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까지 국내 골프장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손쉽게 영업을 해왔다. 골프장을 짓기만 하면 평일에도 손님들이 꽉 들어차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사업’ 중 하나였다. 그린피가 20만 원이 넘어도, 음료수 1개에 5000원이 넘어도, 김치찌개 1인분에 2만 원이 넘어도 골프장은 손님들로 넘쳐났다. 심지어 주말 부킹을 따내기 위해 골프장 관련자들에게 뒷돈을 주고 청탁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골프장 하나 갖고 있으면 정말 남부러울 게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골프장 부족 현상이 해소되지 않는 한 공급자 위주의 영업 행태는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그러나 최근 들어 골프장 사정이 예전 같지 않다. 돈이 되겠다 싶어 너도나도 골프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방 골프장을 시작으로 영업난이 가중되고 있으며 도산하는 골프장이 조만간 속출할 것이라고 골프장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그나마 수도권 골프장은 지방보다 낫다고 하지만 서울과 가까운 몇몇 골프장을 빼면 지방 골프장과 비슷한 처지다.골퍼들이라면 누구나 해외에서 골프를 쳐 본 경험을 갖고 있다. 국내 그린피가 너무 비싸다보니 겨울이 되면 동남아나 미국, 호주 등에서 골프를 치는 ‘골프투어’가 인기상품이 됐다. 해외 골프장을 찾을 때면 손님도 별로 없는 골프장들이 한국 그린피의 20∼30% 정도에 불과한 그린피를 받고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에 의아심을 가져봤을 것이다.해외 골프장들은 그린피만 의존해서 영업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골프장을 지을 때부터 주택 분양이 핵심 사업이다. 골프장은 주택 단지 내에 딸려 있는 부대시설일 뿐이다. 주택을 분양해 수익을 이미 내기 때문에 골프장은 최소비용으로 운영이 가능하다.주택 분양이 아닌 방법으로도 성공적인 골프장 운영 모델을 찾을 수 있다. 파인허스트와 페블비치 골프링크스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명문 골프장이다. 두 골프장은 퍼블릭 코스지만 세계 10대 골프장 선정에 거의 빠지지 않고 있고 미국에서 가장 비싼 그린피를 내는 곳이기도 하다.파인허스트 ‘넘버 2’ 코스에서 한 번 라운드하려면 410달러를 내야 하고 페블비치는 495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페블비치에서 라운드를 하려면 최소한 이틀간 의무적으로 숙박을 해야 하는데 가장 싼 방을 예약해도 1500달러가 든다. 숙박비와 라운드비만 2000달러다.퍼블릭 골프장이라고 하면 무조건 값싼 골프장만 생각하는 국내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파인허스트와 페블비치는 철저한 ‘명품’ 마케팅으로 퍼블릭 골프장의 생존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두 골프장은 세계 굴지의 기업들로부터 연간 막대한 후원금을 받아내고 있다. 파인허스트는 혼다의 아쿠라, 펩시콜라, 비자카드, 타이틀리스트 등과 후원 관계를 맺고 있다. 페블비치는 코카 콜라, 비자 카드, 렉서스, 페덱스, 롤렉스 등이 후원하고 있다.왜 세계 유명 기업들이 거액의 돈다발을 들고 파인허스트와 페블비치 골프장을 찾아가는 것일까. 두 골프장의 공통점은 기업들이 골프장에서 활발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는 ‘아쿠라’의 프로모션 행사를 파인허스트 골프장에서 개최한다. 혼다는 이 행사를 위해 파인허스트에서 묵는 패키지 상품으로 연간 400만 달러를 지불한다. 파인허스트는 고객들의 정보를 혼다와 공유한다. 혼다는 지난 2006년부터 파인허스트 골프장과 계약을 맺은 이후 이 골프장 이용 고객들에게 아쿠라를 판매해 몇 배의 수익을 남겼다.파인허스트의 발표에 따르면 고객들의 평균 월 수입은 15만 달러이고 연봉은 100만 달러 이상이다. 이렇게 우수한 고객들을 확보한 골프장은 혼다 같은 기업들에게 놓칠 수 없는 시장인 셈이다.페블비치는 파인허스트와 다르게 기업들로부터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돈을 받는다. 골프장은 후원 기업들에게 고객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지만 골프장에서 독점적으로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이에 따라 페블비치에서 묵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결제할 수 있는 카드는 비자카드이고 고객들이 묵으면서 이용하는 차종은 렉서스다.파인허스트나 페블비치 골프장은 태동 때부터 철저한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에 따라 US오픈 같은 큰 대회를 수 차례 유치했다. 그린피를 높게 책정하면서 골프장의 명성과 고객들의 수준을 꾸준히 관리하며 ‘명문’의 이미지를 키워왔다. 이로 인해 전 세계 골퍼들이 평생에 한 번 라운드하고 싶은 골프장이 됐을 뿐 아니라 기업들도 골프장과 마케팅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이러한 ‘명품 마케팅’의 대가로 골프장은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후원비용을 끌어들여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국내 골프장들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차원에서 이들의 모델을 참고해볼 만하다. 지금까지 골프장은 손님들끼리 친목을 나누면서 비즈니스를 펼치는 장으로 제한된 역할만 했다. 골프장과 기업 간의 비즈니스는 그리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발빠른 골프장들이 기업들의 광고를 유치하기는 했지만 눈에 띌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골프장과 기업들 간의 비즈니스는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연초에 미리 일정 시간대를 정해놓은 뒤 ‘부킹 시간’을 판매한다거나 골프장과 기업이 공동으로 판촉행사나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다.특히 골프장 앞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스트밸리 골프장 이름 앞에 00은행이 후원했다면 ‘OO은행-이스트밸리 골프장’이 되는 식이다.‘이름 사용권(naming rights)’은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기업들로부터 돈을 끌어 모으는 수입원이다. 구단들의 홈구장 이름 앞에 기업들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대가로 받는 돈이다. 이름 사용권은 원래 학교나 교회, 병원 등에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관명 앞에 붙이면서 유래했다. 이후 경기장이나 영화관 등 대형 공공장소에 기업들이 광고를 하기 위해 이름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경기장 앞에 이름을 내거는 조건으로 지불하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비싼 이름 사용권 계약금은 연간 2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다. 이름 하나 사용하는 대가로 이렇게 엄청난 금액을 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일단 독점적인 이름 사용권을 따내면 경기장 곳곳에 기업 브랜드로 도배가 된다.골프장 앞에 이름을 사용하고 티잉그라운드, 페어웨이, 클럽하우스 등 골프장 곳곳에 기업의 브랜드를 노출시킬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상당한 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국내처럼 부킹이 어려운 현실에서 이름 사용권 계약을 맺은 골프장에서 다양한 행사를 추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골프장들은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이름 사용권을 받은 뒤 이를 그린피 인하나 서비스 개선 등에 사용해 골퍼들에게 되돌려주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기업들은 구매력이 강한 골퍼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골프장도 경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그린피에만 수익을 의존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탈피하고 기업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후원금을 받아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극 모색할 때다.마이애미(미 플로리다주)=한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