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해가 바뀌는 것은 지구의 공전주기이므로 쉽게 감지되지는 않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경험적 인식이 가능하다. 그에 비해 주일이나 양력의 달은 완전히 인위적인 시간의 경과를 나타낸다(즉 애초에 한 주일을 10일로 정하거나 한 달을 20일로 정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보면 2010년 12월 31일과 2011년 1월 1일의 차이는 자연적인 시간의 경과지만 어찌 보면 인위적인 성격이 강하다. 지구의 공전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어느 날을 한 해의 출발점으로 삼을지는 순전히 자의적 결정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고대 켈트족의 달력은 지금의 달력으로 치면 11월 1일이 한 해의 시작이었다).
2010년 12월 31일보다 2011년 1월 1일이 훨씬 더 추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우리 몸이 팍 늙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달력을 바꾸어 걸었다는 느낌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은 달력을 돈 주고 사는 사람도 드물고, 대기업에서 특별히 만드는 이른바 VIP 달력을 제외하면 누가 거저 준다고 해도 그다지 반가울 게 없지만, 알고 보면 달력에는 만만치 않은 역사가 숨어 있다. 일단 천문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달력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달력의 원래 기능은 날짜를 확인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천체의 운동을 잘 관찰해야 하는데,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급 지식이기도 했거니와 감히 하늘의 움직임을 알려고 하는 것은 일반 백성에게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달력은 국가가 성립하는 데 필수적 요소였다. 흔히 고대 국가의 기원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영토의 확정,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군대 등을 꼽지만 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달력이다. 달력이 없으면 정치와 행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이 없다면 어느 달 어느 날에 관리들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원정을 위해 군대를 소집할지 결정할 수 없다. 심지어 왕의 생일이나 결혼식 같은 국가적 주요 행사의 날짜가 언제인지도 확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지배자와 백성, 군대가 고대 국가의 하드웨어라면 달력은 중요한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동양의 중화 문명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중국 황제가 해의 이름(연호)을 정하고 주변의 속국들에 중화의 달력을 강요했다. 한반도의 경우에는 674년 신라 문무왕이 중국의 달력을 수입한 것이 공식적인 달력의 시작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고대 삼국이 엄연히 국가로서 존재했던 만큼 자체의 달력이 있었지만 후대에 전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제의 역학자와 승려가 일본으로 건너가 달력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달력을 함께 쓴다는 것은 같은 문명권, 나아가 공통의 정치·사회 체제를 가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중국 달력을 쓴다는 것은 곧 중국적 질서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 달력을 수입함으로써 한반도 역사에서 본격적인 사대주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674년은 ‘사대주의 원년’인 셈이다. 신라 왕실의 사대주의화는 사실 그전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648년 진덕여왕 시절에 신라는 자청해서 중국의 의식(儀式)을 따르기 시작했고 왕을 비롯한 모든 관리들이 중국식 옷을 입게 된다.
삼국통일을 이룬 뒤에는 급기야 달력마저 중국에서 수입하게 된 것이다(8세기에는 지명까지 중국화됐는데, 오늘날 전주나 진주처럼 ‘州’자가 붙은 도시 이름이 이때부터 비롯됐다).
중국의 제국체제가 최종적으로 무너지는 20세기 초까지 한반도 역대 왕조들은 모두 중국 달력을 사용하게 된다. 역사의 기록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18세기에 성립된 판소리에도 해를 셈하는 단위로 중국의 연호가 사용됐다.
거꾸로 말해 중국식 달력을 쓰지 않았다면 주체적 역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사례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8세기 중반부터 중화 문명권에서 벗어나 자체의 달력과 연호를 사용했다.
당시 중국의 당나라가 쇠미(衰黴)의 징후를 보이자 일본은 기민하게도 견당사(당에 파견하는 사절)를 뚝 끊어버리고 당풍(唐風)을 국풍(國風)으로 바꾼다. 이 시기에 일본 문자인 가나와 일본 토착 문학인 모노가타리가 탄생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일본은 그 뒤부터 달력도 독자적인 천황의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와 일본의 달력이 달랐던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 예는 16세기 말의 임진왜란이다. 당시 한반도,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3국이 모두 관련된 전쟁이었으나 명칭은 각기 다르다. 독자적 연호를 쓰지 못했던 조선은 간지를 이용해 그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기록했지만, 중국사에서는 ‘만력(萬曆·당시 명나라 황제 신종의 연호)의 역(役·전쟁)’, 일본사에서는 ‘분로쿠(文祿·당시 일본 천황의 연호)의 에키(役)’라고 각기 다르게 부른다.
서양의 역사에서도 달력은 정치,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고대 로마의 지배자 카이사르가 수백 년간 누적돼온 태양력의 오차를 한번에 해소하고 율리우스력을 만든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꿈꾸던 제위에 오르기 직전에 암살당했지만 정치적 후각이 남달랐던 카이사르는 로마의 원시적 공화정을 제국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달력의 제정이 시급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양아들로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이름(율리우스·영어의 July)을 7월의 이름으로, 원로원이 자신에게 수여한 존칭(아우구스투스·영어의 August)을 8월의 이름으로 만들었다.
그런 탓에 뒤의 달 이름들은 두 달씩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는데, 언어적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 9월, 10월, 11월, 12월의 어근인 sept, oct, nov, dec는 각각 7, 8, 9, 10을 가리킨다.
달력이 서양의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은 중세 내내 여러 차례 소집된 공의회에서 확인된다. 공의회는 원래 종교적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였으나 달력을 정비하는 것도 늘 주요 안건이었다. 무엇보다 성인들의 축일을 확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으뜸은 물론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 즉 부활절의 날짜를 확정하는 일이었다(18세기까지도 그리스도교권에서 부활절은 성탄절보다 중요한 축일이었다). 그게 뭐 어려운가 싶겠지만 부활절의 ‘정의’를 보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일요일이 부활절의 공식적 정의인데, 춘분은 양력이고 보름은 음력인 데다 요일이라는 자의적 기준까지 포함되므로 날짜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탓에 오늘날까지도 부활절 날짜는 매년 달라질 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사이에도 여전히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중세 공의회에서 부활절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진 덕분에 유럽 세계에서는 천문학과 수학이 크게 발달했으며, 율리우스력이 개정돼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그레고리력이 탄생했다.
옛날에는 그랬어도 지금은 누구나 똑같은 달력을 쓰는데 달력이 뭐 중요할까.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달력은 예나 지금이나 주권국가의 상징이다. 서기 2011년은 단군기년으로 보면 4344년이고, 공자기년으로는 2562년이며, 불기(佛紀)로는 2555년, 이슬람력으로는 1390년에 해당한다.
또 북한에서는 서력기원과 더불어 김일성의 탄생 연도를 기점으로 하는 주체력도 사용하는데, 이에 따르면 2011년은 100년이 된다. 달력만으로 따진다면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모든 나라는 기독교 문명권의 속국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해를 셈하는 것만이 아니라 1년을 12달로, 한 주일을 7일로 나누는 것도 모두 서양의 달력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의 달력을 가져다 쓴 탓에 우리 역사에는 수십 일간의 공백이 있다. 1895년 조선의 고종은 일본의 압력으로 양력을 사용하기로 하고 그해의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고쳤다. 문제는 그 때문에 1895년 11월 18일부터 그해 말까지의 날들은 우리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기간’이 됐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1895년 11월 25일에 한반도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1895년 12월 7일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달력의 주권이 없었던 탓에 빚어진 이 웃지 못 할 역사의 공백은 앞으로도 영원히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 및 번역가 dimeol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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