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준 LIG 손해보험 회장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웃음이 인상적인 구자준 LIG 손해보험 회장. 그는 LG가문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국산 미사일 개발에도 참여했던 정통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인 이다. 그런가하면 마라톤과 극지탐험으로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 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그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돌아왔다. 남·북극 극점과 남극 최고봉인 빈슨 메시프, 세계 2위의 고봉 K2, 그리고 히말라야의 고산인 아마다블람에 이어 또 하나의 탐험 이력을 쌓은 것.구 회장은 “2000년 당시 럭키생명의 대표를 맡으면서 만성적인 경영악화와 무기력에 빠져있던 임직원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 탐험에 나선 것이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됐다”며 “탐험과 마라톤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회사를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구 회장을 만나 그의 탐험 인생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극지보다는 산이 더 힘들죠. 그 중에도 K2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에베레스트는 그래도 해발 1150m 지점까지 롯지(lodge)가 있는데 K2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맨 밑에서부터 힘들게 올라가야하니….”“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명 ‘코리안 루트’라고 하는데 에베레스트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남서벽을 공략하는 코스예요. 이곳은 해발 6500m의 캠프2에서 해발 8400m의 캠프5까지 약 2000m에 걸쳐 수직에 가까운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져 있는데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와 낙석이 빈번한 곳입니다. 사실 저와 박영석 대장은 2007년과 2008년에 두 차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었는데 두 번 다 실패했습니다. 2007년에는 정상 부근에서 눈사태가 나서 두 대원을 잃는 아픔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번에는 성공했어요. 더욱이 올해는 LIG손해보험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해여서 그 기쁨이 더욱 크고 각별합니다.”“그렇지는 않습니다. 가끔 가지요. 제 생각에는 산의 유형에 3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 산은 나무도 있고 숲도 울창하고,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지요. 이에 비해 알프스나 콜로라도 로키산맥 등에 있는 산들은 웅장하고 크고 그 나름대로 맛이 있습니다. 끝으로 네팔 파키스탄 쪽으로 가면 나무는 별로 없고 돌과 눈만 있으면서 어마어마하게 웅장합니다. 이 세 유형의 산들은 제 각각 매력이 있습니다. 저는 세계 어디를 가 봐도 북한산처럼 좋은 산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내에서 가깝고 코스도 길고 경치도 좋지요. 가끔 우리나라 산을 무시하고 서양이나 외국에 있는 산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각각 특징이 다르다고 봐야죠.”“사실 고산을 올라가는 데 체력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박영석 대장처럼 정상을 올라가야 한다면 그렇겠지만 저처럼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사람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못가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고산지대에 적응을 해야 하는 거죠. 아마추어 산악인들은 대부분 고산에 적응을 못해 실려 내려옵니다. 해발 3000m 이상 고도에서는 하루에 500m 이상을 올라가면 위험합니다. 아주 천천히 이동을 해야 하죠. 그래서 고산은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올라가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사실 고산은 기초 대사량이 많은 젊은이들이 더 적응하기 어렵습니다.”“고산증은 누구에게나 다 옵니다. 얼마큼 대처를 잘 하느냐가 중요하지요. 누구나 해발 3000m 이상 올라가면 머리가 아프고 입맛이 떨어지고 뒷골이 당깁니다. 천천히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를 줄이고 혈액순환을 빨리할 수 있도록 처치를 해주면 상대적으로 적응하기 수월하지요. 만일 우리가 지금 헬기를 타고 해발 4000m 고지에 내리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에베레스트 원정 때도 저랑 7명이 함께 출발했지만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간 사람은 2명뿐입니다.”“K2의 어드밴스드 베이스캠프가 있는 해발 5900m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곳은 크레바스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죠. 사실 고산 탐험을 하면 사망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3∼4%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영석 대장 같은 사람은 운이 좋지요.”“전 어릴 적 꿈이 야구선수였어요. 또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중에는 탁구를 시작해 아마추어 선수로 주챔피언 대회까지 출전했지요. 한창 골프 재미에 빠져 있을 때는 핸디 3까지도 기록했습니다. 운동이라면 뭐든지 좋아했죠. 