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코텍 대표이사 회장

[Success Story] 슬롯머신 모니터 ‘절대강자’ 의료·방위산업용 1위 ‘성큼’
‘딱 한 번의 잭팟(jackpot)으로 인생 대역전’

대박을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귀가 솔깃해지는 문구다. 그런데 사람들을 ‘잭팟’이라는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슬롯머신 모니터의 절대 강자가 국내 업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주인공은 바로 디스플레이 제조 전문업체 코텍(Kortek)이다.

현재 코텍은 세계 1위의 슬롯머신 제조업체 미국 인터내셔널게임테크놀로지(IGT)에 가장 많은 모니터를 납품하는, 작지만 강한 회사다. 하지만 정작 이 회사 대표이사 이한구 회장은 “내 인생에 잭팟은 없다”고 말한다. 대박 터트리는 모니터를 만드는 이 회장의 굴곡 많은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자.

코텍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산업용 모니터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이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은 카지노 게임기, 전자칠판, 멀티스크린, 초음파 탐지기, 의학용 모니터 등 다양하다. 휴대전화, TV, 노트북 등에서 우리 기업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산업용 모니터 분야는 아직까지 미개척 분야다.

수요층이 한정적인 데다 각 제품군마다 상당한 기술력을 요하기 때문. 대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시장규모가 작고 그렇다고 웬만한 기술력으로는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곳이 바로 산업용 모니터 분야다. 경쟁이 덜 치열하다 보니 마진은 비교적 높다. 코텍이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수년 전 유명 연예인이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론의 관심이 ‘누가 잭팟을 터트렸느냐’에 쏠렸던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당시 그가 버튼을 눌렀던 슬롯머신은 IGT의 ‘휠 오브 포천’으로 코텍의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제품이었다.

코텍의 북미 시장점유율은 70%대, 세계 시장은 52%다. 전 세계 슬롯머신 2대 중 1대가 코텍 제품인 셈이다. <오션스 일레븐> 등 상당수 도박 영화에 등장하는 슬롯머신 모니터도 바로 코텍 제품이다.

슬롯머신 모니터는 상당한 기술력을 요한다. 연중 24시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먼지, 습도 등 악조건을 잘 견뎌야 한다. 내부 열을 밖으로 원활하게 빼내는 것도 관건이다. 만약 모니터의 화질이나 색상이 달라지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수억 원의 판돈이 굴러가는 상황에서 모니터가 중간에 멈추면 카지노 운영 회사로선 엄청난 손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오작동이 없어야 하는 것은 물론, 같은 카지노에 있는 수백, 수천 대 슬롯머신의 배색 차이 확률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야 한다.

슬롯머신 회사마다 제품 사양도 제각각이다. 아무리 새로운 고객을 확보했다고 해도 최소 2~3년간 기술제휴를 통해 불량률을 0%대로 떨어뜨려야 납품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 산업용 모니터 제조사들이 수년째 코텍이 IGT의 최고 공급자(best supplier)로 선정된 것을 부러워하는 이유다.

하청업체를 바꾸는 일은 코텍 입장으로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원청업체인 IGT도 상당한 모험을 걸어야 한다. 자칫 하청업체 교체로 제품에 결함이 발생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제조사인 IGT로 돌아간다.

24년 연속 흑자 이끈 경영철학

이 회장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지난 1987년이다. 이후 코텍은 24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최근 7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17%나 된다. 이런 성공은 그의 경영철학이 밑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다. 바로 코텍의 사훈이기도 ‘최(最)·지(知)·신(信)’의 정신이다.

최(最)-최고가 아니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
[Success Story] 슬롯머신 모니터 ‘절대강자’ 의료·방위산업용 1위 ‘성큼’
인천 송도에 위치한 코텍 본사에 들어서면 ‘No.1, Industrial Display Company’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코텍이 가장 많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카지노 모니터 부문은 당분간 독주가 예상된다.

