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발병 전까지 그는 건강에 자신이 있었노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한 까닭에 남들보다 체력이 뛰어났고, 타고난 풍채 역시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건강에 대한 이런 무조건적인 확신과 자만을 비웃으며 찾아온 것이 암이었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불러온 대장암
홍 원장이 대장암 판정을 받은 것은 2001년. 어느 날 갑자기 대장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술을 위해 정밀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신장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됐다. 그나마 한 곳에서 전이된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암세포가 자랐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 그 같은 사실은 큰 위안이 되지 못했다.
“두 가지 암 중에서 더 심각했던 건 대장암이었어요. 잘못된 식습관이 대장암을 불러온 거죠. 그때까지 육식 위주로 밥을 먹었거든요. 제 고향이 전주인데, 대학을 가고 객지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의 건강한 밥상과 멀어진 거죠. 하루걸러 술자리가 이어졌고, 대부분의 술자리가 고깃집에서 이루어졌어요. 거의 40년 동안 고기를 주식으로 삼은 겁니다. 돌아보면 그게 화근이 된 겁니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은 대장암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기름진 음식, 육식 위주의 식습관은 각종 암세포 발생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육식과 기름진 음식이 암세포화를 촉진하는 활성물질을 몸 안에 만들고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그라고 기름진 음식과 고기가 나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습관이 그의 건강을 망쳐 놓았고, 그 결과 암세포가 몸속에서 자란 것이었다.
담당 의사는 5~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무겁게 입을 뗐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집안에 유달리 의사가 많은 덕에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친척들은 미국에서 수술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다. 문제는 그 뒤였다. 그는 항암 치료는 안 겪어본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고 했다. 의사인 그도 겪어보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암을 이기는 데 큰 힘이 된 청국장
항암 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식욕 감퇴와 구토 증상이다. 항암 치료 중에는 어떤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줘도 입에 대지 못한다. 그는 차라리 안 먹는 게 낫다고 느낄 만큼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게 힘겨웠노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렇다고 음식을 안 먹을 수도 없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암 투병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체력을 보강할 수 없다.
“이주일 씨도 암 때문에 죽은 게 아니거든요. 항암 치료 과정에서 면역력이 떨어져서 돌아가신 겁니다. 그만큼 암환자에게 먹는 게 중요합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못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조기찌개도 한 숟가락 넘기기가 힘겨웠어요. 어쩌다 한 숟가락이라도 넘기면 불난 집 안에서 숨을 쉬는 것보다 괴로웠습니다.”
목으로 넘어간 음식은 대못처럼 식도를 긁어내렸다. 통증을 참고 겨우 삼켰다 싶으면 위가 요동을 치면서 구토가 일어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 탓에 건강하던 체구는 나날이 줄어들어 15kg 가까이 체중이 줄었다.
고통의 나날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햇살처럼 나타난 것이 청국장이었다. 그도 그였지만 그걸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특히 항상 노심초사하는 아내를 볼 낯이 없던 그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됐다. 그때 떠오른 것이 청국장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따뜻한 아랫목에서 삭힌 후 뚝배기에 팔팔 끓여내던 청국장의 맛이 그리웠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어머니의 손맛과 거의 같은 청국장이 그의 앞에 놓였다. 아내가 시골 이모에게 부탁해 만든 청국장이었다. 어머니 손맛이 담긴 청국장을 보는 순간 그의 입에 군침이 돌았다. 한 숟가락을 떠 넣었는데 몸은 큰 무리 없이 청국장을 받아들였고, 구토도 이전에 비해 훨씬 덜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그는 청국장을 먹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청국장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 그는 암 투병 내내 청국장을 달고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청국장은 고통의 완화를 원하는 육체의 본능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후에 본격적으로 청국장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입덧이 심한 임신부나 숙취로 속이 더부룩한 사람이 엷게 끓인 된장국이나 청국장 등 콩을 발효시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속이 안정된다고 한다.
120세까지 살 수 있는 33가지 방법
“발효식품은 최고의 음식입니다. 세계가 인정한 5대 음식이 뭔 줄 아세요. 첫째가 우리의 김치입니다. 둘째가 스페인의 올리브유, 셋째가 그리스의 요구르트, 넷째가 인도의 빈딜콩, 다섯째가 일본의 낫토입니다.
그런데 낫토보다 좋은 게 우리의 청국장입니다. 그렇게 보면 세계 5대 음식 중에 우리 것이 두 개나 들어있어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청국장 덕에 무사히 항암 치료를 끝낸 그는 그 후 두 달을 미국 교외에 사는 동서의 집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신선한 채소를 먹고 틈나는 대로 플로리다 해변을 걷거나 뛰었다. 그러자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좋아졌다.
그는 그때의 기분을 “봄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듯이 몸에 생기가 차올랐다”고 표현했다. 삶에 대한 희망과 희열을 맛보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그는 어떤 것이 최고의 음식이고,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틈틈이 건강에 대한 강의를 하고, 청국장을 중심으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찾는 데 힘을 쏟았다. 2005년 나온 <청국장 100세 건강법>이란 책은 그 중간 보고서 격이다. 현재 그는 최종 보고서인 <120세까지 살 수 있는 33가지 방법>(가제)을 쓰고 있다.
“33가지 방법 중 11가지는 청국장, 가지, 고구마, 수박 등 몸에 좋은 음식입니다. 수박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모르죠. 콩팥을 청소하는 데 수박만한 게 없습니다. 저는 여름에 20통 정도의 수박을 먹습니다. 가지는 또 어떻고요. 다른 11가지는 걷기 등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거고, 나머지는 정신건강입니다. 섹스나 긍정적인 생각 같은 게 여기 포함되는데, 이게 건강을 지키는 데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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