근 20년간 한 사람을 제외한 전직 대통령들, 국내 재계 회장님들, 전 미국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와 마들렌 올브라이트, 월드컵 국민스타 거스 히딩크 감독 등이 다녀갔다”고 한다면 충분한 대답이 될지.

이명박 대통령도 가끔 찾는다는 얘기에 자주 찾는 메뉴를 물었더니 ‘별 다른 것 없이 평범한 메뉴들’이란다. 자, 이제 유명 인사들을 사로잡았다는 그 ‘평범한’ 맛을 탐색할 차례. 모 그룹 회장이 좋아해 일명 ‘회장님 스테이크’로 불리는 한우 안심 스테이크가 기다리고 있다. 장성한 남자 주먹처럼 두툼한 스테이크를 자르자 육즙이 자르르 새어나온다. 씹어 보니 담백하다. 기름기 싫어하는 중년 여성들과 회장님들의 단골 메뉴란다.

한우가 주는 행복감에 푹 빠져 있을 때 자매 레스토랑인 위층의 스테이크 하우스 ‘더 그릴(라 쿠치나는 지하 1층)’ 주방에서 스테이크 두 가지가 더 공수됐다. 손바닥보다 큰 스테이크 접시 세 개를 앞에 두니 황제가 따로 없다.

스테이크는 두텁지만 살은 야들야들하고 씹을 때마다 고깃살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육즙이 혀를 호강시키는 ‘와규 립아이 스테이크’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체면은 잠시 내려놓고 질근질근 씹어보기를 권한다.

점심 메뉴로 스테이크가 웬 말이냐는 사람이라면 ‘그란키오(Granchio)’가 강추 아이템. 하우스 메이드 판체타와 홍합을 곁들인 소스가 일품이다. 느끼한 크림스파게티는 잊어라. 매콤한 토마토소스와 함께 씹히는 바닷가재 살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할 것 같다.

첫맛은 톡 쏘지만 씹을수록 크리미해지는 오징어 먹물 리조토는 별식으로 좋겠다. 18명의 주방(‘라 쿠치나’는 주방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식구들이 선사하는 작품(요리)의 세계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질의 일명 ‘회장님’ 스테이크. 클래식 스타일의 한우 안심 페퍼 스테이크로 라 쿠치나의 스테디셀러다.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질의 일명 ‘회장님’ 스테이크. 클래식 스타일의 한우 안심 페퍼 스테이크로 라 쿠치나의 스테디셀러다.
갑오징어 살을 곁들인 오징어 먹물 리조토 네로(Risotto Nero). 첫맛은 살짝 쏘는 듯하지만 씹을수록 크리미해지는 맛이 독특하다.
갑오징어 살을 곁들인 오징어 먹물 리조토 네로(Risotto Nero). 첫맛은 살짝 쏘는 듯하지만 씹을수록 크리미해지는 맛이 독특하다.
복주머니 모양 패스트리에 넣어 구운 부라타 치즈, 토마토와 파프리카 소스가 어우러진 부라타 알라 파냐(Burrata Alla Panna)
복주머니 모양 패스트리에 넣어 구운 부라타 치즈, 토마토와 파프리카 소스가 어우러진 부라타 알라 파냐(Burrata Alla Panna)
꽃무늬가 유난히 많은 라 쿠치나 실내. 앤티크한 느낌으로 일반 가정집 다이닝룸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는 20여 년간 유지돼 온 라 쿠치나만의 콘셉트다.
꽃무늬가 유난히 많은 라 쿠치나 실내. 앤티크한 느낌으로 일반 가정집 다이닝룸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는 20여 년간 유지돼 온 라 쿠치나만의 콘셉트다.
20여 년간 ‘라 쿠치나’를 필두로 현재 9개의 외식 브랜치를 경영하고 있는 장세훈 사장
20여 년간 ‘라 쿠치나’를 필두로 현재 9개의 외식 브랜치를 경영하고 있는 장세훈 사장
[Gourmet Report] 정재계 VIP들이 사랑한 이탈리안 퀴진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