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균열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미주경제권,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경제권,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경제권 간의 견제와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모기지 사태 이후 세계 경제 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올해를 기점으로 이들 3대 광역경제 간 연계 움직임이 재개될 조짐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G20 회담 이후 세계 질서 3대 광역경제권과 3극 통화체제로 재편될 듯
국제통화질서도 달러화와 유로화, 위안화를 축으로 하는 3극 통화체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달러화와 위안화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환율전쟁이 좀처럼 해결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전 세계를 하나의 화폐로 통용시키자는 세계단일통화 도입 논의가 일고 있어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라틴어로 ‘지구’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테라(Terra)와 달러화의 사용 범위를 넓히는 달러라이제이션, 유로화 도입을 모델로 한 글로벌 유로화 등이 그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위기 이후 상품과 돈의 흐름에 ‘공정한 경쟁의 틀(level playing field)’이 다시 마련되면 될수록 위기 이전과 다른 것은 각국 간의 성장에 있어서는 차별화(nifty fifty)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위상이 급부상하고 있는 국가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무엇보다 거시정책 기조가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하는 국가일수록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상대적으로 분배 요구와 노조가 강한 국가는 성장률이 낮은 점이 눈에 띈다. 또 경제운영 원리로 위기 과정에서 커졌던 정부의 간섭은 최소한에 그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주체들에게 창의와 경쟁을 최대한 북돋우는 국가일수록 고성장한다.
인구수가 많고 경제연령을 젊게 유지하는 중국, 인도 등과 같은 국가일수록 성장세가 빠르다.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인구 면에서 갖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하는 국가도 비슷한 성장세를 유지한다. 요즘처럼 공급 과잉시대에 있어서는 한 나라의 성장은 시장규모와 상품 흡수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존자원이 많은 국가들도 성장률이 높다.
산업별로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과 모바일 산업에 강한 국가가 자원부족 문제를 메워줄 수 있기 때문에 성장세가 빠르다. 한 가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것은 한국처럼 제조업을 받쳐주지 않을 경우 경기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점이다. 제조업과의 균형 문제가 점차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 이후 경영과 금융 환경은 ‘세계=국가=기업=개인’으로 대변되는 질서 정착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걷히면서 세계 모든 기업들이 고성장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세계 경영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생산거점을 가장 싼 지역으로 옮기거나 인력, 자본, 자원 등을 가장 싸고 효율적인 지역에서 아웃소싱할 수 있어야 국제 분업상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기업 생존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세계 각국 간에는 국경 개념이 약화되면서 ‘세계=국가=기업’이라는 등식이 빠르게 정착되고 있는 것이 위기 이후 경영 환경이다.
세계 산업구조도 정보, 통신과 같은 첨단기술 업종이 국부 창출의 주력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적 요소가 노동, 자본에서 지식과 정보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메인(domain)’ 경쟁력이 위기 이후 새로운 국가경쟁력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세계인의 생활도 인터넷과 모바일이 현실공간으로 정착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전자화폐가 확산되면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간 혹은 소득 간 차별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위기 이후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동시에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크게 제고되면서 그동안 위기요인으로 작용했던 도덕적 해이 현상이 급속히 줄고 있다. 반면 개인의 비밀 보호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짐에 따라 정보 유출과 이에 따른 개인의 사생활 보호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어 향후 규제 움직임이 주목된다.
경제 권력도 국가에서 민간으로 이동되면서 경제정책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앞으로 개방화·사이버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경제정책의 무력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신 경제운용 원리로 시장경제가 보다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이나 개인들도 과거처럼 규모나 겉치레보다는 가치와 수익, 전문성 위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구조가 정보통신과 같은 지식산업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소득도 근로자에서 지식인과 대주주로 옮겨가면서 빈부 격차가 커다란 사회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경제성장의 동인(動因)으로 조직보다는 개성과 개인이 중시되면서 솔로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도 이른바 ‘η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계층에 의해 주도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경제도 선진국 체질로 빠르게 정착되는 분위기
이처럼 위기 이후 대내외 경영과 투자 환경 패러다임이 변한 만큼 기업과 금융사들이 올해는 이런 추세에 맞춰 경영 전략을 짜는 첫해라 볼 수 있다. 먼저 국내 기업과 금융사들은 여러 전략 가운데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국제 분업상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글로벌 아웃소싱’ 능력 확보를 가장 절실한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기업과 금융사들이 글로벌 아웃소싱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계 보편적인 질서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 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뉴 라운드와 같은 다자채널에 적극 부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교역상대국과의 지역블록 혹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나가는 이원적 전략(two-track strategy)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한 나라에 국한된 경영 전략은 효용이 없어짐에 따라 기업과 금융사 경영도 다른 국가 혹은 외국 기업과의 조화(調和) 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 이를테면 각종 관행과 기준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글로벌스탠더드인 ‘뉴 노멀(new normal)’에 부합되게 손질한다든가, 앞으로 갈수록 브랜드 이미지가 중시됨에 따라 기업명이나 기업을 상징하는 로고, 상품명도 뉴 노멀 시대에 맞게 바꾸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기업과 금융사 경영도 지식산업 시대에 있어선 될 수 있는 대로 종업원 자율에 맡겨 창의력을 최대한으로 북돋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정책당국자와 최고경영자(CEO)일수록 모든 규제는 국가나 기업, 개인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경제범(經濟犯)’이라는 자세에서 바라봐야 한다.
