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아니라 역사가 문제다
“매일 바뀌어야 할 금리는 고정시키고 백 년을 두고 써야 할 교육제도는 수시로 바꾼다.”
지금은 금리 변동이 자유롭지만 얼마 전까지 정책적으로 고정금리 원칙이 유지되었을 때 교육계 인사가 한 말이다.

뭔가가 잘못되었을 경우 정책 입안자들은 흔히 제도 개혁을 먼저 생각한다. 사실 충분히 상식적인 사고방식이다. 잘못이 드러나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 경우 대부분 제도에서 원인을 찾기 쉽다.

하지만 그래서 과연 제도 개혁이 성공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사교육은 좀 과장하면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열을 사회 발전의 긍정적인 원동력으로 보는가 하면 영국의 <타임> 지는 한국의 사교육 열풍을 한 마디로 ‘광기’라고 규정한다.

사실 이 점에 관해서는 오바마가 헛다리를 짚은 듯하다. 하긴, 미국의 대통령이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강남의 학부모들이라 해도 모두가 한날한시에 사교육을 근절한다면 아마 대부분 찬성할 것이다. 현재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의 목표는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한 게 아니라 단지 남들보다 처지지 않겠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교육 개혁은 이미 제도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 ‘제도’가 아니라 교육 ‘문화’에 있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 관습과 견해, 곧 교육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가 채택된다 하더라도 사실상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문제를 제도가 아닌 문화로 바꿔놓고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모두가 교육에 승부를 걸게 된 우리 사회의 역사적 배경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제도가 아니라 역사가 문제다
요즘 대학 교수, 특히 인문계열의 교수들에게 공통적인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학생들의 상당수가 학과 공부와 무관하게 고시를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역사에서 관(官)이 지니는 의미를 고려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잘해야 출세할 수 있는 사회는 얼핏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딘가 지식 사회 같은 냄새도 풍길 뿐 아니라 까놓고 말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겐 고시라는 제도가 개인적인 신분상승의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고시는 공평한 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은 공복(公僕)이라는데 왜 그렇게 국가의 하인이 되지 못해 안달일까? 봉급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또 단순히 안정된 직업이어서도 아니다.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명분만도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과거제의 유산이다.

하기야, 국가의 녹을 먹으며 국가의 부림을 받고자 하는 걸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천 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또한 왕조 시대나 공화국 시대나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공무원이 이 나라의 최고 직업으로 군림한다는 게 안쓰러울 따름이다. 우수한 고등학생들이 고시와 관계된 학과의 문을 두드리고 우수한 대학생들이 국가고시의 문을 두드리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학문이 뿌리내릴 리 없다.

게다가 평가 방식 또한 얼마나 치졸한가? 과거의 과목은 기술직인 잡과를 제외하면 경전을 달달 외는 명경(明經)과 경전의 문구를 적절히 인용해 글을 짓는 제술(製述)로 나뉘는데, 오늘날 고시나 대학입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대학입시의 수학능력시험이 곧 명경이고, 논술고사가 곧 제술인 셈이다. 국록을 먹는 것을 최고의 직업으로 치고 재능을 평가하는 방식이 수백 년간 오로지 고답적인 필답고사와 글짓기뿐인 교육 문화라면 병적인 교육열을 낳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고 제도에만 초점을 맞추는 분야는 교육만이 아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사회는 공화정의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문제는 정치 ‘제도’가 아니라 정치 ‘문화’다. 늘 신문 1면을 차지하면서도 1등으로 욕을 먹을 만큼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정치는 제도의 개선이나 개혁으로 향상을 이루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제도야 교육과 마찬가지로 나무랄 데 없다. 서구의 오랜 역사에서 갈고 닦인 의회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열매만 따왔으니까. 그럼에도 정치적 후진성에 시달리는 이유는 제도의 배경에 역사와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붕당정치’라는 해괴한 개념어로 미화하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노력이 있기는 하지만(역사적으로 따지면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구양수가 그 선봉이었다) 조선 사회 후기의 정치는 한 마디로 ‘당쟁’의 진흙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당쟁의 배후에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학자-관료’ 지배 체제가 있었다.

조선 초기에 사림파가 정치적 힘을 얻은 것은 바로 학자-관료 체제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림파는 대부분 현직 관료가 아닌데도 현실 정치에 관여하고 훈구파와 맞서 승리할 수 있었다. 또한 16세기에 조식은 단 한 번도 관직에 진출한 적이 없지만, 그가 길러낸 제자들은 학맥을 이루어 이황의 제자들과 치열한 당쟁을 벌였다.

더 인상적인 예는 17세기의 유학자 송시열이다. 그는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만년에 불과 몇 년 동안 정승을 지낸 것 이외에는 별다른 관직 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재야에 있으면서도 당시 당쟁의 최대 쟁점이었던 예송논쟁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고위 관직에 있는 제자들을 통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바로 여기서 조선 사회 특유의 이중권력 체제가 생겨난다. 정치 엘리트가 ‘얼굴마담’과 ‘막후 실력자’로 이중화되는 것이다. 현대 정치사를 지배했고 지금도 그 흔적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이른바 ‘보스 정치’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하나의 정권이나 정파에서 보스는 상징적인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실제의 정책은 보스의 심복들이 보스의 이름을 빌려 집행한다. 보스는 늘 추상적이고 모호한 발언으로 일관하고 그 부하들은 거의 조폭의 행동대원들처럼 실무를 빙자해 악역을 도맡는다.

이런 이중권력 체제에서는 정치 행위도 이중적이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의회를 놔두고 항상 막후에서 이루어진다. 골프장이나 룸살롱에서 정책이 채택되고 심의된다. 정작 의사당에서는 나중에 그 정책을 공식적으로 추인할 뿐이다. 여야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허허실실의 정치 게임을 벌인다. 그런 탓에 정계에는 항상 음모와 음모론이 판친다. 겉으로 내세우는 주장과 실제 속셈이 다르다. 정치적 발언이나 행위가 있을 때마다 배후와 막후를 추측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다. 국회의원은 원칙적으로 한 명 한 명이 단독적인 입법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당론에 따라 움직이는 거수기에 불과해진다.

권력의 형식적 소유자와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자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그 틈에서 권력형 부패가 자라나게 마련이다. 동양의 관료제는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생겨난 게 아니라 지배자의 통치 행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발달했기 때문에 관직은 언제나 커다란 이권이었다. 관리(官吏)는 백성에게 봉사하는 게 아니라 백성을 관리(管理)했고, 거기서 음성적인 이득을 챙겼다.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교육과 정치에서 실감할 수 있는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둘러싼 문화의 실종 혹은 부재다. 법령의 내용이 좋아도 시행세칙이 엉망이면 아무런 소용도 없듯이, 제도를 교과서처럼 도배해놓아도 실제로 운용되는 결과가 온통 편법과 탈법이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럼 대안은 뭘까? 제도 개혁이라면 당장이라도 가능하지만 역사와 문화를 바꾸는 데는 장구한 세월이 필요하다. 역사에는 지름길은 있어도 비약이나 생략은 없다. 다만 지름길을 찾기 위해서는 당장 효과를 내려는 근시안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라도 역사 개조를 위한 벽돌을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올리려는 자세다. 적어도 한 세대가 필요한 개혁을 한 정권의 임기 내에 해결하려는 것은 무모한 욕심이다.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 및 번역가 dimeol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