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고객을 위한 맞춤형 상품 은행 PB센터 ‘사모펀드’ 인기

해 초 서울 마곡지구 개발로 인한 토지보상금으로 100억 원을 받은 김홍연 씨(가명·57). 주식 시장은 조정을 받고 있고 부동산 시장도 총부채 상환비율(DTI) 규제로 하락 추세여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거래하고 있는 은행 PB센터 팀장으로부터 ‘사모펀드’ 투자 설명회에 초청받았다. 설명회에 가보니 자신과 비슷한 규모의 재산을 갖고 있는 고액 자산가 30여명이 모였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며 투자 정보를 주고받았던 사람들도 10여명 포함돼 있었다.설명회에선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나와 먼저 하반기 주식 시장을 비롯한 경제상황 전망을 자세히 브리핑했다. 이어 PB팀장이 ‘사모펀드’ 설립 취지와 향후 운영 방안에 대해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사모펀드를 실제 운용할 자산운용사의 본부장이 펀드 운용 제안서를 제시했다.설명회가 끝나자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이 사모펀드에 1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함께 참석한 다른 고객들도 대부분 최소 1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까지 넣겠다며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최근 맞춤형 펀드로 알려진 사모펀드에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큰손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인기가 높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모펀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공모펀드 시장은 찬바람이 부는 것과 달리 사모펀드에는 꾸준히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사모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옷을 맞춰 입듯 투자자를 위한 맞춤펀드 설계가 가능하고 시장 변화에 따라 운용과 해지 등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비슷한 자산 규모와 투자 성향을 가진 소수의 거액 자산가들이 30억∼200억 원의 자금을 조성한 후 특정 자산운용사에 펀드 운용을 맡기는 투자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각 은행 PB센터는 일종의 ‘계주’ 역할을 맡아 맞춤식 투자 상담을 제공한다.이렇게 해서 조성된 사모펀드는 투자 대상을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일반 투자자의 참여는 배제되고 5∼49명의 소수 투자자들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취향에 따라 주식 기업어음(CP) 회사채 등 다양한 자산을 기초로 상품을 설계할 수 있다. 지난 5월 1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했던 한 은행 PB팀장은 “참여한 사람들의 성향이 비슷해 투자자 스타일을 실제 펀드 운용에 반영하기가 쉽다”고 말했다.대개 1인당 최소 투자금액은 1억 원으로 사모펀드 하나당 규모는 100억∼150억 원이다. 공모펀드는 펀드 규모의 10% 이상을 한 주식에 투자할 수 없는 등 제약이 많지만 사모펀드는 비교적 운용이 자유롭다. 운용 방식도 기존 금융회사가 판매하고 있는 주식형 펀드나 간접 상품 등과 다르다. 일단 자금을 모아놓은 뒤 경제 및 증시 상황을 봐가며 구체적인 투자 대상과 시기를 결정한다. 펀드 설계 구조도 달라 단순히 주식 편입 비율이 정해져 있는 일반 펀드와 달리 0∼100%까지 증시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예컨대 상승장에서는 주식 비율을 급격히 높여 단기간 내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도 있고 그 반대라면 펀드 자금을 모두 현금으로 보유해 투자를 아예 중단시킬 수도 있다. 펀드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 치고 빠지기도 수월하다. 괜찮은 종목 하나 잘 잡으면 단기간에 큰 수익도 노려볼 수 있는 셈이다.대부분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 한 명을 선별해 운용을 맡기고 투자자가 펀드 운용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것도 사모펀드의 큰 매력이다. 공모펀드는 펀드 설립에만 최소 2주일가량 걸리지만 사모펀드는 사후보고도 가능해 신속하게 펀드를 만들 수 있다. 시장 흐름 변화에 민감한 거액 자산가나 기관들이 공모펀드 대신 사모펀드로 몰리는 이유 역시 발 빠른 대응을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다.금융권에서 사모펀드 조성에 가장 활발하게 나서고 있는 곳은 국민은행이다. 이 은행은 지난 3월 초 고액 자산가 전용 사모펀드를 처음 출시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20여개, 총 150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출범시켰다. 이들 사모펀드는 국내기업이 발행한 외화표시채권을 비롯해 물가연동 국채, 유전 및 가스전, 미국 금융주, 한국과 중국의 우량 핵심주, 인플레이션 지수 연계 상품, 부동산 리츠 등에 집중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고객 주문형 상품이 70%, 아트펀드, 미국 부동산 투자펀드 등 대안형 펀드가 30%를 차지한다.이미 출시된 기존 사모펀드의 수익률은 시장 평균을 웃돈다. 4월30일 설정된 1호 펀드의 수익률은 6.0% 수준이지만 5월29일과 6월3일 나온 2·3호 펀드의 수익률은 각각 9.3%,9.9%에 이른다. 불과 2개월 사이에 1년 정기예금 금리의 2배가 넘는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지난 6월19일 설정된 4호 펀드도 8.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가장 활발하게 사모펀드를 조성한 국민은행 강남파이낸스 PB센터는 최근 고액 자산가를 겨냥한 10번째 사모펀드를 출시했다. 규모는 200억 원. 참여하는 투자자 수는 40명 이내로 제한됐다. 펀드의 운용은 플러스자산운용 등 2곳에 맡겼다.포트폴리오는 하반기 경기회복이 얼마나 빠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짜여졌다. 경기 민감주, 녹색성장 관련 테마주, 글로벌 구조조정에 따른 인수·합병(M&A) 관련 종목, 에너지 관련 업종, 증권업종 등 15개 종목으로 구성했다. 펀드 운용 기간은 2∼3개월로 생각하고 있다. 목표 수익률은 15∼20%다. 수익률이 실현되면 곧바로 펀드를 청산해 고객들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수수료는 수익률이 1년 정기예금 금리(3%)를 초과할 경우에만 성과 보수 형태로 받기로 했다. 수익률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기본 수수료만 받는다.펀드 설정 이후 구체적인 운용은 시장 상황을 봐가며 투자자와 상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운용 내용은 PB센터에서 투자자에게 수시로 알려준다. 운용 재산이 바뀌면 곧바로 고객의 핸드폰이나 이메일로 통보해준다.국민은행은 앞으로 원자재, 국내외 부동산, 해외 부실자산 등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조성을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 뿐 아니라 다른 시중은행과 증권사의 PB센터에도 강남 부자들을 중심으로 사모펀드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 신한 하나은행도 올해 들어 PB센터를 통해 여러 가지 사모펀드를 만들어 외화표시채권 회사채 기업어음(CP) 에너지오일펀드 금융공학펀드 기초자산(주가지수,개별종목,미국의 부동산지수) 연계상품 등에 투자했다.은행들은 고객들의 수요가 많아 사모펀드가 지속적으로 조성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 사모펀드보다는 공모펀드가 활성화돼 사모펀드 열기가 수그러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김영규 국민은행 강남파이낸스 PB센터장은 “사모펀드는 투자자 수가 많지 않아 일정 수익에 도달하거나 이상 징후 발생 시 펀드 운용에 대한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 고액 자산가들로부터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다만 주식시장이 안정되면 공모펀드가 속속 출시되겠지만 사모펀드가 틈새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강동균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