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지오 아르마니나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제품이 ‘역시’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고유의 가치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은 여타의 작품과는 차별화되는 아우라를 지닌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진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을 발견하는 순간은 도록에서만 보던 유명 작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만큼이나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지난 6월 열렸던 황준현의 사진전이 그러하다.‘꿈꾸는 사람들 Dream ers’이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장 안에는 강한 표정과 몸짓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인물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한 번 ‘쓱’ 둘러보고 나오기에는 미련이 남아 작가를 만나 보기로 결심했다.작가의 이름도, 작품도 낯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74년생인 그는 서울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뒤 뉴욕 비주얼 아트 스쿨에서 사진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지는 2년 정도이고 국내에서 여는 첫 사진전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경력을 알고 나니 조소에서 사진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가 궁금해졌다.“조각은 그 시대의 새로운 재료나 매체를 이용하는 작업입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3차원의 조각으로 완성하려면 물성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해야 하고 생각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죠. 반면 사진은 한 순간에 무엇을 잡아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무엇인가를 포착했다 하더라도 조각으로 표현하려면 머리에서 사고를 거쳐 손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의 생각이 변형되고 희석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사진은 그 순간 그대로를 낚아챌 수 있거든요.”그렇지만 유학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학부를 다닐 때 사진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고, 뉴욕으로 가기 전 개인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조작법을 익혔지만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탓에 기본적인 테크닉조차 잘 몰랐다. 영어 실력이 유창한 것도 아니어서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설혹 질문을 한다 해도 교수님의 답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루는 매체가 달라지니까 스스로 슬럼프에 빠져 어떤 것을 찍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심지어 뉴욕조차, 지저분해서 싫었다. 더러운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낡은 건물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면서 “내가 여기를 왜 왔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년 가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의 소극장으로 향한 우연한 발걸음이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대학교 1학년 때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보았는데 난해한 내용에 너무 지루해서 그 이후로 연극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제가 혼자 극장을 갔는지 모르겠어요. 기침을 하거나 숨소리를 내면 다 들릴 것 같은 좁은 공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이야기의 50%도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러나 표정, 제스처만으로도 그들이 무엇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언어보다 더 잘 이해되더라고요. 오히려 진실되고 거짓 없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막연히 연극하는 이런 사람들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이렇게 해서 시작된 작업이 바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명배우로 생계를 위해 식당 웨이트리스, 요가 강사, 여행사 세일즈맨, 쇼호스트 등을 사이드 잡으로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배우로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전시 타이틀이 ‘꿈꾸는 사람들(Dreamers)’이고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초상(Portrait of Unknown Actor)’이라는 부제를 단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듯한 카를로,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내리뜨고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는 듯한 가브리엘, 누군가의 윽박지름에 자신이 뭘 어쨌기에 그러느냐는 듯한 표정의 클리프…. 각기 다른 배우들의 연기 장면을 찍은 사진 연작은 얼핏 보면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촬영 현장은 배우들의 거처나 길거리 등 그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연극 무대에서 특히 모놀로그를 할 때 배우 머리 위로 조명을 비추듯 주변은 어둡고 인물에만 밝은 조명을 비춘 채 촬영한 기법은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그는 실생활에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한 이미지 즉, 실제와 실제가 아닌 것의 교집합을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촬영 장소인 그들의 집은 현실(Reality)이고 무대 의상 같은 옷을 입고 무대에서와 같은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하는 연기는 거짓(Fake)인데 이 둘을 사진 속에 공존시키는 것이다. 현실의 자아와 연기자의 자아를 중첩시켜 그들의 이중적인 삶을 한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정체의 양립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연출이나 정돈을 하지 않고 본래 집 안 모습 그대로를 배경으로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무명 배우들에게는 그들이 공연했던 연극 중 일부를 카메라 앞에서 재현해 보일 것을 요구한다.무명 배우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은 황준현 작가의 ‘언노운 시리즈(Unknown series)’ 중 첫 번째 프로젝트. 꿈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든 존재하기 때문에 이 작업은 끝이 없이 지속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직업군을 찾아 후속작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그가 준비 중인 두 번째 프로젝트의 대상은 댄서라고. ‘알려지지 않은 댄서들의 초상(Portrait of Unknown Dancer)’은 어떤 모습일까? 벌써부터 사뭇 궁금해진다.글 정지현 미술전문 칼럼니스트·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