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와인들은 어떤 루트로 거래될까. 투자용 와인을 구매하는 루트는 소매용 와인의 구매 루트와 차이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앙 프리뫼르(En Primeur)라는 독특한 제도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식적으로 앙 프리뫼르는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 크뤼 와인(Grand Cru Wine)연합회가 주관하는 와인 선물 시장의 명칭이다. 고급 와인들은 최소한 2년에서 3년 또는 길게는 5년이 경과해야 시중에 나온다.

하지만 병에 담겨지기 훨씬 전 그러니까 아직 오크통에서 숙성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가 시작된다. 병입 전에 거래되는 거래 과정을 앙 프리뫼르라고 한다.
[와인 재테크] 고급 와인의 구매 루트
해마다 열리는 이상한 와인 장터, 앙 프리뫼르

해마다 3월 말에서 4월 초 전년도 가을에 수확한 와인으로 시음용 와인을 만들어 전문가들에게 시음시킨다. 3월 말까지 시음하는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파커나 영국의 잰시스 로빈슨 같은 와인 전문 비평가들이고, 4월 초부터는 네고시앙(Negociant)과 와인 수입상들이 시음하게 된다.

이때 시음 결과에 따라 주문 수량만 결정하고, 가격은 미확정 상태로 남겨두었다가 5월에서 6월 늦으면 7, 8월에 샤토 주인이 가격을 결정해 통보한다.
[와인 재테크] 고급 와인의 구매 루트
나중에 통보되는 와인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해서 주문한 수량을 철회하는 경우는 없다. 주문한 수량은 전량 소화되고 가격은 그냥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앙 프리뫼르는 내년에도 또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금은 9월에서 10월 사이에 납부된다.

그럼 대금을 송금할 때 와인을 전달받는가. 천만의 말씀! 와인은 열심히 숙성되고 있으므로 그로부터 1년 내지 2년 숙성된 이후에 전달받게 된다. 주문한 수량을 철회하는 고객도 없고, 물건을 받아야 돈을 주겠다고 하는 고객도 없다. 이런 독특한 거래 방식에 따라 고급 와인은 지난 150년 이상 거래되고 있다.

샤토는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농장주를 뜻한다. 일정한 구역 내에 포도밭과 양조시설, 와인 보관시설 그리고 인부들과 주인댁을 위한 주거시설이 완비돼 있는 곳을 샤토라고 부른다. 고급 와인의 경우 ‘샤토’라는 명칭이 많이 들어 있다.

샤토에서는 고급 와인 전문 브로커인 쿠르티에(Courtier)를 통해 와인 도매상인 네고시앙에게 와인을 넘긴다. 네고시앙은 다시 자국 내 도매상이나 소매상, 외국의 와인수입업자에게 와인을 넘기게 된다.

그럼 이번에는 앙 프리뫼르 거래의 시간적 배열을 알아보기로 하자. 2009년도 와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2009년도 와인이라 하면 2009년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말하는 것이므로 2009년 9~11월 사이에 수확한 포도로 오크통, 스테인리스 통, 시멘트 통 등에서 숙성시키다가 2010년 3월 말이 되면 앙 프리뫼르용 와인으로 병입해 전문가들이 시음을 하게 된다.

로버트 파커나 잰시스 로빈슨 같은 와인 시음 전문가들은 3월 마지막 주에 특별히 그들만을 위해 제공된 햇와인을 시음한 후 곧바로 시음노트(tasting note)를 작성해서 e메일,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잡지사와 와인 애호가들에게 전달한다. 이때 처음으로 그해 와인에 대한 평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이후에 4월 첫 주가 되면 네고시앙들과 자국 내 와인 도매상, 해외 와인 수입업자들이 앙 프리뫼르에 참여해 햇와인을 시음하고 이전에 시음했던 전문가들의 시음노트와 비교한 후 나름대로 시음노트를 작성, 주문할 수량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나오는 앙 프리뫼르 와인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보르도 내 메도크지구의 샤토 숫자만 6000개 정도가 된다. 그중에서도 품질이 우수한 곳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곳이 500여 개 정도 되는데 이 중에서도 대략 170여 개 정도의 샤토만이 앙 프리뫼르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앙 프리뫼르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는 대략 170여 개의 샤토에서 나오는 와인을 시음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170여 개 샤토가 참여하는 와인 시음회
[와인 재테크] 고급 와인의 구매 루트
앙 프리뫼르 와인을 시음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일단 시음해야 하는 와인의 숫자에 압도당하는 행사다. 170여 개의 샤토가 앙 프리뫼르에 와인을 내놓게 되는데 샤토당 한 개의 와인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여러 브랜드를 다 시음하도록 한다. 대략 네 가지 브랜드를 시음한다고 했을 때 680개의 와인을 시음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앙 프리뫼르 주간의 근무일수 5로 나눌 경우 하루에 136개의 와인을 시음해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앙 프리뫼르는 보르도 시내 한 군데에 모여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샤토에서 진행되기도 하고 여러 샤토들이 연합해 한 샤토에 모여서 진행되기도 하는데 그건 해마다 다르다.

결국 하루종일 바쁘게 보르도의 여러 샤토들을 돌아다니면서 와인을 시음해야 한다. 하루에 수십 가지의 와인을 시음하면서 그 와인을 다 마시면 알코올에 취해서 와인 맛을 구분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매번 입속에 넣고 우물거리거나 후루룩거리다가 내뱉어야 한다.

그리고는 바게트 한 조각으로 입 안에 남은 와인을 걷어내고는 다시 다른 와인을 시음하고 또 뱉어내고 시음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검게 착색된 치아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가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 것 같다. 투자 대상이 되는 와인은 고급 와인 8개 정도인데 무슨 와인을 이렇게 수백 개씩 시음해야 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앙 프리뫼르에 참가하는 모든 네고시앙이나 해외 와인 수입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고급 와인의 확보다. 하지만 샤토에서 물건을 떼다 네고시앙에 넘기는 쿠르티에들이 1등급 샤토의 와인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일정 수량의 2~5등급 샤토의 와인 또는 그 이하의 와인을 함께 공급받으라고 강요한다.

샤토 무통 로트칠드 한 박스를 사기 위해서는 2~5등급 와인 100박스를 함께 사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니 1등급 샤토의 와인만이 아니라 다른 등급의 와인들도 반드시 시음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국내에 있는 와인 애호가가 앙 프리뫼르에 참여해 와인을 구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상 개별적으로 이 시장에 진입하기는 불가능하고 와인 수입업자에게 위탁해 진행할 수밖에 없다.
[와인 재테크] 고급 와인의 구매 루트
이를 대행하는 회사는 신동와인, SK네트웍스 등이 있다. 해마다 앙 프리뫼르가 시작되기 전에 고급 와인 전문 수입사에서는 와인 애호가들을 위해 앙 프리뫼르 구매 대행을 접수받고 있다.

매년 3~4월 열리는 앙 프리뫼르에는 많은 와인 구매자들이 몰린다. 투자용 와인의 구매 루트를 얻기 위해서는 앙 프리뫼르라는 독특한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김재현 SC제일은행 잠원PB센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