북미, 유럽, 호주, 아시아 등으로 판로가 확대되고 있는 데다 상당수 슬롯머신이 아날로그형 릴 방식에서 디지털 3D(3차원 입체영상) 방식으로 바뀌고 있어 이미 기술력을 확보한 코텍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크다.

이 회장은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통한다. 인문계 고교를 졸업한 그가 디스플레이 업계에 발을 딛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가정형편상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가 사회에 뛰어들어 처음 시작한 일은 ‘자동판매기’ 사업이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중 미군들이 사용하는 자동판매기를 보고 사업 아이템으로 잡은 것. 그는 1974년 동우기업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자판기를 해외에서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무리한 투자와 대기업들의 연이은 진출로 그의 첫 도전은 엄청난 빚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그 실패가 후에는 큰 보약이 됐죠. 그때 깨달은 것이 남들이 할 수 없는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최고가 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자판기 사업의 실패는 이 회장에게 블루오션 전략과 무차입 경영이라는 경영신조를 갖게 했다. 그는 자판기 사업 이후 지금껏 ‘부채 제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코텍은 유보율이 1700%이며 현금성 자산이 400억 원에 달한다.

비록 자판기 사업은 실패했지만 특유의 친화력 덕택에 인맥은 오히려 두터워졌다. 그리고 두터운 인맥은 그가 디스플레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다.

“1980년 일본에 가보니 이미 게임 산업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해 있었습니다. 당시는 한국에도 일부 지역이지만 갤러그, 인베이더 같은 아케이드용 게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죠. 문제는 변변한 국산 모니터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해 그는 국산용 게임기 모니터 제품 계획서를 들고 삼성전자로 찾아갔다. “1980년 당시 삼성전관(삼성SDI 전신)의 한해 컬러 브라운관 생산량이 2만~3만 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5000만 원짜리 수표를 내밀며 ‘이 돈으로 한 달에 100대씩 만들되 만약 제때 내지 않으면 여기서 공제하라’고 하니 황당해하더군요. 하지만 자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점 거래권도 함께 요구했죠.”

자체 제작으로 기술력을 확보해가면서 이 회장은 국내 아케이드용 게임 시장을 석권했다. 이를 토대로 1987년 새로이 세주전자(지금의 코텍)라는 회사를 세우고 아케이드용 게임의 본고장인 일본 시장을 공략했다. KTS-20 CRT 모니터는 코텍이 자체 기술로 해외에 내다판 첫 작품이다.

엔고까지 겹치면서 일본 수출은 코텍의 성장세에 불을 댕겼다. 오늘날 코텍의 성공을 이끈 IGT와의 만남도 바로 그 무렵의 일이다. 슬롯머신 모니터를 비롯해 코텍은 댄스머신용, 노래방, 가라오케 전용 TV, 볼링장, 스티커사진 머신 등에서 전부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지(知)-연구, 또 연구하라. 기술만이 살 길이다

이 회장은 비엔지니어 출신이지만 디스플레이 관련 지식은 웬만한 전공자 이상 수준이다. 그는 “오너가 기술적인 것까지 모두 챙길 수는 없다. 다만 뛰어난 인재를 데려와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이 회장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현장형 CEO’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기술에 대한 코텍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현재 코텍은 연구개발비로 연간 50억~60억 원을 쓴다. 매출액의 4% 가까운 금액이 연구개발비다. 뿐만 아니라 전체 직원의 25%가량이 연구원이다. 때문에 코텍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정평이 나 있다.

특수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보는 20.1인치 3D 모니터(MLD)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코텍이 최근 세계 카지노 시장에서 대히트를 치고 있는 슬롯머신 모니터에도 이 MLD 기술이 적용됐다. 이밖에도 코텍은 전자칠판과 터치스크린 방식의 IPTV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해 놓고 있다.

