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와인 매너] 전통 후식과 디저트 와인
한국은 레드 와인의 나라다. 그만큼 레드 와인의 소비가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 등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전통 후식과 어울리는 디저트 와인을 소개한다.

보통 와인이 시장에 정착할 때 양상을 본다면 마시기 쉬운 화이트 와인이 주종을 이루다가 서서히 레드 와인의 비율이 높아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작년에 비로소 70%로 비중이 떨어지긴 했으나, 와인 시장이 급성장하던 2004년부터 쭉 전체 수입 와인 비중의 80% 가까이를 레드 와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와인 애호가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이다. 비즈니스 등의 이유로 와인을 접하는 이들이 주로 남성이고, 이들 대부분은 알코올 농도가 높고 강한 맛의 레드 와인을 선호한다.

또 하나 레드 와인이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것도 한 몫을 했다. 2003년 뉴욕 타임스는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레드 와인을 꼽았고, 같은 해 국내 모 TV 프로그램에 레드 와인이 특히 건강에 좋다고 방영됐다.

이후 와인 하면 으레 레드 와인을 찾게 됐다. 또 하나 2004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와인 시장의 대중화를 불러온 칠레가 레드 와인의 강국이었다는 점도 레드 와인 강세에 적잖이 기여했다.

다양한 컬러의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

앞서 잠시 말했듯 작년부터 레드 와인의 비중이 조금씩 낮아지면서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로제 와인 등 다양한 컬러의 와인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옮겨가기 시작하고 있다. 지향하는 맛도 천편일률적이던 ‘풍부한 과일 향에 강한 알코올’에서 보다 다양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를 보자. 모스카토 다스티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아스티 지역에서 나오는 전통적인 화이트 와인이다. 5% 내외의 낮은 알코올감과 풍부한 과일 향, 그리고 아주 달콤한 맛에 스파클링 와인보다는 약한 버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스카토 다스티는 2008년부터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더니 작년에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다수의 모스카토 다스티 와인들이 할인점 등에서 판매 순위 상위를 차지했다. 모스카토 다스티의 열풍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작년 와인 수입 통계를 보면 레드 와인은 줄어드는 대신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의 비중이 늘어났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샴페인 등 스파클링 와인은 작년 수입 물량 축소에도 홀로 20% 이상 수입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와인 시장의 다양성은 환영할 일이다. 다양성은 곧 시장이 활기를 띤다는 것이고 이는 와인을 즐기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와인은 새로운 소비층을 유입하는 데도 그만큼 유리하다. 앞서 예를 든 모스카토 다스티 덕에 여성 와인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와인 종류가 대두되고, 와인을 마시는 세대와 성별도 확대됐으니 이제 우리도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이달의 마리아주 제안은 평소 최고경영자(CEO)들이 잘 접하지 않았을 종목으로 골라본다. 바로 ‘전통 후식과 디저트 와인’이다.

아마도, CEO들에게 가장 낯선 와인 종류가 바로 디저트 와인일 것이다. 디저트 와인은 단맛이 강한 것이 대부분인데 보통 남성들이 단맛을 즐기지 않으니 자연 비즈니스 모임에서도 디저트 와인은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자리(정찬, 만찬,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디저트와 디저트 와인이니만큼 그 자리의 기억을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일 수 있다.

동시에 ‘단지 달콤하다’라고 인식되는 스위트(디저트) 와인의 맛과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그 맛과 후식을 어떻게 매칭하는가에 따라 호스트의 와인 수준과 센스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골프에서 18홀 이후의 자리가 비즈니스의 성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초대받은 이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후식과 디저트 와인은 다과처럼 따로 떼서 차려내도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주변의 평범한 과일 및 전통적인 우리네 후식과의 마리아주를 몇 가지 소개한다.

과일과 매칭하는 와인-밸런스가 좋고 신선한 느낌의 스위트 와인

여느 음식의 마리아주 역시 그렇겠지만, 디저트 역시 후식 스타일과 와인이 잘 맞아야 한다. 예를 들어 단맛이 적고 산뜻한 음식이라면 와인도 그렇게, 반대로 아주 깊은 단맛과 농밀한 맛이라면 와인의 무게감 역시 그래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무난하고 흔하게 접하는 후식은 동서양 모두 과일일 것이다. 과일과 함께 하는 와인 역시 달콤한 스위트 와인을 선택한다. 스위트 와인 중에서도 신선하고 산뜻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좋다.

이런 경우 귀부 와인처럼 당도가 높고 맛이 깊은 와인보다는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가 잘 이루어진 와인이 좋다. 모스카토 다스티나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cqui) 혹은 독일 리슬링 품종의 와인 등을 추천할 만하다.

