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를 통한 은퇴 준비

즘 30~40대 이상 샐러리맨의 최대 화두 중 하나가 바로 노후준비다. 소위 ‘사오정’(45세 정년) 이다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다 할 만큼 빨라진 정년에 비해 수명은 한참 늘어나다 보니 은퇴 문제가 심각한 고민으로 떠올랐다. 투자교육 현장에서 만나면 은퇴에 대한 고민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느낄 수 있다. 이들 세대에게 은퇴 준비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하지만 막상 걱정은 하는데 구체적으로 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저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은퇴는 인생에 있어 새로운 과제와 불확실성을 부여하는 빅 이벤트(Big Event)라고 할 수 있다. 은퇴 후 삶은 흥미진진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힘든 것이 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은퇴는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누구나 언젠가는 은퇴를 하게 된다. 수년간 다닌 회사에서 동료들로부터 따뜻한 환송회를 받으며 감사패나 기념시계 같은 것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은퇴 후 처음 몇 주 동안은 마감시간과 출퇴근, 고약한 상사 따위는 사라지고 매일 밤늦게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여유와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하지만 한 두 달만 지나면 은퇴의 신선함은 떨어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며 딱히 갈 곳도 마땅치 않다. 동료들과 커피 한잔을 마시며 담소할 일도, 방문해야 할 고객도, 자기 삶에 목적을 부여해줄 과업도 없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 같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이 없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에 빠져 있기 쉽다. 이 때문에 은퇴자금을 지나치게 높게 가정하거나 반드시 준비해야 할 사항은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품위를 잃지 않는 은퇴생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재정적 측면 말고도 일이나 자원봉사, 종교활동과 같은 비재무적인 측면에서 준비할 것이 훨씬 많다.우선 은퇴 이후 재정적 준비와 관련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목돈보다는 장기적인 현금흐름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목돈 10억 원을 한꺼번에 받을지 혹은 매월 200만 원씩 사망할 때까지 받을지 골라야 한다면 상당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중에 받는 것보다 당장의 목돈을 더 선호한다는 점에서 10억 원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노후에 목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자칫 상속이나 증여 등의 문제로 가족 사이에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생전 안 해본 사업을 하려다 한꺼번에 날릴 수도 있다. 혹은 치매와 같은 병에 걸리면 통장에 얼마나 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노후 준비는 목돈 마련보다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은퇴자금 준비를 위한 금융상품에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적어도 10년 이상 장기간 운용되는 상품이어야 한다. 연간 단위로 운용하거나 2~3년 단위로 운용하는 상품은 연금상품으로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결국 일정기간에만 운용되는 부동산펀드라든지 주가연계증권펀드(ELS) 등은 노후준비에 맞지 않다. 둘째, 주식과 같이 기대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상품이 안정적인 채권상품에 투자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 최소한의 노후자금이라도 이를 마련하는 일은 결코 녹녹지 않다. 따라서 보다 기대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야 노후대비가 가능하다. 셋째, 워낙 장기로 가입해야 하는 상품이므로 투자 운용에 따른 수수료 등 투자로 지출되는 비용이 크지 않아야 한다. 단기상품이야 비용의 영향을 신경 쓰지 않고 투자할 수 있겠지만 장기상품은 높은 비용이 누적되기 때문에 결국 수익률을 낮추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넷째, 가능하면 연금지급이 가능한 상품을 이용한다. 은퇴한 후 노후생활을 할 때 생활비의 70~80%가 이미 투자하고 있는 금융상품에서 지급되는 연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안정적인 은퇴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은퇴상품은 매달 연금으로 지급되는 것이 좋다.현재 우리 투자자들이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은퇴상품으로서 개인연금, 퇴직연금, 국민연금과 같은 연금상품이 있다. 이런 상품은 기본적으로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세제혜택상 투자할 수 있는 한도가 매우 적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이 이 세 가지 연금상품으로는 노후자금을 충분하게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다 복잡한 금융상품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상품이 변액연금보험과 적립식펀드다.우선 변액연금보험은 펀드처럼 자산운용회사에 있는 전문적인 펀드매니저들이 운용하지만, 나중에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실적 배당형 상품인 펀드에다가 연금식의 지급기능을 더한 상품이다. 따지고 보면 변액연금보험은 보험의 성격보다는 펀드의 성격을 90% 이상 갖고 있기 때문에 전체 상품의 성격은 보험보다 펀드에 훨씬 가깝다. 다만 상품 특성상 반드시 10년 이상 가입해야 한다. 가입 전 주식으로 운용하는지 채권으로 운용하는가, 그리고 주식이라면 어떤 주식에 투자하는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다음으로 펀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펀드는 변액연금보험보다 초기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 하지만 수십 년간 투자하더라도 계속해서 일정한 비율의 비용을 차감한다는 점에서 장기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비용이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또 펀드를 이용해서 자금을 마련하다 보면 은퇴시점에서 일시금으로 펀드를 환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금상품으로 다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펀드는 그 어떠한 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상품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자신의 성향에 맞춰 입맛대로 투자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마지막으로 상품을 선택하고 투자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투자자의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조금만 손실이 나거나 수익률이 악화되어도 안절부절하면서 은퇴 준비와 같은 장기 투자 계획을 수정한다면 당초 계획한 투자결과를 얻기 힘들다. ‘투자는 결국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이 있듯 용기와 인내력을 가지고 당초의 장기플랜을 고수하는 것이 은퇴를 준비하는 투자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자세다.민주영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수석연구원 watch@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