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의 미술품 재테크
이번 주에 벌써 두 번째 해외 출장이다. 어제 떠난 베이징(北京)의 번잡함이 가시기도 전인데, 뉴욕의 거리 역시 그 못지않게 분주하다. 거래처 바이어와 중요한 아침 회의에 앞서 체크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플래너를 열어 오늘의 주요 스케줄과 메모 사항을 점검하고, 이메일과 RSS(뉴스나 블로그 사이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콘텐츠 표현 방식) 리더를 열람한 후 회의에 참고할 만한 새로운 뉴스를 챙겨본다. 그 사이 얻게 된 용이한 아이디어를 준비했던 프리젠테이션에 보강해 발표 자료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 덕분일까. 오전 미팅은 만족스럽게 끝났다.
오후 3시까진 모처럼 자유 시간. 출장의 또 다른 재미인 화랑가 아트투어에 나섰다. 우선 볼만한 주요 전시 리스트는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 온라인 서비스의 전시가이드 앱스토어에서 바로 다운받아 체크했다. 먼저 첼시 중심가에 위치한 갤러리에 들렀다. 중국 현대미술이 소개된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똘망한 웨민쥔(岳敏君) 작품 한 점을 구해달라는 친구의 부탁도 있고, 나 역시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작품을 구하고 싶어서다. 마침 적당한 크기의 웨민쥔 작품이 눈길을 끈다. 5만 달러라고 한다. 잠깐 한쪽으로 물러나 이메일을 열어 어제 베이징에서 모아둔 중국의 주요 경매 레코드를 살폈다. 비슷한 크기가 대개 7만~8만 달러에 형성돼 있었다. 얼핏 유사한 작품을 본 듯해 동호회 카페 우수회원란에 들어가 보니 역시 비슷한 작품이 올라 있다.
갤러리 판매 가격이 7000만 원 정도였다. 작품 수준이나 환율을 따져 봐도 괜찮은 조건이었다. 전시 진행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사진을 찍어 바로 친구에게 송고 후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드디어 무거운 짐을 하나 덜었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손바닥 안에 놓인 작은 기계 덕분이다. 스마트폰 얘기다. 어느 미술 애호가가 해외 출장길에 최신형 스마트폰을 가져갔을 때를 가정해 본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한 일이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정말 상상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실제 지난 4월 4일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의 서울 프리뷰에서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인 ‘서울옥션 모바일’을 통해 경매 출품작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사전 응찰까지 가능했다.
스마트폰의 가장 큰 강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를 무한정 이용할 수 있을뿐더러, 오프라인까지 단시간에 연계할 수 있는 ‘속도 경제의 효율성’을 담보해 줄 수 있는 혁신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출현이 미술계엔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또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그 여파는 일상생활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점차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을 활용한 아트비즈니스 전용 애플리케이션이 속속 등장해 그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 변화 양상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일상생활 속에서 시각문화 향유계층의 확산을 가속화시킨다. 지금까진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구분은 명확한 편이었다. 아무리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실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층은 한정적인 게 현실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은 인위적이고 물리적인 환경이나 시공간의 한계를 단번에 극복할 키(key)가 됐다. 그러다 보니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 음악에 대한 폭넓은 사전 정보를 수집하듯, 이슈가 된 관심 전시나 작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무한정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미술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거리감을 줄여 누구나 잠재적 수요자 혹은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둘째, 온라인 유통 구조의 새로운 비전이 기대된다. 미술작품은 온라인 비즈니스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 여겨졌다. 기성품이나 소모성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기능이 아니라, 내부적인 감성과 감흥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작품 가격엔 무형의 감성 가치가 유형의 경제 가치보다 우선하거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활용이 늘어나게 되면 미술품이 지녔던 ‘전문성’에 대한 부담감은 훨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온라인을 통해 자세하고 다양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일반적인 룰’의 평준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온라인에서 미술품의 유통을 활성화시키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셋째, 문화적 커뮤니케이션 확대로 개인 라이프스타일의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대개 미술을 향유하는 계층은 개인별 기호가 특정한 목적의 소모임 등으로 형성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감상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겠지만, 소비 혹은 직접 수요 단계는 사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온라인에서 일부 블로그나 카페를 중심으로 개방형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개인별 사정에 따라 참여 시간은 한정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미술문화 커뮤니티가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열린 대중적 커뮤니티의 장이 돼 삶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리라 본다.
넷째, 과학 기술과 문화예술이 만나 새로운 콘텐츠 분야 블루오션을 창출할 것이다. 스마트폰 출시와 동시에 3D나 4D의 정보기술(IT)도 혁신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이 둘은 태생부터 한 몸이라 여겨질 정도로 상호호환이 용이하다.
따라서 단순히 영화나 공연 등 동영상에 대한 감상의 편리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진행되는 피카소 전시를 생생하게 원하는 스타일로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때가 머지않았다. 이렇게 되면 신규 문화콘텐츠 개발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다섯째, 문화예술계에 ‘융합(컨버전스)’ 신드롬이 거세질 것이다. 문화의 전문화를 표방하며 장르가 세분화되는 시대는 지났다. 굳이 인접 장르가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장르의 크로스오버 융합현상은 새로운 예술적 진화를 부추기고 있다.
미술과 음악, 미술과 영화, 미술과 공연, 미술과 과학, 미술과 물리학, 미술과 고고학, 미술과 지리학 등 문화예술적인 관점에서 시각예술의 진화는 끊임없이 진행될 것이다. 이 역시 스마트폰 보급 확대가 큰 영향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2015년이면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 시대를 맞는다고 한다. 경제가 성숙해지면 문화 향유 욕구가 커지는 것을 문화선진국 사례로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미술품의 향후 투자 전망도 밝아진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러나 수년 전과 지금은 전혀 다른 기반이다. 사회경제적 성장에 따른 문화소비 계층의 점증적 확산이 아니다.
스마트폰 시대에선 문화수요층이 어느 특정 순간에 폭발적인 증가 수치를 보이리라 예상된다. 어쩌면 지금이 그 목전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IT 강국이란 이점은 새로운 문화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은 우리는 문화 소비자로서 또는 생산자로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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