과일의 스타일에 따라 선호되는 와인도 다르다. 예를 들어 사과같이 당도와 함께 산도도 높고 향이 강한 과일이라면 특히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가 맞고 가벼운 모스카토 다스티가 잘 어울릴 것이다.

혹은 달지 않아도 과일 향이 풍부하고 기포가 상쾌한 이탈리아나 독일, 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도 근사하게 매칭된다. 반면 배처럼 수분이 많고 단맛이 강조된 과일이라면 감촉이 부드럽고 과일 향이 풍부하면서도 약간 더 무거운 와인을 추천한다.

슈페트레제(Spatiese) 정도 등급의 독일 리슬링(Riesling) 와인이 어울린다. 용기를 내서 레드 와인과 매칭을 해 볼 수도 있다. 역시 과일 향이 풍부하고 심플한 캐릭터로 해석된 부르고뉴 피노 누아라면 이색적인 궁합을 이룰 것이다.

쫄깃, 달콤한 떡엔 도수가 있는 레드 스위트 와인

떡은 우리 전통 후식 중 가장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특히 요즘은 아기자기한 작은 크기에 여러 재료들로 예쁘게 나와 미학적인 만족감도 채워준다.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주에서 떡과의 매칭은 오래전부터 시도된 것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그 쫄깃한 식감과 딱 맞게 떨어지는 와인 스타일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쌀, 밀 등 곡물을 재료로 조밀한 조직은 가졌으니 너무 가벼운 와인보다는 적당한 무게감이 있는 와인이 좋다. 떡과의 매칭에 대해서 여러 주장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의 레드 스위트 와인인 ‘브라케토 다퀴’가 어떨까 한다.

화이트 와인보다는 조금 묵직한 보디감이 힘을 실어줄 것이다. 떡의 당도에 따라 독일의 아이스 와인이나 그 아래 아우슬레제(Auslese) 등급의 와인도 좋다.

한과, 약식엔 계피 향 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의 화이트 와인

한과와 약식 등은 떡과 달리 곡물을 재료로 하면서도 보다 조직은 덜 조밀하고 식감은 단단하며 겉에 조청이나 꿀 등이 발라진 전통 과자다. 후식용 떡의 당도와는 또 다른 강한 당도를 가지고 있다. 이 경우에는 곡물의 무게감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무게감과 함께 곡물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향의 스위트 와인이 좋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과 독일 지방에서 자주 사용되는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품종의 스위트 와인을 권한다. 꿀, 장미꽃, 열대과일인 리치와 함께 은은한 견과류의 향기는 곡물이 가지는 향과 부딪히지 않으며 조화가 잘 이루어진다.

특히 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이 가지는 설핏한 계피 향은 전통 과자에도 자주 사용돼 위화감이 없으며, 입 안을 스파이시하게 자극해 소화도 돕는다.

밤초, 대추초 등 과일절임 후식 - 아주 농도가 짙은 귀부 와인 혹은 비냐 세레

고급 전통 후식 중에는 밤초나 대추초처럼 과일을 꿀에 절여 내는 아주 단것도 있다. 이 경우 와인 역시 무게감이 있고 매우 단것을 권한다. 소테른 지방의 귀부 와인이나 아이스 와인 정도로 당도와 농도가 강한 것이 좋다.

또한 알코올이 단맛을 정돈해 주는 기능이 있음으로 알코올이 강조된 와인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프랑스 쥐라 지역의 독특한 장기 숙성형 화이트 와인인 뱅존(Vin Jaunes)이나 포르투갈의 강화주인 포트와인(port wine) 등이 있다.

이탈리아의 독특한 레드 스위트 와인인 ‘비냐 세레’도 권할 만한 매칭이다. 비냐 세레는 프랑스 소테른의 귀부 와인과 비견되는 이탈리아의 레드 스위트 와인으로 높은 당도와 묵직한 알코올감 등을 지녔다.
[비즈니스 와인 매너] 전통 후식과 디저트 와인
1. 과일은 산도와 밸런스가 잘 맞으며 가벼운 모스카토 다스티가 좋다. 사진은 안티노리 모스카토 다스티
2. 떡과 함께라면 화이트 와인보다는 조금 묵직한 '브라케토'의 보디가 힘을 실어줄 것이다. 빌라 엠 로소가 대표적이다.
3. 한과와 함께하기엔 게뷔르츠트라미너를 권한다. 잘 숙성된 꿀 냄새와 너드 등의 향기는 곡물이 가지는 향과 부딪히지 않으며 조화가 잘 이루어진다.
4. 스위트 와인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프랑스 소테른 지방의 샤토 디켐


이철형


국내 최대 와인 전문 유통 기업 ㈜와인나라 대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