카지노 모니터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코텍이 꿈꾸는 다음 목표는 디지털정보디스플레이(DID)·의료·선박·장비용 모니터 분야다. NEC, 바코(Barco), 로에베(Loewe) 등 글로벌 업체와 계약도 체결했다.

또 고부가가치 분야인 방위산업용 모니터와 초음파·임상용 등 의료용 모니터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지난 2006년부터 지멘스, 2008년부터는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모니터를 공급하고 있다.

“산업용 모니터는 각 분야마다 적용되는 기술이 전혀 다릅니다. 방위산업용이나 의료용은 우리의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들 분야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이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나와선 안 됩니다.

대신 마진은 높죠. 일반 PC용 모니터가 100이라면, 카지노 모니터는 300, 의료용은 1000, 항공·방위 산업은 200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코텍은 현재 또 다른 슬롯머신 개발업체에 독점적으로 모니터를 납품하는 계약도 추진 중이다. 계획대로 계약이 추진되면 코텍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0% 이상으로 치솟는다.

이한구 코텍 회장의 다음목표는 의료·방산용 모니터의 글로벌 ‘넘버원’이다.
이한구 코텍 회장의 다음목표는 의료·방산용 모니터의 글로벌 ‘넘버원’이다.
신(信)-회사는 신뢰를 먹고 산다


1996년 코텍은 처음으로 IGT에 모니터를 납품하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기술력이 부족했던 코텍의 모니터는 채 6개월을 견디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전량 리콜을 결정했다. 그것도 모니터 수리비는 물론 왕복 제품 이송료를 모두 코텍이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되레 IGT가 당황하더군요. 그러다 회사가 망하면 어찌하느냐면서 말이죠. 리콜 비용이 1년 매출액에 맞먹는 수준이었거든요. 하지만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모한 결정을 한 겁니다.”

이 회장의 리콜 조치는 IGT와 신뢰를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리콜로 회사 재무상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추후 IGT가 제품가를 정상가보다 20~30달러씩 더 얹어주면서 코텍은 위기를 넘겼다. 이 일은 당시 이 분야 1등이던 세로닉스와 순위를 역전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기술력은 대부분 목표치 대비 90~95% 수준으로 비슷합니다. 기술로만 따지면 큰 차이가 없죠. 그렇다면 계약 체결을 결정하는 미묘한 차이는 뭐겠습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의 해외 수주 라인이 탄탄한 것도 바로 수년간 쌓은 신뢰 때문이죠.”

지난해 5월 코텍은 사옥을 송도신도시로 옮겼다. 연 면적 19250㎡(약 5823평)으로 중소기업치고는 규모가 상당하다. 인천대교 개통으로 인천국제공항까지 차로 15분가량 소요된다.

“공장을 크게 지은 것도 신뢰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렇게 큰 연구전용 공간을 갖춘 우리를 믿고 일을 맡겨달라는 뜻이죠. 공장 준공 이후 세계 주요 모니터 업체들이 방문했는데, 다들 우리 회사의 규모를 보고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코텍의 올해 매출 목표는 1705억 원, 영업이익은 191억 원이다. 전 세계 슬롯머신 시장에서 릴 방식의 비중이 약 40%에 달해 기계 교체에 대한 수요는 계속 커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주 거래선인 북미 지역의 경기가 살아나고 중국, 싱가포르 등지에 카지노 개설이 줄을 잇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스마트폰, 전자책 등 개인용 디스플레이 시장이 커지는 지금, 이 회장에게 개인용 모니터 진출 계획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노(NO)’.

“남들이 간다고 해서 덩달아 쫓아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아무리 그 시장이 커져도 말이죠. 차라리 저는 남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시장에서 한 우물을 파겠습니다. 그게 코텍과 저의 성공 비결입니다.”

이한구

코텍 대표이사 회장
인천고 졸업
1987년 세주전자(현 코텍) 창업
벤처기업대상(2000년), 은탑산업훈장(2006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상(2006년), 벤처 1000억 달성 기업상 수상(2009년)

송도=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