지식산업으로의 업종 전환과 함께 기업과 금융사들의 생존 역량은 종전처럼 범위나 규모보다는 위기관리 능력에서 찾을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를 미리 확보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기업과 금융사 차원에서 환율, 금리와 같은 예측력을 높이고 가격변수 움직임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을 내부화(interalized)해야 한다. 국제재무 전략도 함께 갖춰 놓으면 금상첨화다. G20 회담 이후 재테크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멀리 보는 눈’을 길러야
최근에는 근로자의 정년이 실질적으로 45세 전후로 앞당겨졌다. 우리나라 노동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3대 그룹의 경우 초임 임원의 평균 연령이 45세 전후로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반면 평균 수명은 길어져 지금 한창 일할 40대 중반의 경우 90세까지는 무난히 살 수 있다는 것이 관련 기관의 견해다.
그런 만큼 이제는 길어진 삶의 주기를 풍요롭게 살기 위해 종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바로 교육이나 자기계발(HRD)을 통해 직업의 귀천이 없이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가수 비나 이효리처럼 한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면 보통 사람들이 생애에 걸쳐 벌 수 있는 소득을 불과 몇 년 만에 벌어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또 보통 사람의 경우 이제는 재교육이 필수적이다. 젊었을 때 받은 공교육을 통해 은퇴 이전의 삶과 은퇴 이후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자금은 재교육을 통해 은퇴 이후에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현상은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 일부 미국 대학의 경우 MBA 과정에 등록하는 사람 가운데 40세 이후 학생의 비율이 30%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부동산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처럼 상속세와 증여세가 높아져 물려준 부동산이, 자식들의 길어진 삶의 안전판(safety valve) 기능이 떨어진 시대에 있어서는 현 세대에서 어렵게 마련한 부동산은 역모기론 등을 통해 부족한 노후 자금을 보충하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대신 자식들에게는 소득을 벌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 주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
소득원도 늘릴 필요가 있다.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한 사람이 두 개의 직업(two jobs)을 갖거나 한 가정 내에서 그동안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가구원이 참여하는 방안(blue ocean)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념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소득원에 참여할 경우 본업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다른 소득원에 참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본업을 소홀히 해 궁극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새로운 삶의 주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재테크가 필수적이다. 종전의 방식대로 임금이나 다른 소득으로 새로운 삶의 주기에 필요한 재산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어떤 식으로든 마련한 종자돈을 굴려야 한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있어서는 저축만 갖고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개인 차원에서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갈수록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경기 상황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안정돼 있는 시대에 있어서는 저금리 국면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테크 시장에 대해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적게 갖고 있는 사람들의 돈을 따는 시장이라 말한다. 이 차원에서 보면 개인들이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주식·부동산 투자를 쉽게 생각하지만 외국인이나 기관투자가에 비해 정보 취득이나 취득한 정보의 질적인 차이를 감안하면 돈을 번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방안보다는 중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재테크 수단별로 적기에 갈아타는 방안이 돈을 벌 가능성은 높다. 흔히 주식은 위험자산, 부동산은 거품에 가장 민감한 자산, 채권은 안정자산이라 부른다. 이 때문에 경기 회복 초기에는 주식을, 경기 회복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채권으로 갈아타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개인 차원에서 경제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특히 우리와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에서는 미국, 중국 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만큼 재테크의 안목을 나라 밖으로 넓히는, 글로벌 재테크도 필요한 시점이 됐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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