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최주희

월의 무더운 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연습에 한창인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뮤지컬에 발을 들여 놓게 된 사연. “미술을 전공하다가 남들보다 조금 늦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성악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 후 1985년 국내에서 뮤지컬 춘희를 본 후 뮤지컬에 매료되기 시작했죠.”그가 처음 뮤지컬에 입문하게 된 것은 미국 줄리어드 음대를 다닐 때였다. 그는 “졸업할 즈음 뮤지컬 ‘왕과 나’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영국과 호주, 미국 3개국에서 1년 반에 걸쳐 오디션을 보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씨는 ‘왕과 나’에서 화려하지만 무거운 의상을 입어야 하는 미얀마 공주 ‘텁팁’역을 맡았다.그에게 지금까지 공연한 뮤지컬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이 무엇인지 묻자 조금도 주저 없이 첫 뮤지컬이었던 ‘왕과 나’를 꼽았다. “뮤지컬 왕과 나는 3시간10분짜리의 긴 공연이었어요. 1주일에 8회씩 총 500회가 넘도록 장기간 공연을 했었죠. 이때가 제 인생의 가장 전성기였답니다.” 그는 뮤지컬 ‘왕과 나’를 통해 씨어터 어워드(Theatre Award) 상을 수상하면서, 뮤지컬 스타로 화려하게 떠올랐다.미국에서는 성악가로, 뉴욕에서는 뮤지컬로 무대에 섰다는 그에게 성악과 뮤지컬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묻자, 그는 바로 성악과 뮤지컬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처럼 정통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악은 성악대로, 뮤지컬은 뮤지컬대로라는 불문율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성악과 뮤지컬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제 2의 ‘최주희’를 의미하는 존재이기도 하지요.”그는 “국내에서도 김소연 씨나 박소연 씨와 같이 성악을 하던 분들이 뮤지컬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신의 발성법을 그대로 뮤지컬과 오페라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이어 “미국에서 15년간 뮤지컬과 성악가로 활동하면서 지켜보니 외국과 우리나라의 오페라는 너무나 확연하게 차이가 나더군요. 그 차이를 줄이고 싶어졌어요. 때문에 1년 전 귀국해 성균관대학교 음악대학 연기 예술과 대우 전임교수로 활동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신진 음악가들에게 우리나라와 외국의 차이점과, 성악과 뮤지컬의 차이를 줄일 수 있도록 가르칠 생각이에요”라고 강조했다.그는 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느끼는 점이 많아요. 학생들이 제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면서, 깨달아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순간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뿌듯한지 몰라요. 지난 15년 동안 무대에서 울고 아프고, 괴로웠던 우여곡절 가득한 시간들을 학생들과 나누고 있지요. 아이들이 내 처지가 될 때에는 나보다 더 현명하게 그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문득 그는 공연을 하는 무대에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궁금해졌다. “가장 신나는 장소이자, 나 자신을 가장 잘 느끼게 해 주는 공간이에요. 예전 쟁쟁한 경쟁자들과 함께 했던 LA에서 오페라를 할 때에는 단지 무서워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심금을 울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를 듣다보면 심장이 터져 나갈 정도로 황홀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답니다. 죽는 순간까지 무대에 서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오페라 디바인 ‘칼롯타’ 역을 맡았어요. 아무래도 제 인생에서 오페라를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10년 만의 국내 복귀 무대를 왜 하필 ‘오페라의 유령’으로 선택한 것일까. 그는 “예전에 미국의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본 적이 있었어요. 특히 등장인물 중에서 칼롯타 역에 굉장히 큰 매력을 느꼈답니다. 너무나도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운의 여주인공임을 읽었고, 그 역을 맡아 보고 싶었어요”라면서 “연출을 맡은 이진아 씨도 영국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며 칼롯타 역에 가장 애착이 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극에서 감정의 변화가 많은 역인만큼 어려운 역이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9월 23일부터 샤롯데 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은 2010년 8월 8일까지 거의 1년 가까이 공연되는 대작이다. 때문에 그는 당분간은 오페라의 유령에 올인 할 생각이라고.마지막으로 그는 성악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페라와 뮤지컬을 볼 때 어려운 주제를 가진 토론처럼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오페라와 뮤지컬은 어려운 공연이 아닙니다. 전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취미에 휩쓸려서 보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아주 영세한 공연부터, 기본적인 공연, 어려운 공연까지 두루 보면서,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연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키우세요. 진정한 애호가로 재탄생할 것입니다.”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이탈리아 페스카라 고등음악원 오페라 디플로마줄리어드 석사, 프로페셔널 스터디 수료현 성균관 대학교 연기 예술과 대우 전임교수글 김가희·사진 서범세 기자 holic@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