그런 저도 처음에 박영석 대장이 K2 원정대장을 제의했을 때 위험문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연히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도 말렸죠. 그러나 자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그동안 탐험을 다녀와서 현지의 멋진 경관이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자주 들려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탐험을 다녀오고 난 후 제게 일어난 변화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몸도 좋아지고 표정도 밝아지고 사고방식도 긍정적이 되니까 가족과 주위사람들까지도 탐험에 호기심을 가지더군요. 작년 가을에는 아내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찾아 저지대에서 트레킹을 했는데, 아내가 굉장히 좋아하더군요.”“제가 1999년에 LG정밀에서 보험사 쪽으로 왔는데 이미 회사에서 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박 대장이 원정대장을 맡아달라고 하길래 그게 뭔지도 모르고 덥석 맡아 K2에 갔지요. 3주 만에 등정에 성공했는데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때 몸무게가 10kg 이상 빠졌습니다. 사실 이번 등정에서도 6kg이 빠졌습니다. 고산지역에 가면 입맛이 떨어져서 고체는 못 먹거든요. 물과 액화된 음식만 먹습니다. 또 산소가 부족해서 가만히 있어도 맥박이 1분에 120회 정도 뜁니다. 24시간 조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박 대장과는 2001년 K2를 비롯해 7번이나 함께 탐험을 했습니다. 오은선 씨와도 빈슨메시프와 아마다블람을 함께 갔습니다.”“마라톤은 준비 없이는 완주할 수 없는 운동입니다. 올해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다녀왔으니 10km나 하프마라톤을 뛰고 풀코스는 내년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제 최고 기록은 4시간 28분이지만 보통 5시간 정도에 완주합니다. 그동안 꽤 많은 곳에서 뛰었지요.”(구 회장은 풀코스 9회, 하프코스 21회, 단축마라톤 14회 참여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보여준 서랍 속에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받은 완주기념 메달이 수북이 쌓여있었다.)“성취감이죠. 사실 몸에 좋은 건 10km나 하프마라톤이 더 나은 것 같아요. 풀코스를 뛰면 진이 빠져서...그러나 풀코스를 뛰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또 살이 빠지니 몸이 가뿐하고 좋고요. 이걸 해내면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죠”“사실 완주는 어려운 게 아닙니다. 혹시 5km를 뛰어봤나요. 그걸 15분 내에 들어오겠다고 생각하니 힘든 겁니다. 그런 개념을 벗어나세요. 대학 졸업하고 3년 내에 집을 사려니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10∼15년 보고 천천히 하면 되지요. 그걸 인생에 접목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사실 전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못하는 게 장거리 달리기였습니다. 경기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매년 10km달리기를 했는데 전교생 480명 중 350등 정도를 했습니다. 제 뒤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걸어온 애들뿐이었죠(웃음). 당시 1등을 다투던 친구들은 32분 만에 결승점에 들어왔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제가 그런 친구들보다 더 잘 뜁니다. 당시에는 제가 절대로 그 친구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노력하면 이길 수 있는 겁니다.”“탐험 활동과 마라톤 그리고 기업 경영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습니다. 기초체력과 기본기, 유연성, 지구력 없이는 탐험활동이나 마라톤을 할 수 없지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성, 그리고 계획을 실행하는 지구력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마라톤과 탐험활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되지요”“사실 마라톤과 탐험활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제가 땀 흘려 산을 오르고 뛴 만큼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는 기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름은 ‘LIG희망마라톤기금’과 ‘LIG희망탐험기금’이라고 붙였습니다. ‘마라톤기금’을 처음 모으기 시작한 건 2004년 9월이었습니다. 제가 베를린마라톤대회에 참가했을 때인데 문득 ‘마라톤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달린 만큼 기금을 적립하는 ‘희망마라톤기금’을 만들었죠. 처음엔 혼자 시작했지만 지금은 우리 임직원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1m당 100원, 임원은 1m당 10원, 직원들은 1m당 1원씩 거리 비례로 기부금을 내서, 부모의 교통사고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통사고 유자녀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에베레스트 남서벽 탐험부터는 ‘마라톤기금’과 유사한 형식으로, 고도 1m당 1000원의 높이 비례 기금을 적립하는 ‘희망탐험기금’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마라톤과 탐험 등 비인기 분야에 대한 관심과 후원 자체가 이미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경영의 한 측면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방면으로 꾸준히 CSR 경영을 확대하려고 합니다.”LIG 손해보험 회장경기고등학교한양대 전자공학과금성정밀 상무대담=임혁 편집장 limhyuck@hankyung.com정리=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사진=이승재 기자 fotoleesj@moneyro.com